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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 주민이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정지' 뉴스 자막을 바라보고 있다.
 22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 주민이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정지' 뉴스 자막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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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후 4시.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70km를 내달려 강원도 철원에 들어서니 녹색 군부대 표지판과 군인들, 카페·식당을 운영하는 상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북한과 경계를 맞댄 접경지역으로 분류되지만, 이곳 주민들의 일상은 서울 여느 동네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군사분계선(MDL·휴전선)에서 19km 남짓 떨어진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터미널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정아무개(50)씨는 <오마이뉴스>에 착잡한 심정을 밝혔다.

"같이 좋은 방향으로 가자고 군사합의를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없앤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해요."

3년 전 철원에 정착해 살고 있다는 정씨는 "여기 사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생각하지 않고 군사합의를 깨뜨린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어느 정도 기울기를 맞추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북한이 도발한다고 똑같이 뭘 쏘겠다고 하면 연평도 포격 때보다 심각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했다.

철원에서 나고 자란 윤아무개(19)씨도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정부가 군사합의 효력 정지로 맞선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윤씨는 "5년 전 체결한 약속을 왜 정부가 스스로 깨뜨렸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앞으로의 남북 관계에 어떻게 대처할지 구체적인 시기나 계획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약속을 어기다 보니 자꾸만 불안감이 든다"고 했다.

신철원터미널 인근 한 카페에서 일하는 박정연(28)씨는 "철원에 있다 보면 군부대 훈련으로 포가 터지는 소리라든지 큰 소리가 많이 난다"며 "군사합의 파기가 당장 직접적으로 와닿지는 않지만 앞으로 불안감을 느끼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군사분계선 감시·정찰 재개... 접경지역 '불안' '무감각' 공존
 
(서울=연합뉴스) 북한은 21일 오후 10시 42분 28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에서 발사 상황을 참관하고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과 연관기관의 간부들과 과학자, 기술자들을 열렬히 축하"해주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11.22
 (서울=연합뉴스) 북한은 21일 오후 10시 42분 28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에서 발사 상황을 참관하고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과 연관기관의 간부들과 과학자, 기술자들을 열렬히 축하"해주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11.22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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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주민들이 인터뷰에 응하기 1시간 전인 22일 오후 3시, 국방부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체결된 9·19 군사합의 가운데 1조 3항의 효력을 정지했다.

21일 밤 10시 47분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1호기 '만리경-1호'를 발사하자 정부는 영국에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 주재의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의 임시 국무회의를 거쳐 해당 조항의 효력 정지를 결정했다. 이로써 군은 비행금지구역으로 묶여 있던 군사분계선 20㎞(서부)~40㎞(동부) 구간에서 감시·정찰 활동을 5년 만에 재개했다.

북한 역시 9·19 군사합의에 따라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를 회복하겠다고 23일 밝혔다. 우리 군은 22일 최전방에 감시·정찰 자산을 투입했으나 접경지역 주민들은 곧바로 체감하진 못하는 듯했다. 군사분계선 가까이서 평생을 살아온 일부 주민들은 물리적 거리에서 비롯되는 불안감 속에서도 대체로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철원의 한 육군 부대에서 군 복무 중인 일병 이아무개(21)씨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 평생을 최전방에서 살았지만 뉴스를 활발하게 보지 않으면 '접경지역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어렵다"며 "누군가는 (군사합의 파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으나 막상 위험한 상황이 터지고 나서야 알아차릴 때가 많다"고 했다.

철원에서만 30년을 살았다는 박주영(36)씨도 "전쟁이 나지 않아야 하는 건 맞지만 오랜 세월 이곳에서 거주하다 보니 실제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주민들이 안보 위험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 "평화 포기한 정부"
 
(런던=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런던의 한 호텔에서 북한의 이른바 '군사정찰위성' 발사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3.11.22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런던=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런던의 한 호텔에서 북한의 이른바 '군사정찰위성' 발사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3.11.22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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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문서로 채택된 남북 간 합의를 먼저 파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9·19 군사합의 1조 3항 효력 정지를 두고 "국가 안보에 꼭 필요한 조치이자 최소한의 방어 조치"라고 밝혔으나, 북한이 이를 구실로 군사합의 파기를 공언한 만큼 추가 역공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23일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군 전문가들 역시 북한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에 따라 군사적 도발을 중단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북한이 군사합의를 파기하고 탄도미사일 발사 등 추가 심야 도발에 나선 것은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군사합의 효력 정지는 윤석열 정부의 악수 중 악수였다"며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평화를 지키고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이 모든 걸 한 방에 포기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군사합의를 전면 파기하는 등 추가 도발의 모든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는 상황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북한에 유리하게 구축돼 있던 군사합의 1조 3항의 효력을 정지하니 북한도 더 이상 군사합의의 의미를 찾지 않고 대한민국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라며 "남북 간 통신선이 모두 끊겨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한반도 전역의 긴장을 조성하기 위해 북방한계선(NLL) 도발에 나설 수 있다.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할 것인지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태그:#북한, #군사합의, #군사분계선, #철원, #효력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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