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서 재외 한인동포 3만 명이 모이는 행사가 열렸다. 21회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였다. 이 행사의 원래 이름은 '세계한상대회'였는데, 중국인들의 화상대회를 연상시켜 이름을 바꿨다. 이 행사와 함께 멀지 않은 LA에서 열린 한인축제와 조화를 이룬 의미있는 행사였다.

필자가 재직하는 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는 서울경제진흥원이 운영하는 부스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를 홍보하는 기회를 얻었다. 10여 일간의 출장을 통해 주마간산이지만, 미국의 변화 등 강한 느낌이 들었다. 세 차례에 걸쳐서 미국에서 느낀 세계 헤게모니 쟁탈전과 그속에서 한국의 위치 등에 관한 고민을 정리한다(1회, 미·중 헤게모니 경쟁, 2회 빛나는 재외 한국인의 역사, 3회 한국의 미래 먹거리는 무엇). [기자말]
누구나 재외동포가 되는 시대

'재외동포'는 생물 언어다. 지금 한국 땅에 사는 이들도 어느 순간 외국으로 이주해 살면 재외동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도 1999년 9월 결혼과 더불어 중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재외동포가 된 적이 있다. 30대를 보낸 1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감정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물론 중국에 있는 한국인은 중국 국적을 얻을 수도 없고, 한국과도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 상대적으로 재외동포로서의 인상이 덜하다. 하지만 외국에서 살아가면서 경제생활을 하고, 아이를 교육시킨다면 재외동포와 다름없다.

올 6월 5일 출범한 재외동포청은 이런 동포들의 전반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재외동포청은 지난 19일 재외동포의 숫자를 708만 명 정도로 발표했다. 코로나와 한국 경제 부진 등으로 인해 2년 사이 24만3000여 명 줄어든 수치였다. 재외동포는 시민권을 가진 외국국적동포(461만3541명)과 영주권자·일반체류자·유학생 등 재외국민(246만7969명)으로 나눤다.
 
이번 한인비즈니스대회 행사장 입구에는 한국 전통 공연이 진행됐다.
▲ 21회 한인비즈니스대회 장 입구 모습 이번 한인비즈니스대회 행사장 입구에는 한국 전통 공연이 진행됐다.
ⓒ 조창완

관련사진보기

 
우리 재외동포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기자는 2006년 10월 <오마이뉴스>에 '신라방, 고려영, 박씨촌... 그리고 신선족'( http://bit.ly/cziUb )이란 제목의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중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긴 역사를 정리한 글이었다. 당시 기자가 귀국하기 전이라, 중국에서 사는 신선족(新鮮族, 중국에 정착하는 한국인)의 상태였다.

외국에 사는 이들은 국적, 언어, 교육 등의 문제로 인해 정체성 유지가 쉽지 않다. 또 나라, 거리, 관계에 따라 상황이 각기 다르다. 우리는 경술국치 이후 건너간 이들을 재일동포로 부른다. 일본에도 고대부터 넘어간 한인들이 많지만, 그들의 정체성에는 한국이 남아있지 않다. 러시아에서 고통을 겪은 카레이스키(고려인)의 역사도 중국 동포 등과 다른 부분이 있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재외동포 역사는 짧지만 인구 수는 가장 많다. 재외동포청이 파악하는 미국 내 재외동포의 숫자는 261만5419명으로 전체 1위다. 이들의 숫자는 중국 동포(중국 호칭, 조선족)와 재중 교민을 합친 210만9727명보다 많다. 특히 중국 재외교포 숫자는 사드 도입이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상당히 줄어들었다.

흔히 국가 밖에서 살아가는 민족의 애환을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라는 말로 많이 표현한다. 우리 민족도 유대인 못지않게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이들이 많아서 각 나라에서 중요한 존재로 자리했다.

재외동포의 경우 고국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면, 재외동포들의 위상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상대적으로 비즈니스의 기회가 늘어난다. 게다가 재외동포들이 한국의 그 나라 진출에 있어 중심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아진다. 한국의 고도성장과 K-컬처가 주는 상승효과는 상당히 컸다. 과거 우리 말을 잊는 후세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학습을 통해서라도 모국의 언어를 익히는 게 일반적이다.
 
정치인들의 참여가 그 민족의 위상을 말해주기도 한다.
▲ 한인축제 50주년에 참석한 캘리포니아 민주당 하원의원 카렌 바스 정치인들의 참여가 그 민족의 위상을 말해주기도 한다.
ⓒ 조창완

관련사진보기

  
재외동포 가운데도 비즈니스를 업으로 하는 이들은 모국의 존재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축제이자 비즈니스의 장이 바로 애너하임에서 열린 '한상대회'다. 첫 한상대회는 월드컵의 열기가 식지 않은 2002년 10월 서울에서 처음 열렸다. 이후 한국 각 도시에서 열리면서 참가 규모가 커졌다. 이번 미국 애너하임 대회는 해외에서 열리는 첫 한상대회인데, 한상(韓商)이 화상(華商)을 벤치마킹한 느낌이라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로 명칭을 변경했고, 앞으로는 한국과 해외에서 번갈아 열릴 예정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한상대회와 외국에서 열리는 한상대회는 참가하는 이들에 따라 인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행사장에서 만난 사업가 엄미영씨는 필라델피아에 사는데, 샌디에이고로 비행기로 이동해 친구를 만나 같이 한인비즈니스대회에 참석하고, 주변도 여행했다.

"2016년 제주에서 열린 한상대회부터 참석했다. 이번에도 한상대회를 통해 친구를 만나서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내년에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도 꼭 참석할 생각이다."

재외동포들에게 한상대회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오랜만에 고국이나 다른 나라를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다만 이번 한상대회는 코로나로 인한 후유증인지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온 중국 동포들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고국 위상에 따라서 변하는 재외동포의 존재감

재외동포들에게 모국의 위상은 자신들에게 곧바로 영향을 미치고, 존재감을 만드는 큰 위상변화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등지에 사는 한국인들도 요즘은 자부심이 높다. 일단 한류로 인해 한국에 대한 호감이 크다. LA에서 한국 식품과 액세서리 등을 수입하는 사업을 하는 제임스 홍씨는 이렇게 말했다.

"BTS, 블랙핑크 등 한국 문화로 인해 한국 음식점의 손님은 대부분 외국인으로 바뀌었다. 외국인들은 한국 문화를 낯설어 하지 않는다. 한국 액세서리 등도 그만큼 위상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위상이 곧 재외동포들의 위상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나 외교가 순식간에 재외동포의 위상을 흔들기도 한다. 2016년 사드 도입 발표로 인해 냉각기에 들어간 대중국 관계는 중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혼돈 그 자체였다. 2017년 3월 경북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면서, 중국은 사실상 대부분의 한중교류를 끊어버렸다.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들은 터전이 완전히 무너졌고, 귀국 열풍이 시작됐다. 

게다가 2020년 코로나 팬데믹까지 시작되자, 중국 내 한국인 사회는 사실상 붕괴됐다. 중국인들과 국제결혼을 일부 재중 거주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인은 귀국했다. 재중동포(중국 호칭 조선족)를 제외하고도, 100만 명에 달했던 중국 내 한국인은 1/4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국 음식점이 즐비하던 베이징 코리아타운 왕징에서 찾을 수 있는 한국음식점은 곰집, 자하문, 삼부자 등 비교적 중대형급 식당 정도다. 사드 등 외교나 군사 문제도 있지만, 급속히 올라간 임대료 문제 등 삼중고가 겹치면서 중국 내 한인사회는 더욱 급속하게 위축됐다.
 
당시에는 한국 간판이 즐비 하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왕징의 한인 숫자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다
▲ 2000년대 중반 왕징 3구의 한국음식점 간판 당시에는 한국 간판이 즐비 하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왕징의 한인 숫자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다
ⓒ 조창완

관련사진보기

  
현재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철수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중국 내 한국인 사회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을 한국의 생산기지로 사용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중국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명확한 대안은 나오고 있지 않는 상태다.

재외동포의 위상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측면도 있다. 이번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행사에서 가장 많이 얼굴을 보인 이 가운데 한 명은 프레드 정 플러턴시 시장이었다. 풀러턴(Fullerton)시는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35㎞ 떨어진 인구 약 16만 명의 도시다. 과거 농업이 중심인 도시지만, 교육, 제조업으로도 영향력을 확대하는 지역이다. 특히 LA에 비해 좋은 치안을 바탕으로 한인사회가 확대되는 도시다. 이미 풀무원, CJ 미주지사 등이 있지만 한국기업이 들어가고, 유학생들이 들어갈 경우 더 큰 한인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 이 점을 알기 때문에 프레드 정 시장도 고국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행정을 펼치는 모습이 역력했다. 미국에 거점이 필요한 한국기업들을 찾는 만큼 이런 기회를 잘 이용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보인다.

재외동포들은 고국이 위기를 맞을 때 가장 큰 힘을 보태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하와이나 멕시코, 쿠바의 에네켄 농장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던 한인 이주 1세들은 고통스럽게 번 돈을 독립자금으로 기부했었다. 한국인은 중국인에 비해 숫자는 적지만, 더 많은 나라에 터를 내린 민족이다. 그 만큼 더 활발한 디아스포라의 기반을 가진 국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자가 만난 재외동포들은 대부분 말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도 문제지만, 한인 3, 4세들도 아이 낳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재외동포들의 고령화도 피할 수 없는 상황같다. 어떤 정책으로 이런 상황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정부가 정책을 통해서 더 한인들을 더 친밀하게 모을 수 있다면, 재외동포 사회는 더 활발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외동포청의 개청 등은 좋은 판단이다. 재외동포와 고국의 시너지 효과가 한민족의 미래 만든다."

[관련 기사]
미중 헤게모니 싸움... 구원자는 한국이 될 수도? https://omn.kr/262ml
  
한국인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농악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 한인비즈니스대회 행사의 농악공연 한국인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농악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 조창완

관련사진보기

  
외국에 있어서 한국에 대한,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
▲ 한국인거리 퍼레이드에 참여한 미주3.1한인 청소년회 외국에 있어서 한국에 대한,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
ⓒ 조창완

관련사진보기

 

태그:#한상대회, #재외동포, #한류, #한국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