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2 10:12최종 업데이트 23.09.0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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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와인을 홀짝이던 소설가 신이현이 충북 충주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양조장을 만들었습니다. 와인만큼이나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그가 달콤하게 와인 익어가는 냄새가 나는 양조장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편집자말]
"유기농펑크? 이거 뭔 소리야? 아롬씨 헤비메탈 밴드도 해?" 농사관련 일들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이름은 좀 어리둥절하다. "아하하, 헤비메탈 밴드에서 보컬하는 친구가 있는데, 제 유기농 농사 이야기를 듣더니 '야, 그거 펑크잖아. 그게 농사냐? 유기농펑크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듣고 보니 괜히 좋더라고요. 펑크란 것이 저항정신이면서 프로페셔널하지 않고 인디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작지만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는 그런 정신이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유기농 펑크가 제 닉네임이 되었어요."
 

10년 전 유기농 펑크의 첫사랑 텃밭. ⓒ 유기농펑크

 
유기농에 펑크라는 이름이 들어가니까 유기농이란 말이 참 사랑스럽다. 유기농이라는 단어는 왠지 사람을 긴장시킨다. 유기농 농사를 짓지 않거나 그것을 먹지 않는 사람은 괜히 환경과 몸에 죄를 짓는 느낌인데 유기농에 펑크를 붙이니 가벼워졌다. 유기농은 그냥 선택이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하거나 말거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유기농펑크는 무슨 일을 하는 건데?" 물었더니 유기농의 연결과 순환이라고 대답한다. "아, 무엇을 연결하고 순환하겠다는 건지, 무슨 말인지 확 와닿지는 않네." 했더니 유펑답게 이히히 웃는다. "그런데 올해 농사는 어떻게 수확을 좀 했니?" 라고 물으니 한숨을 쉰다. "왕창 망했어요. 노린재가 덮쳐서 고추랑 토마토, 가지, 이런 것들은 다 망쳤어요. 허브 종류들은 잘 되었지만 이걸로 자급자족은 안 되잖아요." 아롬은 10여 년 전부터 빌라 옥상에서라도 텃밭을 해왔다. 지금 텃밭은 땅이 움푹 꺼지고 바람이 잘 통하지 않고 남향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잘 되기 어려운 땅이지만 포기할 수 없다. '집 앞 텃밭'은 절대 접을 수 없는 꿈이다.

"이번 주에 밭에서 파티해요. 오실래요?" 라고 한다. "무슨 파티? 펑크 메탈파티?" "아뇨. 쓰레기 줍는 파티요!" 그녀가 깔깔 웃으며 대답한다. 처음 그 텃밭이 생겼을 때 너무 좋았다. 그러나 밭을 일구기 시작했을 때 바로 악몽으로 바뀌었다. 땅 속에 어마어마한 비닐 폐기물이 묻혀있었다. 땅을 만지고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고, 수확하는 잔잔한 기쁨이 아니라 몇 달 내내 쓰레기를 치우며 헉헉대는 주말농장이 되었다. "버려라 버려!" 사람들이 말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치명적인 장점 '집에서 1분 거리의 내 텃밭'이라는 것이었다.
 

펑크네 텃밭에 차린 식탁. ⓒ 유기농펑크

 
시간날 때마다 달려가서 쓰레기를 뽑아내고, 담을 치고, 탁자를 만들고, 틀을 만들고, 씨를 뿌렸다. 아, 어떤 꽃이 필까. 얼마나 잘 자랄까, 보고 또 보고, 작게라도 내가 심은 것에 열매 맺은 것을 수확해서 먹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 중에 제일 좋은 것은 내가 키운 것을 먹고, 거기서 나온 음식 쓰레기들은 다시 그것이 온 땅으로 보낸다는 것이에요!"

그 무엇보다 음쓰, 음식물 쓰레기에 강력한 관심을 보이는 유기농 펑크 아롬과 어떻게 만났는지 모르겠다. 소비자가 물건을 발굴해서 올리는 프롬이라는 싸이트가 있었는데 거기에 우리 시드르를 추천해서 올린 소비자로 처음 알았던 것 같다. 그 뒤에 우리 포도밭에 일손을 보태주러 남편과 함께 왔다. 둘 다 돼지를 좋아해서 남편을 돼돼라고 불렀다. 돼돼라니, 펑크 스타일 별명이다. 짚단을 나르고 미래의 포도밭에 첫 호밀씨 뿌리는 일을 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지 모르겠어요." 농대를 나왔다는데 일은 별로다. 그렇지만 그날 서툴게 뿌린 첫 호밀 씨앗이 자라 퇴비가 되고, 거기서 나온 호밀이 다시 싹이 되어 올라오고, 그것이 자라 퇴비가 되고 또 싹이 올라오는 일이 매년 거듭되고 있다. 
 

마르쉐에 나온 유기농 펑크. '퇴비클럽' 간판을 걸고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꽃을 선보였다. ⓒ 유기농펑크

   

퇴비클럽은 이런 걸 팝니다. ⓒ 유기농펑크


이렇게 드문드문 만나던 사람인데 요즘엔 농부시장 마르쉐에 자주 나타난다. "농작물 팔러 나온 건 아닐 텐데, 무슨 일이지?" "아, 전 음쓰 분해자 워크숍으로 왔어요." 음쓰분해자란 음식물을 분해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마르쉐에서 사람들을 만나 어떻게 자기 음식물 쓰레기 분해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발효시킨 퇴비를 다시 거둬들여 농부에게 주거나 가드닝하는 법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는 노동자가 그 쓰레기에 빠져서 거기서 나오는 가스에 질식되어 돌아가신 이야기를 듣고, 제가 음식물을 버린다는 것에 너무 큰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그래서 이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혼자서 하다가 나중엔 동네 주민들 몇과 함께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해 그 퇴비로 꽃밭을 만들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해 만든 퇴비를 뿌려 가꾼 꽃밭. ⓒ 유기농펑크

 
"계속 하다 보니 음쓰 퇴비가 꽃만 키운다는 것이 아쉬웠어요. 이것이 우리가 먹는 작물에게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먹는 것을 그것이 온 땅으로 다시 보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순환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시장에 나오게 된 거죠. 사실 소비자들은 소비만 하고 농업의 공동생산자로서 참여할 기회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음쓰를 퇴비화해서 가지고 와 농부님들에게 주면 작물의 공동생산자로 작게나마 참여를 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고요." 아, 그래. 이것이구나! 그 순간 유기농펑크가 지향하는 '연결과 순환'이라는 뜻을 이해하게 된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이전에는 절대 만날 수 없었던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땅을 사이에 두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만나면 그냥 좋다. 나이가 들면 더 이상 배울 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배울 일이 생긴다. 유평을 만날 때면 끝없는 쓰레기 생산자 인간인 나에 대해서 반성하고 분해자 인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포도밭에다 음쓰 퇴비간도 하나 더 만든다.

"요즘엔 유기농 농부들이 하는 밭들을 찾아다니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농대를 갈 때는 땅과 자연, 식물과 함께 하는 조화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막상 공부하다보니 그게 아니었다고 한다. 굉장히 자본주의적 농사이고 식물에게 상당히 폭력적인 인간 중심의 공부를 배웠다. 학교 다닐 때와 달리 요즘은 그런 방식으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이상적인 밭을 만들어가는 농부들을 만나면 너무 존경스럽고 행복해졌다.
 

유기농 펑크 부부 ⓒ 신이현

 
"저 이제 귀농귀촌 수업 들으려고 해요." 며칠 전 우리 농장에 와서 이렇게 말한다. 오, 이제 본격적인 농부가 되어보려는 건가? "일단은 귀농귀촌 교육을 받고 두루 앞길을 물색해보려고요. 당장 시골에서 살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제가 참 애매한 인간 같은 느낌이네요. 결국엔 나의 음쓰 퇴비를 내 밭에 돌리는 자급자족의 농업을 하는 것이 꿈인데, 아직은 어디로 갈지 잘 모르겠네요." 동글동글한 아기 돼지 두 마리 같은 사람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돼돼하게 좋다. 앞으로 무엇이 되든 지금 너무 잘 하고 있으니 무슨 걱정이랴 싶다.
 

텃밭에서 키운 래디시. ⓒ 신이현

 
"이것이 컴프리죠? 땅의 광부라고 부르는 식물이잖아요. 좀 주세요! 이 왕겨도 좀 얻을 수 있으면 너무 좋겠어요!" 컴프리와 이런 저런 식물들을 주말 농장에 심겠다고 삽으로 파서 트렁크에 싣는다. 흙더미 식물들과 왕겨포대기로 트렁크를 채우고 두 사람은 금은보화라도 실은 양 신이 나서 출발한다.

"귀농한다면 충주에서 한번 해봐. 여기 엄청 좋아. 충주의 음쓰를 퇴비화해서 충주를 순환시켜보는 것, 어때?" 나의 말에 아하하 펑크 스타일로 웃으며 손을 흔든다. 멀리 사라지는 두 돼돼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안녕 유평. 사랑해." 
 

양조장에 농활온 사람들과 함께 한 유기농 펑크와 돼돼 부부. ⓒ 신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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