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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곤 마음이 무겁고 놀랐는데,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침해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더 놀랄만한 논평을 접했다. 일부의 주장처럼, 교권 침해가 선진화된 학생 인권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나는 미국 소도시 공립 초등학교에서 교육 지원 전문가(ESP: Education Support Professional, Paraprofessional이라 부르기도 한다.)로 일하고 있다. 한국 교실에는 없는 직군으로, 업무에 따라 하는 일은 약간씩 다르지만 주로 교사와 학생을 돕는다. 이를테면 수업 진행을 원활하게 하거나, 학습에 뒤쳐진 아이들의 학습을 돕고, 담임이 없는 점심시간 및 야외 활동시간(약 55분)에 해당 학년 안전을 관리한다.
   
교사를 보호하는 장치
 
학교 상징인 OWL을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만든 사진으로 학교 페이스북에서 발췌
▲ 미국 초등학교의 전 학생들과 교직원 단합사진 학교 상징인 OWL을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만든 사진으로 학교 페이스북에서 발췌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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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가 아닌 근로자로 학교에 있었을 때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교직원을 보호하는 장치였다. 학교 스태프로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거나 혹은 부적절한 말을 들었을 때 대응하는 방법이 매뉴얼화 되어 있고, 프로토콜(protocol)이 있어 교직원을 보호한다.

이를테면 학생들의 선을 넘는 행동이나, 발언을 했을 때 1차적 훈육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후 상급자(담임선생님→상담자→교감·교장 선생님)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 상급자는 사안에 따라 바로 반성문, 훈육, 부모님 소환, 강제 전학 등 적절한 대응을 시행한다.

초등학교 내에 유일한 아시안인 나는 지난해 학기 초에 초등학교 5학년(한국의 6학년)에게 처음으로 인종차별이 담긴 모욕적 언사를 들었다. 이민 9년차이지만, 처음 듣는 모욕적인 말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해, 냉정한 훈육이나 대응이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생이 한 말을 이메일로 담임에게 보고했고, 다음날 학생으로부터 정중한 사과를 받았다. 한 번만 더 그런 언행을 하면, 교장 선생님께 보고할 것이란 강력한 경고와 함께. 

정중한 사과 한 마디로 그 학생이 개과천선하거나 인종차별적 생각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언행을 조심한다. 신기하게도 담임선생님, 상담자, 교장선생님의 훈육은 학생들이 잘못된 행동을 지속할 수 없도록 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톡톡히 한다.

교장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훈육

교장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훈육으로, 그 분의 훈육 끝에는 부모님 소환이 있기 때문에 강력한 힘이 있다. 실제로 점심시간, 야외 활동시간에 안전 지시를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학생들에게 '교장선생님께 보고 하겠다'란 경고성 발언을 하니 바로 순한 양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우리 ESP끼리 교장의 전신 사진이 필요하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교장 선생님의 훈육은 강력하다. 교장이 하는 훈육의 대상은 대단한 문제를 가진 학생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담임교사와 상담자의 훈육대로 행하지 않는 전교생 모두다.
 
교육청 웹페이지에 있는 교육 지원 전문가(Paraprofessional) 설명 편집본
 교육청 웹페이지에 있는 교육 지원 전문가(Paraprofessional) 설명 편집본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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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교사 격인 ESP들은 담당하는 학생을 돕기 위해 여러 교실에 15-30분씩 수시로 들어간다(경우에 따라 한 수업에 2명의 ESP들이 있기도 한다). 이들은 담임선생님의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하게 담당 학생들을 돕거나 교실 내 급한 일이 생기면 담임선생님을 도와 해결한다(ESP들은 여러 교실을 보조하기 때문에 수업을 준비하거나 담임교사의 수업지시를 따르지는 않는다). 한 교실에 두 명 이상의 성인이 있기 때문에 폭력사태 같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

또 교실이나 복도에 무전기가 있고 몇몇 ESP과 학교 사무실, 교장, 교감은 무전기를 항상 소지하고 있어서 무슨 사건이 벌어지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나 무전으로 연락하여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학부모와 소통은 이메일로

학생의 전인적 교육에 대한 최종 책임은 가정에 있다는 분명한 인식 아래, 담임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모든 소통은 이메일로 빈번하고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교사의 핸드폰 번호를 학부모에게 공개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업무 시간 이후 연락 또한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사와의 대면 상담은 미리 약속을 해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메일을 통한 연락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교사의 사생활은 언제나 충분히 존중 받는다.   미국 공립학교 또한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고 우리 교육과 풍토가 다르지만 공립학교 시스템 안에서 교사와 교권을 보호하는 여러 제도 장치와 문화는 배울 만하다고 생각한다.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같은 가슴 아픈 일을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교권보호가 먼저다, #학생인권조례가 문제일까, #미국 공립학교의 교권보호 장치, #아이들의 최종책임은 가정,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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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립학교 문화에 매일 놀라는, 초등학교 ESP(Education Support Profess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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