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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중인 KDB 산업은행 본사의 부산 이전을 둘러싸고, 정치권 뿐 아니라 금융과 경제전반에 걸쳐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산업은행 이전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짚어봅니다. 불법적인 강행 추진의 배경과 쟁점, 부산현지 취재와 전문가 등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2022년 8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에서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2년 8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에서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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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국익에 부합할까?"

김용태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 6월 <매일일보> '산업은행 이전, 국익 관점에서 재고해야'란 제목의 기명칼럼을 통해 던진 질문이다. 칼럼 제목에서 드러나듯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강행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을 사실상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는데, 특히 "산업은행 이전을 국익 관점에서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의 주요 논거로 사용한 것은 '2017년 전주로 이전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국민연금이 전주로 이전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161명이 빠져나갔다고 한다. 국민의 노후 보장을 위해 약 1000조원의 기금 규모를 운용하면서 관련 전문 인력을 키워내는 노하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중요한 인력이 계속해서 유출된다면 국민연금 미래는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연금의 미래가 곧 국민의 미래와 직결됐듯, 김 전 최고위원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 문제 역시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대한민국의 산업 개발 및 육성과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산업은행 인력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유출이 현실화된다면 국익 차원에서 손해가 될 것"이며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이전하게 된다면 국민연금처럼 인력 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2017년 1월 25일,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2022년 6월 9일, 산업은행 본점에서 산은 노조가 강석훈 신임 회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하고 있다.
 2022년 6월 9일, 산업은행 본점에서 산은 노조가 강석훈 신임 회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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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최고위원이 지적했듯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전 이후 인력 유출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6년 당시까지 기금운용직으로 일하다 국민연금을 떠난 직원은 약 7년간 83명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6년간 기금운용직 퇴사자는 164명에 이른다. 한 해 평균 11.9명이었던 퇴사자가 전주 이전 후 27.3명으로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국민연금을 떠난 일부 관계자들의 입장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펀드매니저도 인공지능(AI)이 아닌 사람이라서 다양한 사회적 교류가 필요하다"거나 "직원들이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여러 가지가 힘들고, 해외 투자자들도 2-3일 내에 한국을 다녀가는 바쁜 사람들인데, 아무래도 국민연금에 덜 올 수밖에 없다"는 등이 그 예다. 전주 이전 후 1년 동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구하지 못한 상황 또한 이목을 끈 바 있다.

물론 국민연금 기금운용직 인력 유출을 모두 '전주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직은 계약직으로 알려져 있다. 급여도 민간에 비해 낮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재직 경력을 발판으로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이직하는 현상은 일반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전주 이전 당시부터 안고 있었던 불안 요소가 자녀 교육 문제 등 지리적 여건과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 퇴사자가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미 2017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전 당시부터 예견됐다는 점이다.

"기금운용본부 평균 연봉이 성과급을 합쳐서 9500만원 수준인데, 민간자산운용사 50여 곳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그친다고 해요. 여기 직원들이 예뻐서가 아니라 이 직원들이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는 막중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2017년 1월 25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록,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결국 불 보듯 예상되는 인력 유출에 대한 근본적이고 명확한 대책 없이 국책기관 이전을 추진하면 그로 인한 부작용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지방분권 균형발전이라는 취지도 퇴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최근 산업은행 노동조합이 거래기업·협업기관·임직원 등 29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3.8%가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사자'들의 여론을 도외시하고 정치적으로 강행할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것. '2017년 전주로 이전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서 얻은 교훈'이다.

기획재정부 세수와 직결된 산업은행의 재무 건전성
 
KDB산업은행의 2022년도 회계연도 영업보고서 중 포괄손익계산서(단위, 억원). 비이자손익 과목을 보면 산업은행의 재무 건전성 유지에 투자은행(IB)으로서 성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KDB산업은행의 2022년도 회계연도 영업보고서 중 포괄손익계산서(단위, 억원). 비이자손익 과목을 보면 산업은행의 재무 건전성 유지에 투자은행(IB)으로서 성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KDB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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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김 전 최고위원의 지적처럼 산업은행 인력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 그 이유는 산업은행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는 영업보고서에 일부 나와 있다. 

산업은행은 예금·대출 등 상업은행(CB) 뿐 아니라 장기자금 조달이나 직접 투자 등과 관련된 투자은행(IB)으로서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그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2022년도 회계연도 영업보고서다. '최근 3년 간의 영업성과 및 재산상태'를 보면 포괄손익계산서상 수익 지표가 양호한 과목이 순이자손익과 비이자손익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순이자손익은 상업은행(CB)으로서의 영업 성과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투자은행(IB)으로서의 성과를 보여주는 과목은 배당수익 등을 포함한 비이자손익이다. 2020년의 경우 산업은행 비이자수익은 1조6 196억원으로 순이자수익보다 많았다. 2021년은 3조 5547억원으로 순이자수익의 2배 넘는 규모였다. 작년의 경우는 순이자수익이 더 많았지만, 1조 1506억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은행의 재무 건전성 유지에 투자금융 부문 성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산업은행의 재무 건전성은 기획재정부의 건전성, 즉 국가 재정건전성과도 직결된 문제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기획재정부에 지급하는 배당금 규모가 정부출자기관 중 3년 연속 상위 3위안에 포함된 곳이다. 특히 2022년의 경우는 8331억원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7441억원)보다도 배당금 규모가 컸다. 2021년부터 3년 간 1조 2000억원을 정부배당금으로 지급했다. 이는 정부배당금의 24% 규모다.

다시 말해 산업은행 재무 건전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투자금융 부문 성과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경우처럼 '사람'이다. 한국재무학회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 타당성 검토 연구용역 자료'를 통해 '인력 이탈로 인한 금융 전문성 약화'를 수익 감소 요인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융 전문성 약화는 재무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산업은행이 기획재정부에 배당금을 지급하는 현 상황이 역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산업은행 인력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재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2년 8월 31일... 윤 대통령 "이 자리에 산업은행 회장도 참석하셨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2022년 9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전략적 투자유치 절차 개시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2022년 9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전략적 투자유치 절차 개시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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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정부 차원의 논의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현 정부와 대통령실이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키는 모양새다.

지난 3월 한 언론은 윤 대통령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서울 이전 검토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비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온 보도였다. 이에 대통령실은 "기금운용본부는 법으로 전주에 두게 돼 있어 대통령실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같은 날 윤 대통령은 다시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기금운용본부 서울 사무소 설치 방안은 이와 같은 '특단의 대책'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그런데, 산업은행의 경우는 정반대 행보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는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최종 지정해 공식 고시했다. 윤 대통령이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대선 후보 시절 핵심 공약으로 제시한 지 불과 1년 여 만이었다. 7월 27일 금융위원회는 산업은행의 전 기능과 조직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다음날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같은 내용의 직원 설명회를 직접 개최하려다 노조 반발로 불발됐다. 강 회장은 잘 알려진 것처럼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의 정책특보로 경제정책 공약 개발을 담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 산업은행 회장도 참석하셨다.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도시, 세계적인 무역도시, 또 배후에 첨단 기술산업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금융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조속하게 추진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 (2022년 8월 31일, 부산신항에서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윤 대통령이 강조한 "조속한 추진"이 곧 강행으로 나타난다면 "산업은행 인력 유출"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한 "국익 차원에서의 손해"는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다음 정부가 감당할 공산이 크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서울 사무소 설치 방안이 전주 이전 불과 6년 만에 '특단의 대책'으로 논의되는 지금 상황처럼 말이다. 몇 년 후 다른 대통령이 '산업은행 서울 지점' 설치 검토를 지시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모두 "국익 차원에서의 손해"다. 그래서 더더욱 다음 질문은 산업은행 노동조합만의 것이 될 수 없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과연 국익에 부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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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산업은행, #산업은행 부산 이전, #윤석열, #강석훈, #국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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