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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0월 1일 오전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열병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0월 1일 오전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열병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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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 서울 광화문과 숭례문 일대가 국군의 날 행사로 북적거릴 모양이다. 얼마 전 국방부는 '건군 75주년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육해공군이 모두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10년 만에 국군장병들의 시가행진도 펼쳐진다고 한다.

정부는 '자유 수호 출정식'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최초의 한국형 전투기와 차세대 무장 헬기 등 최신 전투 장비를 선보일 예정이다. 공군의 대규모 편대 비행도 펼쳐지고, 국군 교향악단과 합창단의 합동 무대도 꾸며진다. 합창단은 장병과 사관생도, 카투사 등에서 각각 차출됐다.

한미동맹의 상징인 주한미군도 대규모로 참가한다. 주한미군의 연합작전 수행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실전 상황의 공중 침투 기술을 생중계로 시연한다. 올해가 정전 70주년인 만큼 해외의 참전용사와 후손들도 초청했다. 닷새 동안 서울에 머물며 안보 현장을 답사하는 일정이다.

또한, '국민과 함께하는 행진'도 마련됐다. 국군장병과 시민들이 군악대와 마스코트 인형 등을 따라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거리 퍼레이드에 나선다. 20일부터 본 행사가 치러지는 25일까지는 군 문화체험 행사도 열린다는데, 규모로 치면 가히 역대급이라 할 만하다.

'한미동맹 70주년' 강조하는 이유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6월 25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한미동맹 70주년 특별전'을 찾아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전을 관람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6월 25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한미동맹 70주년 특별전'을 찾아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전을 관람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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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날은 우리 국군의 위용을 기리고 국군장병의 사기를 진작하며 그들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해 지정된 기념일이다. 국군장병들이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엔 행사의 취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불을 댕긴 이념 전쟁의 와중에 치러지는 행사여서다. '자유 수호 출정식'이라는 점을 유독 강조하는 걸 보면, 언뜻 '공산 전체주의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기획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장 '건군 75주년'과 '한미동맹 70주년'이라는 문구부터 그 의도를 의심해 보게 된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국군의 날 행사 때 한미동맹 몇 주년인지를 별도로 내걸었던 경우가 있었나 싶다. 6.25 전쟁이 끝나고 정전 협정 직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한미동맹의 원년으로 간주하는 셈이다.

한미동맹이 올해 국군의 날 행사의 핵심 주제인 양 거론되는 건 어째 좀 뜬금없다. 고작 '70주년'이라는 숫자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했을 것 같진 않다. 그럴 거였으면 차라리 6.25 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정전 협정 70주년'이라고 이름 붙여야 더 나았을 법하다.

이는 한미동맹이 유일하다시피 한 안보 전략임을 우리 정부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주권국가의 자주국방 실현의 바로미터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의 문제는 현 정부 들어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현실이다. 숫제 대한민국의 안보는 미국이 책임진다는 식이다.

결국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공산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맞서 싸우기 위해선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대국민 메시지다. 정부의 미국, 일본과의 편중 외교가 북중러의 밀착을 불러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현 정부에 한미동맹은 국가 간 외교의 영역이 아니라 이미 성역화한 종교다.

국군의 날의 의미... '뿌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친일 김백일 동상 철거 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는 2019년 3월 1일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내 김백일 동상 옆에 '김백일 친일행적 단죄비'를 세웠다.
 '친일 김백일 동상 철거 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는 2019년 3월 1일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내 김백일 동상 옆에 '김백일 친일행적 단죄비'를 세웠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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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건군 75주년'에 담긴 함의도 되새겨보게 된다. '75주년'에서 알 수 있듯, 건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맥을 같이 한다. 대한민국 헌법과 정부조직법이 공포된 직후인 1948년 8월 15일을 국군 창설일로 삼고 있어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국군 창설일로 삼는 건, 우리 정부와 국군의 정통성이 분리될 수 없음을 명토 박은 것이다.

특이한 건, 8월 15일을 국군 창설일로 삼고 있는데 국군의 날은 따로 지정됐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국경일인 광복절과 정부 수립일 등이 겹치는 점을 부러 피한 걸로 보인다. 6.25 전쟁이 끝나고 3년 뒤인 1956년 이승만 정부가 10월 1일로 지정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줄곧 공휴일이었다가 문민정부 출범 직전인 1991년에 제외되었다.

왜 하필이면 10월 1일로 정했을까.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서울을 수복한 후 우리 국군이 북진하면서 38도선을 통과한 날을 기리기 위한 취지라는 게 정설이다. 강원도 양양 지역의 국군 3사단 23연대가 최초로 38도선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세에 의한 분단의 상징인 38도선의 돌파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김일성이 '조국 해방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38도선을 넘어 불법 남침했고, 이승만은 관제 데모까지 종용해 '북진 통일'을 부르대며 다시 38도선을 넘었다. 그렇게 38도선은 남과 북 서로에게 무력 전쟁을 통해서만 허물 수 있는 경계선으로 굳어졌다.

얄궂게도, 38도선을 돌파한 당시 3사단장은 간도특설대 창설을 주도해 일제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친일파 김백일이었다. 간도특설대는 만주의 항일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창설된 특수부대다. 그는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독립군 토벌을 진두지휘한 인물로, 정부가 공인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중에서도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남북 분단이 고착화하고 38도선 돌파일이 국군의 날로 지정되면서, 6.25 전쟁은 시나브로 대한민국 국군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기준으로 자리매김했다. 북한은 응징해야 할 주적이 됐고, 미국을 비롯해 우리 편에 선 국가는 형제국이자 우방이 됐다. 전쟁 당시 북한 공산군에 맞서 전공을 세운 이들은 지금껏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전쟁 이전의 행적을 깨끗이 지워냈다. 김백일처럼 '구국의 영웅' 중 상당수는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던 일제의 주구였지만, 친일반민족행위의 죄과는 전공에 덮여 별일 아닌 걸로 치부됐다. 반대로 북한 편에 선 독립운동가들은 '구국의 영웅'의 손에 모조리 처단됐고 그 후손들은 연좌제의 굴레 속에 혹독한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요컨대, 국군의 날이 진정 기념일 지정의 취지를 살리려면 '뿌리'에 대한 성찰이 절실하다. 아무리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기로서니 대한민국 국군의 날에 한미동맹을 경축해서야 되겠는가. 우리 스스로 동맹의 '하위 파트너'를 자임하는 마당에 우리 국군의 위용 운운하는 건 낯부끄러운 일이다. 과연 미국에서도 10월 1일에 한미동맹을 기념할까.

군 관련 뉴스, 이렇게 많이 나올 때 있었나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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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산군의 불법 남침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이들의 공훈을 기리는 건 국가의 책무이자 후손의 도리다. 다만, 그것이 이전의 죄를 덮어서는 안 된다. 전공은 전공대로 기억하고, 친일반민족행위는 그것대로 평가하는 게 맞다. 국립묘지에 묻힌 친일파들을 파묘하는 대신 그들의 죄과를 함께 적시하도록 한다는 게 오랜 숙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다.

일각에서는 국군의 날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친일파 김백일이 관련된 38도선 돌파를 기념하는 것보다 국가의 정통성에 훨씬 더 부합한다는 논리다. 그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힌 헌법 전문을 근거로 제시한다. 아울러 정부와 국군의 정통성이 별개일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결정에서 보듯,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대한민국의 건국과 무관한 일로 떼어내려는 현 정부에 기대하긴 힘든 일이다. 얼마 전 국방부 장관은 육군사관학교의 정신적 뿌리가 미군정이 설립한 국방경비사관학교라고 말했다. 나아가 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국군의 모태가 제주 4.3 사건을 진압한 남조선국방경비대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국군의 날조차 대통령 발 이념 전쟁의 한복판에 선 모양새다. 한편에선 올해의 역대급 국군의 날 행사가 군의 기강이 무너진 현실을 감추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술책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해병대원 순직 사건, 해병대 수사단 외압 의혹, 국방부 장관 경질과 신임 장관 후보자의 막말 파문 등 군 관련 뉴스가 언론에 이렇듯 자주 오르내렸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당나라 군대도 이보단 나을 것'이라는 조롱이 쏟아지는 와중에, 국군장병들은 올해 국군의 날 행사를 과연 기꺼워할까. 단언컨대, 국군장병의 사기를 진작하는 건,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군 장성부터 솔선수범하고 책임지는 모습이다. 최첨단 무기를 지녔다 한들, 영이 서지 않는 군대에 국방을 맡기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태그:#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자유 수호 출정식, #한미 동맹, #한국광복군 창설일, #김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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