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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바르트노츠 성당
 즈바르트노츠 성당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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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바르트노츠(Zvartnots)는 예레반 국제공항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공항에서 서쪽 에치미아진 방향으로 7㎞쯤 가면 즈바르노츠 성당이 나온다. 예레반과 에치미아진을 잇는 큰 도로에서 남쪽으로 500m쯤 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이곳에서 100m쯤 더 가면 된다. 지금은 폐허가 된 채 기둥만이 남은 즈바르트노츠 성당을 만날 수 있다.

'즈바르트노츠'는 아르메니아어로 기쁨(Joyfulness) 또는 환희의 장소라는 뜻이다. 여기서 기쁨이란 기독교를 처음 받아들인 즐거움을 말한다. 즈바르트노츠 성당 자리는 301년 티리다테스 3세가 성 그리고르와 만나 기독교를 공인한 장소라고 한다.

그런 성스러운 장소에 650년에서 659년 사이, 네르세스(Nerses) 3세 주교에 의해 성당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당시 즈바르트노츠 성당을 찾는 사람들은 그러한 역사적 장소에서 하느님을 만나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환호했을 것 같다.

인간이 신을 만나는 기쁨의 감정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제4악장 <기쁨에 부쳐(An die Freude: 환희의 송가)>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시는 쉴러(Friedrich Schiller)가 쓴 것으로 자유(Freiheit)를 찬양하는 찬가 또는 송가로 계획되었다. 내용을 보면 프랑스 혁명에서 주장한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들어 있다. 5행에서 8행까지 차별의 철폐와 모든 인간이 하나 되는 형제애가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티칸 대성당 벽면에 조각된 아르메니아의 성 그리고르(그레고리우스)
 바티칸 대성당 벽면에 조각된 아르메니아의 성 그리고르(그레고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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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한 내용이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진보적이어서, 자유라는 개념을 기쁨으로 바꿨다는 얘기가 있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첫 4행에 있는 그대로 신을 만나는 즐거움 또는 신에 대한 찬양을 이야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신, 천국,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기쁨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기쁨,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천국의 딸,                                        Tochter aus Elysium,
우리는 불꽃에 취해 들어간다.          Wir betreten feuertrunken,
당신의 성스러운 땅, 하늘나라로!       Himmlische, dein Heiligtum!
당신의 마법이 다시 결합시킨다.        Deine Zauber binden wieder
구습이 엄격하게 구분 지었던 것을,    Was die Mode streng geteilt,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당신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기쁨과 즐거움의 전당이던 곳, 지금은 
 
즈바르트노츠 성당 복원도
 즈바르트노츠 성당 복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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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쁨과 즐거움의 전당이던 곳이 지금은 기둥과 벽 일부만 남아 성당이라는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기둥과 벽체로 보아 그리스 신전 같은 느낌이 든다. 기둥의 양식이 이오니아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물이 원형으로 되어 있어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 모습에서 벗어나 있다. 원래 모습을 가상해 만들어 놓은 미니어처를 보더라도, 3층의 원통형 건물로 되어 있고 위로 올라가면서 지름이 줄어드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해시계: 아르메니아 문자가 보인다.
 해시계: 아르메니아 문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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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은 10세기에 이르러 지진 또는 이슬람 제국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1900년대 초에서야 발굴이 시작되었고, 1905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현장에서는 기둥과 벽체 외에 벽에 새겼던 일부 조각을 확인할 수 있다. 석류, 포도와 포도잎, 독수리, 사람과 동물 부조가 눈에 띈다.

독립된 돌로 만들어진 해시계도 보인다. 네모난 돌 하단에는 눈금과 12개의 동심원이, 상단에는 아르메니아어 표기가 있다. 나중에 박물관에서 보니 헬라어가 새겨진 모노그램도 있다. 그러나 글씨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박물관에서 만난 고대와 중세의 흔적들
 
작은 크기로 복원된 즈바르트노츠 성당
 작은 크기로 복원된 즈바르트노츠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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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지나면 길은 자연스럽게 박물관으로 이어진다. 1990년대 초 이곳에서 발굴된 자료를 보관하는 장소로 처음 만들어졌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기 위해 전시물의 보완이 있었고, 2012년 역사문화박물관 겸 유물창고로 확장되었다. 박물관은 현재 세 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고고학 전시실, 역사전시실, 성당 건축전시실이 그것이다. 고고학 전시실은 성당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도기와 자기 그리고 청동기와 철기 등이 보인다. 도기로는 크베브리와 흑갈색 토기가 눈에 띈다. 백색과 흑색이 섞인 도기도 보인다. 청동검과 철제 마구로 보이는 물건도 있다.

역사 전시물로는 아르메니아 성당의 역사를 사진 중심으로 설명하는 패널이 보인다. 역사 전시물은 대부분 사진과 패널로 만들어져 있다. 성당의 역사와 건축을 보여주는 전시실이 가장 중요하고 내용도 풍성한 편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성당의 원형을 보여주는 설계도와 미니어처다. 미니어처는 내부를 볼 수 있게 가운데를 잘라 양쪽으로 떼어 놓았다. 이를 통해 원통형으로 보이지만, 정확히 32면으로 이루어진 원당형임을 알 수 있다. 1층은 벽을 하단과 상단으로 구분해, 하단에는 32개의 아치형 창을, 상단에는 원형의 광창(光窓)을 만들었다. 출입문은 모두 8개로 되어 있다. 1층 원당의 지름은 37.75m라고 한다.
 
포도와 넝쿨과 잎이 새겨진 부조
 포도와 넝쿨과 잎이 새겨진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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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있는 사람 부조는 삽과 망치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건축가 또는 노동자로 보인다. 동물 부조는 곰으로 보인다. 포도와 포도잎이 함께 표현된 것도 있고, 잎만 따로 표현된 것도 있다. 모자이크판 조각이 전시되어 있는데, 일부에서 문양과 채색이 확인된다. 이것은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기와의 수막새와 암막새도 있다. 그런데 조각이 그렇게 정교해 보이지는 않는다. 채색 도기편 일부도 있는데, 이슬람 지배 때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성당 건축에 사용되었을 법한 못과 고리도 있다. 정교하고 수준이 높은 유물은 덜한 것처럼 느껴졌다.

나오면서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본 성당 
 
즈바르트노츠 성당 기둥
 즈바르트노츠 성당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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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나오면서 보니 입구에서 몇 가지 책을 팔고 있었다. 나는 그 중 아르메니아의 자연, 역사, 문화, 종교를 소개하는 책자를 한 권 샀다. 아르메니아를 알게 해주는 입문서 겸 가이드북으로 2020년에 나왔다.

이 책은 이번 여행기를 쓰는 데 아주 유용한 참고문헌이 되었다. 박물관에 들어가서 전시물을 보고, 설명문을 읽으니 츠바르트노츠 성당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오는 길에 그 지식을 토대로 성당과 그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이곳에서 거의 정남향으로는 아라랏산이 자리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에치미아진 성당이 있다. 동쪽으로는 예레반이 위치하고 있다.

즈바르트노츠는 지리적으로 교통의 요지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그리고르와 티리다테스가 만나 아르메니아가 극적으로 기독교 국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폐허가 된 성당은 원형을 이루고 있어서, 사방 어디에서나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남북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성당을 지나면서 나는 다시 한번 기둥머리(柱頭)에 새겨진 독수리 문양을 자세히 살펴본다. 이들은 두 개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다. 날개를 펼친 것으로 보아 발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머리 모양으로 봐서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도록 만들어졌을 것이다.
 
즈바르트노츠 성당 기둥 주두의 독수리 문양
 즈바르트노츠 성당 기둥 주두의 독수리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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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는 아르메니아 국가 문장에 나오는 그 독수리다. 독수리는 과거 아르메니아 왕조로부터 현재까지 휘장 또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성당 내부에는 바닥을 보여주기 위해 철망을 쳐놓은 곳도 있다. 성당 내부는 동서남북 사방에 반원형의 경당을 만들고, 안쪽으로 사각형의 예배와 기도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 중 북쪽 경당 앞쪽으로 제단을 만들어 주벽으로 삼았을 것이다. 성당을 발굴한 토라마니얀(Toros Toramanian)이 그려놓은 성당 내부 평면도 자료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즈바르트노츠 성당은 에치미아진의 (대)성당과 함께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것은 이들 성당이 종교적 건축적 측면에서, 아르메니아 종교건축의 발전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십자 형태의 건물 중앙에 돔을 얹혀 있으면서도 특이하게 원통형 성당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즈바르트노츠 성당은 폐허로 남아 있지만, 이미 없어진 문명과 문화의 전통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세계유산이 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18회까지 아르메니아 문화유산을 이야기했고, 다음 19회부터는 조지아 문화유산을 소개하려고 한다.


태그:#즈바르트노츠 성당, #유네스코 세계유산, #그리스 신전, #이오니아식, #네르세스 3세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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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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