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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가을밤, 멕시코 시티의 깜깜한 공항에 도착한 나는 숙소에서 꼬박 이틀을 내리 잤다. 입국 심사가 까다로운 미국을 경유해 무려 3일을 비행한 탓에 정신과 체력이 모두 지친 탓이었다. 며칠 만에 눈을 떠 창밖을 봤을 때, 사방은 캄캄했고 숙소 옆 식당만이 희미한 불빛과 고소한 냄새를 내뿜고 있었다. 그게 멕시코 타코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한국에서 타코는 내게 비싼 편에 속하기도 하고,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고 느껴져서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한 두어 번 먹어본 게 다다.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멕시코 타코는 달랐다. 우리 돈 1000원~2000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타코는 상추쌈과 비슷합니다, 이렇게요
 
상추 대신 토르티야가, 위에 고기를 올리고 채소와 쌈장 대신 살사 소스를 넣어 돌돌 말아먹는게 닮았다.
▲ 상추쌈과 닮은 타코 상추 대신 토르티야가, 위에 고기를 올리고 채소와 쌈장 대신 살사 소스를 넣어 돌돌 말아먹는게 닮았다.
ⓒ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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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와 사랑에 빠지면서 내가 느낀 건 타코는 우리네 한국식 상추쌈과 닮았다는 점이다. 상추 위에 각종 고기를 올려 쌈장을 넣고 취향 따라 양파, 김치, 파무침, 마늘 등을 넣어 먹는 것처럼 타코도 그렇다.

토르티야 위에 각종 고기를 올리고 쌈장 대신 살사 소스, 그리고 각종 채소를 얹은 다음 돌돌 말아 먹는다.
 
타코 식당에 가면 기본적으로 녹색과 빨간색 소스를 내어준다. 식당마다 모두 직접 만들기 때문에 맛이 다 다르다.
▲ 타코의 살사소스 타코 식당에 가면 기본적으로 녹색과 빨간색 소스를 내어준다. 식당마다 모두 직접 만들기 때문에 맛이 다 다르다.
ⓒ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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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음식 맛은 '장' 맛이 결정하듯 멕시코의 타코 또한 그렇다.

타코는 기본적으로 빨간색 소스와 녹색 소스 두 가지를 입맛에 따라 뿌려 먹는데, 살사 소스의 가장 기본 재료는 '고추'다. 거기에 마늘, 양파 등을 타코 집 주인의 레시피대로 만들어 낸다. 내가 이 사실을 안 건 멕시코에서 처음 방문한 타코 집 사랑스러운 소녀의 귀여운 설명 덕분이다.
 
멕시코의 모든 타코 집은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철판에 타코를 굽는다
▲ 철판에 굽는 타코2 멕시코의 모든 타코 집은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철판에 타코를 굽는다
ⓒ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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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타코가 한국 타코 맛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철판의 힘에 있다.

거대한 철판 위에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생고기를 구워내고, 옥수수로 만든 토르티야를 올려 뜨끈하게 데워준다. 타코의 종류는 토르티야 위에 올라가는 고기의 종류와 부위에 따라 결정된다.
 
멕시코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타코의 종류.
▲ Tacss al pastor 멕시코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타코의 종류.
ⓒ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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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타코는 Tacos Al Pastor다. 주인장 손맛으로 양념한 거대한 고기를 그릴에 꽂아 서서히 익혀준 뒤 주문이 들어오면 쓱쓱 썰어내어 토르티야 위에 올려준다.

멕시코의 타코 식당은 저렴한 곳부터 고급스러운 곳까지 다양한데 나는 길거리 노점상에서 갓 만든 타코를 먹는 게 좋았다. 타코 노점상 앞에 우르르 서 있는 사람들 틈에 비집고 들어가 함께 타코를 먹는다. 이방인인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질문하는 그 순간들이 모두 사랑스러웠다.
 
굳이 식사 시간이 아니어도 타코 식당 앞에는 늘 사람들로 붐빈다
▲ 타코집 앞 인산인해 굳이 식사 시간이 아니어도 타코 식당 앞에는 늘 사람들로 붐빈다
ⓒ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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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집 근처 베토벤 시장(동네 이름이 베토벤인 평범한 시장)을 가는 길에 사람들이 서 있길래 자세히 보니 역시나 타코 집이다. 딱 봐도 저기는 맛집이다! 는 생각에 시장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들렀다.

타코 1개에 23페소로 다른 곳보다 조금 비쌌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으니, 맛은 검증된 셈이다.

표정은 무뚝뚝하고 말투는 거칠어도
 
표정은 화나보이지만 말 속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 화난 모습의 할아버지 표정은 화나보이지만 말 속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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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험상궂게 생긴 할아버지 한 분이 타코를 굽고 있었는데, 내가 들고 있던 촬영용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는 게, 촬영을 하면 안 될 거 같은 분위기였다.

"그 카메라는 뭐야?"

"유튜브를 찍는데, 멕시코의 타코를 한국에 알리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 그럼 나 좀 빌려줘, 여기에 보안 카메라로 쓰게"


표정과는 다르게 말의 내용에는 장난기가 넘쳤다. 고심 끝에 주문한 소시지 타코를 한 입 넣어본다. 진한 옥수수 향과 짭조름한 소시지 맛이 입안을 가득 메우는 게 역시 맛있다. 타코를 반쯤 먹을 때였을까. 

갑자기 할아버지가 무심한 듯 타코 한 개를 툭 내어준다. 멕시코 사람들이 자주 먹는 타코라고, pastol 타코를 주며 맛보라는 거다.

'공짜 타코'를 내주시면서도 인상은 찌푸리고 있는 할아버지, 그런데 겉보기와 달리 마음은 따뜻하다. 할아버지의 타코는 토르티야의 옥수수맛이 그 어떤 곳보다 강했다. 그리고 고기의 쫄깃함과 특유의 육향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렇다, 바로 이게 내가 길거리 타코를 고집하는 이유다. 멕시코 사람들의 삶 안으로 들어가는 그런 느낌 말이다.

사실 길거리 타코는 한국의 위생 기준으로 보면 조금 미달이다. 언제 씻었는지 모르겠는 낡은 나무 도마는 이미 이곳 저곳 깊게 파여있고, 얼마나 고기를 잘랐으면 파인 나무 틈 사이에 찢긴 고기들이 박혀 있는 것쯤은 예사다.

날 것 그대로의 멕시코를 만나고 싶을 때  

위생 장갑은커녕 생고기를 만졌다가, 채소를 다시 만진 손으로 익은 고기를 자르는 주인장의 손톱에는 고기 때가 박혀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나는 길거리에서 파는 천 원짜리 타코가 제일 맛있다.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멕시코 풍경이 좋다.

"양파 좀 더 주세요."
"커피 한 잔 추가할게요."
"고기가 너무 큰데, 좀 더 잘게 잘라줄 수 있나요?"
 

가격은 1,000원이지만 뭘 요청하든 불만 없이 들어주니, 멕시코 인들 특유의 낙천적 성격을 느낀다. 턱 하니 노상에 앉아 타코를 먹는 멕시코 사람들을 구경하고 길거리 풍경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게 정말 재미였다.

특히 나는 기본으로 주는 양파 외에 더 추가해서 아삭아삭하게 먹는 걸 너무 좋아한다.

잘 익은 고기와 아삭한 생양파, 정성 들여 만들었을 짭조름한 살사 소스와 고소한 옥수수 토르티야가 입안에서 하나로 뭉쳐지면 그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한편 타코 위에 올라가는 토핑은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부터 고기의 특수부위까지 다양하다.
   
파인애플을 토핑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 파인애플 토핑 파인애플을 토핑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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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을 올려 먹는 사람도 있는데, Pastol 타코 위에 파인애플과 양파 토핑, 파인애플의 달콤한 맛이 짭조름한 맛을 중화시켜준다. 
   
한편, 노점상이 아닌 타코 식당 중 제일 괜찮은 곳을 꼽자면 Nelly taqueria(넬리 타께리아)라는 타코집이다. 타코 체인점인데 제법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이 집은 소고기 치즈 타코가 제일이다.
  
선인장은 멕시코인이 즐겨먹는 식물 중 하나다
▲ 선인장과 함께 선인장은 멕시코인이 즐겨먹는 식물 중 하나다
ⓒ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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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녹색식물은 선인장인데, 멕시코 사람들은 선인장을 실제로 자주 먹고, 슈퍼에서도 판매하기도 한다.      

가끔 가게에 따라 기본으로 주는 녹색과 빨간색 살사 소스 외에 가게만의 독특한 소스가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센트로에 위치한 타코 집에서 파는 제법 트렌디한 타코도 먹어봤다. 돼지비계를 바삭하게 튀겨낸 치차론 타코가 아주 입맛에 딱 맞았다. 그 이후로 이 집보다 맛있는 치차론 타코 집은 못 찾았다. 돼지 비계인 치차론은 잘못 튀기면 물컹해서 영 맛이 없는데 이 곳은 아니었다. 중심가에 위치한 만큼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고 위에 올라가는 토핑도 아보카도 등등 다양하다. 소스도 다섯 가지나 된다.
 
센트로에 위치해 외국인과 멕시코의 MZ세대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 트랜디한 타코 식당 센트로에 위치해 외국인과 멕시코의 MZ세대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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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먹는 1000원짜리 타코가 제일 좋다.

만약 멕시코로 여행을 떠난다면, 길거리 노점 앞 현지인들 틈 사이에 끼어 갓 만든 타코 하나를 먹으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스페인어를 잘 못한다고? 그래도 괜찮다. 우리에겐 몸짓, 발짓 바디 랭귀지가 있지 않은가.

태그:#멕시코여행, #중미여행, #타코, #멕시코미식기행, #타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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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곳의 어색함과 이질적인 풍경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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