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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선물받은 히비스커스 차 한 잔을 냉침해 두고 책을 읽는 일요일 오후. 얼마 전 이사를 한 뒤 집들이로 바쁘게 보냈던 몇 개의 주말 후 오랜만에 맞는 온전한 휴식 시간이다. 각성이 필요 없는 느긋한 주말, 카페인이 주는 미묘한 긴장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마실 수 있는 차가 좋은 날이 있다.
 
선물받은 히비스커스 차 한잔
 선물받은 히비스커스 차 한잔
ⓒ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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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가 좋은 이유는 느려도 되어서, 느린 것이 미학이라서다. 1분 1초가 급한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앱으로 커피를 미리 주문해 두고, 픽업대에서 바로 낚아채 전두엽까지 쭈욱 카페인을 직통 전달하는 평일의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와는 다르다.

선물은 주는 사람을 닮았다더니 이 수줍은 히비스커스 차는 나의 글친구 '바람'님과 닮았다. 바람님의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학교에서 '엄마는 거북이'라는 내용으로 글짓기를 했다는 글을 본 적 있다. "엄마는 아주아주 느리거든요. 엄마는 아주아주 수영을 잘하거든요"라는.

그는 변화의 시점마다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했지만, 빠르게 걷는 대신 천천히 속도를 늦추고 아주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며 글쓰기로 위로받았다고 글 '내 인생의 박물관을 짓고 있습니다'에서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거북이는 바닷속에서는 토끼보다 빠르다.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마음껏 빠져 깊은 곳으로 유영하는 그이기에 그 모습이 바닷속을 힘차게 헤엄치는 거북이와 너무나도 닮았다는 말을 전했었다. 그 말이 그의 글에도 반영되어 기뻐했고.

맑고 붉은 색깔을 조용히 뿜어내는 히비스커스 차. 상상력 가득한 향을 품고 있으면서 맛은 텁텁하지 않고 깔끔한 것이, 열렬한 마음과 차분한 외관을 지닌 그와 잘 어울렸다.

일생에 단 한 번 만나는 인연을 이어가는 중

마침 추천받은 책이 있어, 선물받은 차와 함께 독서 시간을 가졌는데,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이치고 이치에"
 
한자로 일기일회(一期一会),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을 뜻하는 사자성어였다. 다도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다회를 열 때는 다시없을 소중한 자리로 여겨 성심성의껏 임해야 한다는 의미라나. - <콜센터의 말> 이예은

새로운 표현을 내 마음속 사전에 넣으며, 리듬감이 있는 단어를 괜히 작게 소리내어 말해본다. '이치고 이치에'. 그러면서 함께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과의 모임 1주년 파티를 떠올렸다.

바람님은 선뜻 자신의 집을 모임 장소로 제공해 주었고 우리는 커다란 나무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서로를 생각하며 산 선물을 주고 받았다. 마니또 형식으로 1개씩만 선물을 준비해 오기로 했지만 아뿔싸. 이 앙큼한 여성들에게 나는 또 속았다.

정갈한 음식과 과일은 물론이고 마음을 담은 작은 카드, 글친구들의 로고가 새겨진 직접 만든 열쇠고리, 글 친구의 7살 딸아이의 환심을 사고자 각자 준비한 귀여운 선물들과 그 꼬마 친구가 직접 고사리손으로 포장한 작은 선물들까지. 모두가 서로를 위해 성심성의껏 임하여 더더욱 소중했던 시간.

1주년 모임 후 그가 쓴 글을 보고 나는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결과 언어를 가지고 같은 주제를 놓고도 자기만의 오솔길을 한 땀 한 땀 걸었는데 그러면서도 언제든 서로에게 깊이 공감하며 응원을 보냈다. 모임에 갈 때마다 커다란 포옹을 받는 기분이었지."

5명의 글동무들과 함께 걷는 이 길은 각자가 가진 열매를 주섬주섬 꺼내 보여주며 꺄르르 웃는 산책길 같다. 2주에 한 번 만나 자신의 조각 하나를 또 내보여주고, 공감하며 웃고 울고 고백을 하는 시간. "남편 싸움 잘하냐?"라는 당돌하고 귀여운 사랑 고백이 난무하는 도서관 세미나실 한 켠, 일생에 단 한 번 만날 소중한 인연을 만나 1년째 이어 오고 있다. 함께 쓰는 친구들과 같이 보내는 두 번째 여름이 든든하고 풍요롭다.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태그:#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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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기쁨을 더 자주 기록하고 싶은 취미부자 직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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