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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첫사랑과 10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장기 연애를 했다고 하면 왠지 상대도 나와 비슷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남편은 나와 많은 면에서 반대의 척도를 지닌 사람이다.

MBTI 검사를 하면 대부분의 경우 그는 ENTJ(대담한 통솔자), 나는 ISFJ(용감한 수호자)가 나온다. 그중 가장 상극인 부분을 꼽자면 T와 F형인데, 사고형(T)은 논리와 이해, 인과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감정형(F)은 감정과 공감,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형이다.

그렇다. 숫자와 팩트에 반응하는 전형적인 T 남자와 관계와 분위기에 반응하는 눈물 많은 F 여자가 만나버린 것이다. 연애 초반부터 다투었던 대부분의 일들은 남편이 내 마음을 몰라줘서 (또는 공감해 주지 않아서) 서운함에 우는 경우가 많았고, T 인간의 기준에는 그 서운함의 인과관계가 전혀 맞지 않았던 것. ("그건 전혀 서운할 일이 아닌데?" vs. "아니 근데 나는 그게 서운하다고")

둘 다 서툰 나이에 연애를 시작해, 가장 찌질하고 부족한 모습을 들켜가며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나와 생각이 다른 그가 마냥 서운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 '남자들은 다 이런가' 하며 머리를 감싸쥐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로를 점차 알게 되며 이해하는 성장의 과정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과정은 계속되고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두터워지기

남편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꽤나 고된 10대 후반을 보내야 했다. 그 후폭풍을 맞이하던 시절 나를 만났는데, 당시엔 어렴풋한 짐작만 했었지 그가 처했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많은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찾다 금융권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고, 부동산과 주식에 관심이 많아 내가 모르는 낯선 전문용어들을 생활 단어처럼 꿰고 있다.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던 철없는 여자친구에게 말 못 할 집안 사정을 안고 있었던 10대 시절의 그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조금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그가 현실적이고 냉철하며, 처한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의 탓도 클 것이다.

지금도 그는 우리 가족 내 해결사의 역할을 맡고 있다. 내가 '서재가 필요하다'라고 하면 그는 계산기를 두드려 이사를 알아보고, '회사 생활을 20년 넘게 하는 게 가능할까?'라는 투정아닌 투정을 부렸을 때는, 빠른 은퇴를 할 수 있는 자금은 얼마인가 계산하며 혼자 머리를 싸맸다.

함께 산책하다 우연히 너무 멋진 노을을 본 날, 그때의 시간을 기억해두고 다음번 저녁에도 7시 26분 정도에 나서야 한다는 대문자 T 남자. 그는 마치... 진지하면서 조금 낭만적인 로봇 같다.

어찌 보면 냉철해 보이는 그도 공감이 주는 위로의 힘에 기댈 때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가 사이드잡 사업에 도전했다 실패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는 그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순 없었지만 노자의 명언을 빌려 가며 진심으로 위로했다. 이후 남편은 편지로 힘든 시기를 헤쳐나갈 힘을 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었다.

줄곧 혼자 손목 치료를 받으러 다니던 남편의 보호자로 병원엘 따라갔던 날, 같이 대기실 소파에 앉아있는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는데도 "내가 같이 와서 좋았어?" 하고 물어보자, "어. 그냥 옆에 앉아있는 걸로 힘이 되더라. 신기했어" 하고 답했던 날도 있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닮아가는 취향
 
<19/20 열아홉 스물> 소개 페이지 화면 캡처
 <19/20 열아홉 스물> 소개 페이지 화면 캡처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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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남편과 내가 가장 비슷하다고 느낄 땐, 같은 것에 웃고 같은 것에 운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며 새벽에 눈이 퉁퉁 붓도록 함께 오열하고, 밤 드라이브를 할 때면 꼭 듣는 김광석 노래의 가삿말이 주는 감동을 공유하고 함께 곱씹는 시간을 좋아한다. 애니메이션 <업>에서 커플의 연대기가 나오는 장면은 둘 다 너무 좋아해서 결혼식의 테마가 되기도 했었고.

얼마 전 남편과 함께 넷플릭스 <19/20 열아홉 스물>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19살에 만난 남녀 학생들이 같이 성인이 되어 풋풋한 사랑을 키워나가는데, 너무나도 순수한 그들의 한때를 보며 우리의 과거도 떠올려보게 되었다.

눈 오는 날 서프라이즈로 데리러 왔던 하굣길, 선물 대신 친구를 준비했다며 줬던 엄청나게 커다란 곰돌이 인형. 고3이라 핸드폰을 자진 반납하고 살던 나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주고, 전화받으라며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어 통화했던 밤들. 너무나도 서툴지만 그 나이라 귀여웠던 우리들의 시행착오와 해프닝들.

성향은 너무 다르게 타고났지만 그동안의 세월 앞에 쌓인 우리의 역사와 취향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상대방이 무언가 좋다고 하면 나도 괜히 더 좋아지는 수많은 선택들이 우리를 비슷한 것에 울고 웃게 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MBTI는 다름을 이해하는 도구일 뿐 

과거의 경험과 지금의 환경과 맺고 있는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 자체가 인간을 가장 흥미롭고 복합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그러므로 MBTI의 16가지 성격 유형이 나를 특정하는 하나의 단어라기보다는, 상대방과 내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서로의 경험과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또 그 안에서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인생의 동반자로서 충분히 든든하지 않을까. 비슷한 것보다는 반대의 합이 좀 더 역동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믿으며, T인간를 만나는 전국의 모든 F인들께도 공감과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태그:#MBTI, #T남자, #F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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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기쁨을 더 자주 기록하고 싶은 취미부자 직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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