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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조 기자
 임영조 기자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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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교육이 있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을 통한 안전한 조직문화 만들기라는 주제에서 알 수 있듯 직장 내 성차별과 평등을 살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성인지란 용어가 귀에 들리더니 이제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로 알아야 할 것이 된 듯합니다.

근데 솔직히 누군가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멈칫하는 게 사실입니다.

교육 자료를 보니 성인지 감수성이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상황의 불평등, 불균형, 불리함 등의 차별적 요소를 일상생활 속에서 민감하게 인지하는 것. 정책과 사회조직 문화, 그리고 주체성 간의 관계를 맥락적으로 성찰하고 더 나아가 정책이 여성과 남성에게 끼치는 서로 다른 영향을 고려함으로써 모든 차별 문제를 차이에 대한 인식으로 전환하려는 의지'라고 적혀 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그리고 이를 용인하는 성차별적인 조직문화와 과감히 작별할 때라는 것입니다.

교육을 들으면서도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는 것도 많았습니다. 외모에 대한 칭찬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로서 칭찬이라면 성희롱은 고사하고 은근히 기분이 좋은데 말입니다.

되돌아보면 성은 은밀한 것이거나 혹은 구분돼야 하는 것 정도로 여겼습니다. 남성이 있고 여성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차이를 넘어 차별도 은근히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변한 것이 아니라 제자리를 찾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성별 역할은 달랐고 그 역할에 따라 사회적 신분도 분명 달랐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남녀가 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차별 대상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굳이 법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차별도 그런 것입니다. 어떤 이는 너무 삭막해지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좋은 뜻으로 칭한 한 것이 성희롱이 되고, 진심을 담아 격려한 것이 또 성희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어떤 말을 어떻게 하란 말인지. 아무 말 없이 그냥 묵묵히 지켜 보거나 차라리 모른 척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죠.

말뿐만 아니라 글 역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박제화된 글이니 더욱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분명 달라졌습니다. 복잡하면서도 상당히 분명해졌습니다. 이래저래 따질 것 없이 잘못된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하지 말아야 하며, 또 그릇된 행위를 했다면 누구나 신분을 떠나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게 제대로 된 사회일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사회는 정말 그럴까요. 여전히 차별이 있고 여전히 그 차별은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한다 해도 일부에서는 그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자신이 행한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억지로 바꾸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시나브로 바뀌게 기다려 주는 것도 곤욕입니다. 이때 우리는 그 역시 다름이라 여기고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요. 다름을 부정하는 것이 차별이기 때문이라며 말입니다.

아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화학물질을 이용해 신체를 만드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비용 역시 천문학적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어느 소도시 아파트 구입 비용이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인간이란 화학적으로 따지고 물리학적으로 구분하면 그리 대단한 존재물은 아닌가 봅니다. 그럼에도 인류가 지금 인류로 진화된 것은 그야말로 수많은 가치 있는 변화의 연속이 아니었을까요.

인류는 그렇습니다. 학문적으로 본다면 어느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회적 가치로 보면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를 기준으로 곁에 있는 사람을 바라봤음 합니다.

생김새는 물론이고 목소리도 생각도 다른 존재지만 각각이 가지는 가치는 한치도 다를 것 없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은 그런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성인지감수성,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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