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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를 경험한 다음 '쉼과 전환을 위한 안전한 실험'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성인들을 위한 인생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자유학교. 여기에선 올 해 봄과 가을에 '덴마크 인생학교 한 달 살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성인교육기관)의 삶을 위한 교육을 직접 경험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덴마크의 교육 철학과 실천을 한국에서 바로 구현할 수 없었기에, 나름의 고민을 통해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경험을 쌓아나갔다. 약 두 세기의 역사가 있는 덴마크의 교육 철학을 한국에서 실천해보면서 우리들만의 고민과 실천은 필요했고, 결국 그 노력이 확인 받을 수 있었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관련 기사: 덴마크 인생학교에 한 달 살기를 왔습니다 ).

나의 경험, 내 이야기를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시간
 
렛츠 프로그램 시간에 우정 팔찌를 만드는 모임
 렛츠 프로그램 시간에 우정 팔찌를 만드는 모임
ⓒ 양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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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 오늘은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세요. 오늘 어셈블리(모임) 시간에 들었던 자유학교의 렛츠 프로그램에 영감을 받아서 여러분과 함께해 보려고 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어떤 지식이나 경험에 대해서 여기 포스트잇에 적어서 벽에 붙여 주세요. 그런 다음 그 에너지를 원하는 사람들이 포스트잇 아래에 이름을 써 주세요. 어느 정도 모임이 구성되면 그룹을 나눠서 각자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려고 해요."


그렇게 자유학교의 렛츠 프로그램이 보세이 인생학교에서 시작됐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보세이 폴케호이스콜레에서는 점심을 먹고 나면 '어셈블리'라고 하는 전체 모임을 한다. 폴케호이스콜레에서는 보통 아침에 어셈블리를 하는데, 일어난 직후에는 학생들의 에너지 레벨이 높지 않은 탓에 보세이는 점심시간 이후에 진행 한다는 선생님의 대답을 들은 기억이 있다. 

매번 어셈블리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다르지만 주로 시작과 끝은 노래로 시작한다. 세계 뉴스를 나누는 시간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학교에서 함께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을 알리고 의논하는 시간이다. 매번 어셈블리는 선생님 한 분이 진행하는데 이야기를 나누는 역할도 한다. 선생님 개인의 성장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고 특정 인물이나 역사적인 사건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

특별히 자유학교를 소개할 시간을 어셈블리 시간에 배정받아서, 자유학교가 왜 보세이에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오게 되었는지, 자유학교의 시작은 어떠했는지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를 경험하고 한국에서 실험하고 있지만 그동안 자유 학교가 고민해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소개했다. 이날 발표가 끝나고 덴마크 친구들이 건네준 응원과 지지의 말들이, 그간의 힘들었던 내 시간을 보상해 주는 선물이 되었다.

어셈블리 모임이 끝나고 학교에서 피트니스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선생님이 다가와서 자유학교의 렛츠 프로그램에 대해서 궁금하다며 자세한 소개를 부탁했다. 오늘은 자신이 당직이라서 저녁에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한 번 진행해 보려 한다고 했다.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폴케호이스콜레 이브닝' 시간이 있어서 그 날 당직 선생님이 진행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할지는 당직 선생님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모인 학생들이 당직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서 자신이 나눌 수 있는 것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하얀 칠판에 붙이기 시작했다.

"자 이제 여기에 모여있는 에너지들을 하나씩 공유하면서 설명을 들어볼 테니 잘 기억하고 있다가 참여해 주세요."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에너지에 대해서 하나씩 설명을 들어 볼까요? 포스트잇에 적힌 제목을 읽어 줄 때마다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학생들이 답하기 시작했다.



"저는 큐빅을 빠르게 완성할 방법을 알려줄 수 있어요."
"우정 팔찌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어요. 친구와 가족들에게 선물하면 좋아요."
"학교에서 파티할 때 춤 때문에 잘 못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파티에서 간단하게 출 수 있는 춤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저는 스윙이라는 소셜 댄스를 알려 줄 수 있어요. 여행 다닐 때 재즈바가 있는 곳이면 쉽게 즐길 수 있어요."
"수영을 알려줄 수 있는데, 선생님 수영장을 개방해 줄 수 있나요?"
"그래요, 수영장을 프로그램하는 동안 개방해 줄게요."

"저는 프로그래밍하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중국 주사위 게임을 알려줄 수 있어요."
"디지털 드로잉을 알려줄 수 있어요."

"저는 총을 다루는 법을 알려줄 수 있어요."
"총이요? 그런데 총을 학교에 가지고 와 있는 건 아니죠?"
"사격을 위한 총은 집에 있고 당연히 학교에는 없어요. 간단히 설명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포스트잇에 모인 에너지에 관해 설명을 들은 다음은,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이름을 적는 순서다. 모두가 펜을 들고 앞으로 나와서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기 이름을 여러 곳에 적어도 되는지 묻는 학생들도 있었다. 프로그램에 따라서는 여러 곳에 참여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다른 곳에서 시작을 하므로 한 곳을 정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명쾌한 설명이 따랐다.

이 등록 시간이 끝난 다음에는, 프로그램을 이끌어 줄 사람을 확인한 다음 각자의 프로그램을 진행할 장소를 의논하고 학교 이곳저곳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졌다.
 
학생들이 포스트잇에 적은 나눌 수 있는 경험과 지식
 학생들이 포스트잇에 적은 나눌 수 있는 경험과 지식
ⓒ 양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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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윙과 파티에서 간단히 출 수 있는 춤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에 참석하기로 했다. 우리는 학교 태권도 도장으로 향했다. 춤을 추려면 거울이 필요하기도 했고, 애초 이 곳이 학교에서 K-POP이나 힙합 춤 수업을 진행하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처음 경험하는 스윙 댄스였지만 참가자들은 충분히 즐겨줬고, 시간이 있을 때 계속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주었다. 진행 중인 프로그램들을 모두 참여할 순 없었지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에너지를 다하는 모습이었다.

누구나 나눌 것이 있다
 
큐빅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모습
 큐빅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모습
ⓒ 양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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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교사이며 전 우주가 교실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자리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렛츠 프로그램을 진행한 선생님과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소로의 이 말을 인용했다.

"소로가 이야기 한 것처럼, 자유학교에서 렛츠를 하는 이유는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나눌 것이 있으며, 그곳이 바로 삶을 위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생각했을 땐 아주 작은 경험과 지식이지만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눌 수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자기 효능감과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시간은 또 다른 의미에서 '교육'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다양한 내용들이 쏟아져서 1시간으로는 부족하고 1주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일반 학사 일정이 아닌 테마 주간이라는 일정이 있는데 다음에는 아예 학생들이 참여하는 렛츠로만 1주일을 꾸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 안에 이렇게 많은 재능이 있는지 몰랐어요." 


그간의 노력에 대해서 덴마크 친구들에게 인정과 지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유 학교 프로그램이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봤던 그날의 기억. 이 기억은 아마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태그:#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 #보세이, #자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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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만들기 수업을 거친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입니다. IT/인터넷 업계에서 기획자로 일했고, 코워킹 스페이스를 창업하고,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삶을 위한 자유학교 운영자이기도 합니다. 쉼과 전환을 위한 안전한 실험실 - 자유학교 https://www.jayuskol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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