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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이다. 11일 아침에 두 눈을 의심케 하는 뉴스를 봤다. 교육부가 이번 달 발표할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학생의 휴대전화 검사·압수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라는 보도였다([단독]교사에 '학생 휴대전화 검사 - 압수' 허용하기로, 동아일보 8월 11일자 기사).

그간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 등이 휴대전화 검사를 하지 못해 교권이 추락한다는 등의 주장을 해온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태규 의원도 휴대전화를 검사하는 게 타당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아니라고 대답할 만큼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참고기사: "학생 휴대폰 검사 못 해 문제? 국힘 교권 침해 대책 헛발질" https://omn.kr/24ykd).

하지만 11일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학생들의 휴대전화 검사·압수 등의 조치가 당장 2학기로 다가온 만큼,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로 치부할 수는 없게 되었다. 정책 수립 과정에 있어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러한 고민의 깊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해당 정책의 적용을 받게 될 학생들의 의견 수렴은 있었는지 모르겠다. 현재 우리 학교는 휴대전화를 수거하지 않고 있다. 2학기부터 교사에게 휴대전화 검사·압수를 허용한다면 학교 내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짐작된다. 지난 번의 수능 킬러 문제 파동 때부터 발표되는 교육 정책들이 즉흥적이며 땜질식 처방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어 이번에도 우려스럽다.

자칫하면 교실 해체, 신뢰감 붕괴
 
11일 <동아일보> 등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가 이번 달 발표할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교사의 휴대전화 검사·압수를 인정하는 방안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된다.
 11일 <동아일보> 등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가 이번 달 발표할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교사의 휴대전화 검사·압수를 인정하는 방안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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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상식적으로 휴대전화를 검사하는 일은 매우 쉽지 않다. 일반인이 타인의 휴대전화를 자의적으로 검사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니 논외로 하고, 경찰·검찰조차도 휴대전화를 받아 검사하려면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로운데, 헌법 제12조 3항에 의해 검사가 신청하고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특히, 휴대전화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히 소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가방 수색·몸 수색 등 모두 법관의 영장 발부가 필요한 수색에 해당한다. 즉, 대한민국 법체계상 휴대전화에 관련한 수색은 수색 대상자에 대한 기본권 침해의 우려가 큰 만큼 그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관의 영장 발부라는 엄격한 요건을 두고 있다.  

휴대전화 검사·압수 권한을 교사에게 부여한다는 교육부의 고시는 이러한 원칙을 전면으로 위배하고 있다. 교사는 학생을 조사하거나 수사하는 직업이 아니기에 검사와 압수의 권한이 없으며, 사정기관의 공권력도 매우 엄격한 요건을 지켜야만 행할 수 있는 수색을 행정부의 '고시'를 통해 부여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수색은 필연적으로 헌법 제17조에서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게 될 우려가 매우 크다.

아울러, 당장 형법에도 저촉될 우려가 크다. 형법 제321조 주거·신체 수색죄는 법관의 영장 발부 없이 함부로 사람의 신체나 주거, 자동차 등을 수색한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굳이 형법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생각해보라. 범죄의 우려가 있어 서울역 앞 광장을 통행하는 사람들의 휴대전화를 검사할 권리를 행정안전부 고시로 부여한다면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킬 것이다. 직장에서 상급자에게 하급자의 휴대전화를 검사할 권리를 고용노동부 고시로 부여하면 역시 공분을 일으킬 것이다. 형식적 측면에서도, 내용적 측면에서도 타당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교육부의 발표에는 그 정도 수준의 공분이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교육부가 학생 지도와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인권 침해를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인권에 교육이라는 예외를 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아주 역설적이다.

인권에 예외가 없다는 말을 초등학교 5학년 사회 시간부터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수도 없이 배워왔다. 인권에 예외가 없다는 것을 교육하는 것이 주된 업무인 교육부가 인권에 예외를 두는 고시를 발표한다면, 학생들은 점점 학교에서의 배움을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실 해체'다.

미래의 일을 속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단기적으로 봤을 때 고시가 발표된다고 해도 당장 우리 학교에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선생님들의 대부분은 상식적이고 좋으신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선생님들이 뜬금없이 휴대전화를 검사하고 압수하실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전국의 몇몇 학교에서는 교육부의 고시대로 휴대전화를 검사하고 압수하는 일이 일어나서 언론에 보도되면 다시금 소모적인 대립 구도의 소용돌이로 휘말리게 될 것이다. 

잘못된 정책보다 더 두려운 것

고시를 통해 학생의 휴대전화 검사·압수를 교사에게 허용하는 것은 정당성도 없고 목적성도 없다. 교권을 증진해 보겠다는 그 의도 자체에 공감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제대로 된 수단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최근 교육부의 정책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학교 민원창구 일원화 시스템을 도입해 교장 직속의 민원대응팀을 구성하도록 하는 정책 등 긍정적인 시도로 평가할 만한 대책도 존재한다. 오히려 그런 긍정적인 대책들이, 휴대전화 검사·압수와 같은 자극적인 키워드에 휘말려 묻힌 점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너무 진부하지만 대체할 용어가 마땅치 않다. 그만큼 미래 백 년의 초석이 교육에 있다는 말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우리 교육계는 수능 킬러 문항 파동, '사교육 카르텔' 파동, 서울 S초 교사 사망 사건 등 너무 큰 파동을 겪었다. 또 한 번의 휴대전화 검사 파동을 겪게 된다면 교육은 백 년은커녕 백일을 내다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교육적 차원에서도 물론 그러하겠지만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은 이번 고시가 법적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정책을 내는 것보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수정하지 않는 것이 더 큰 국가적 재앙이다.

잘못된 정책을 주워 담으면 잠깐의 부끄러움으로 끝나지만, 주워 담지 못하면 전국의 모든 학생과 교사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 고시가 발표되지는 않았다. 고시가 발표되기 전, 윤 대통령과 교육부의 잘못을 수정하는 용기를 한 고등학생이 조용히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태그:#휴대전화, #교권, #고시,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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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글쓰기. 문의는 j.seungmin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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