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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사실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도 채 안 되었을 때, 그러니까 아이가 혼자 앉기는커녕 소화조차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해야 할 정도로 절대적인 돌봄의 손길이 필요했던 시기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초보 엄마로서 수면과 같은 기본적인 생존본능은 물론 1시간만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자아실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덥석 엄마 손을 잡았다.

그러나 좁은 집에서 엄마와 같이 공간을 공유하는 일은 가뜩이나 난생 처음 겪는 몸 상태로 신생아를 돌보느라 예민해져 있는 나의 신경을 자극했다. 결혼을 반대하던 엄마였다. 아이의 출산을 계기로 엄마와의 관계도 다시 시작되었지만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엄마가 쇼파에 앉아 TV를 보는 뒷모습만 봐도 마땅치 않고 마음이 불편했다. 정확하게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 몇 가지 일들로 결국 서로의 기분이 상하고 관계가 틀어져 우리는 다시 오랜 시간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관계는 언제나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구는 엄마의 태도로 재개되었다. 이와 같은 관계의 패턴은 몇 번의 반복을 겪었다. 당연히 그때마다 도움의 손길도 끊겼다.

몇 번의 반복 끝에 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건 최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안정함보다 차선 혹은 차악이 변동없이 유지되는 안정을 택하려는 이성의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엄마와 심리적으로, 언어적으로 크게 다투고 나면 집을 떠나며 구축해온 나의 평화에 금이 갔다. 때로는 아이 앞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었기에 나는 안정을 사수해야 했다.

이후로 나는 말 그대로 아이를 끼고 살았다. 업무시간이 규칙적이지 않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남편의 몫까지 책임졌다. 주중에는 아이의 등원부터 하원 후까지, 주말에는 하루 종일 아이와 부대끼며 3년을 살았다.

그 사이 아이는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엄마를 상대로 타이르는 듯한 말투까지 구사하는 요절복통 어린이로 성장했다. 아이가 엄마 껌딱지가 되어 버린 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나는 아이가 되도록 많은 어른들과 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 역시 그렇게 자라왔고, 그것이 나의 유년 시절을 풍족하게 만들어줬다고 믿기에 그러하다. 또 근본적으로는 자신이 없어서다. 내가 아이에게 모든 걸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다른 어른들을 통해 내게 부족한 것을 채웠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렇기에 엄마와 나의 역사와는 별개로 아이가 나의 엄마인 외할머니와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그렇지만 그건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아이가 너무 어려 말도 하지 못하는 시기엔 더욱더 그러했다. 엄마와 나의 관계가 단절되면, 아이와 할머니의 관계도 그렇게 되어 버렸다. 나는 늘 그게 속상했다.

발단은 육아시간이라는 명목으로 하루에 2시간씩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 2년의 기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간 육아시간 덕택에 그나마 여유로운 출근과 퇴근을 하고 회사를 때려치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번지지 않는 상태로 직장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으로 다니고 있는 회사에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이제 곧 끝이 난다니 눈앞에 캄캄해지고 가슴이 조여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괴로워 기간이 끝나가는 것도 애써 모른 채 해왔지만 이제는 직시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주변에서도 이제 어떡하냐, 걱정을 나누어 주었지만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를 혼자 키웠다는 자부심 한켠에 독박육아에 대한 억울함과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함께 자리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장례를 준비하러 엄마와 남편이 다 함께 차량으로 어딘가를 향해 이동하고 있을 때 나의 불만이 폭발해버렸다. 무엇을 향한 분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모두를 공격하고 있었다.

엄마는 쟤가 육아하느라 지쳐서 그런가보다, 하며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 냈다. 그리고는 이제 내가 아홉시 부터 여섯시까지 꽉 채운 회사 생활을 앞두고 있으니 일주일에 한번은 자기가 아이를 하원시켜 돌봐주겠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운동을 하든 책을 보든 원하는 걸 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달라진 점은 아이가 어린이가 되어 웬만한 상황은 다 이해하고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과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는 것, 그리고 그간 뾰족한 조정 기간을 거쳐 엄마에 대한 나의 마음이, 우리의 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는 점.

그렇게 나는 오늘 3년 만에 다시 요가 수업을 등록했다. 편히 널부러져 있던 근육을 오랜만에 사용하자니 간단한 동작에도 몸이 덜덜 떨려 왔지만 요가원을 나서는 마음과 몸이 새털처럼 가벼웠다. 엄마에 대한 애정과 고마운 마음이 샘솟았다. 잰 걸음으로 집에 가니 벌써 아이는 한 뼘 정도 할머니와 가까워진 모습이다.

신세를 잘 지는 것도 능력이고,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3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동안 나 잘했다! 일주일에 하루, 아이와 할머니에게 서로를 경험할 시간을 주고, 나만의 시간을 누려볼까 한다. 앞으로의 날들이 무척 기대가 된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실릴 예정이에요.


태그:#모녀관계, #육아동지지, #모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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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닌 지 10년, 아이를 키운 지는 3년이 되었고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더불어 살기 좋은 세상에 대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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