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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대법원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6일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대법원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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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기재한 이유로 항소심에서 1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던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에 대해 대법원이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2015년 11월 기소된 지 약 8년 만이다.

26일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이 사건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며 박 교수에게 내려진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박 교수는 2013년 8월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이자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고, '일본 제국에 의한 강제 연행이 없었다'고 허위 사실을 기술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2017년 1월 1심 재판부는 "위안부라는 역사적 집단을 말한 것으로 피해자가 특정됐다고도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35개 표현 중 대부분인 30개가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에 해당하고 구체적인 피해자도 특정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같은 해 10월에 열린 2심 결과는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독자들로 하여금 객관적 사실과 달리 받아들이도록 했다"며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특히 기소된 35개 표현 중 11개에 대해 사실 적시로 인정하고 각 표현은 허위사실 및 명예훼손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 "통상의 연구윤리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

26일 대법원은 해당 사건을 파기환송한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우선 "피고인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문학과 한일 근현대사를 연구하던 중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결과로 이 사건 도서를 발표했다"며 "그 과정에서 통상의 연구윤리를 위반하였다거나, 피해자들의 자기 결정권,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을 경시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추어, 피고인이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하였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라고 밝혔다.

"피고인(박유하 교수)은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일본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제국주의 사조나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으므로 전자의 문제에만 주목하여 양국 간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 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대법원은 "일본군 위안부의 전체 규모나 조선인 비율에 비추어 조선인 위안부를 구성원 개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거나 균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용어의 개념, 포섭 범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므로, 해당 표현은 학문적 견해 표명 내지 의견 진술로 보아야 한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 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적절성은 형사 법정에서 가려지기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하여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첨언했다. 

박유하 "국가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말할 자유를 둘러싼 판결"

박 교수는 이날 대법원 판결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입장을 올렸다. 박 교수는 "(대법원 판결은)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판결이었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고 말할 자유, 그러니까 근본적으로는 사상의 자유를 둘러싼 판결이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판결은 대한민국에 국민의 사상을 보장하는 자유가 있는지에 관한 판결이었다고 저 자신은 생각한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오늘 판결은 아직 끝이 아니다. 민사 재판이 남아 있고 어쩔 수 없이 책을 삭제해야 했던 가처분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며 "그 모든 것이 다 끝나고 저의 책과 저의 인생이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국민의 자유로운 생각이 보장되는 민주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박유하, #제국의위안부,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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