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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정·이슬아(왼쪽부터) 작가의 북토크 '타인과 나 사이에서 쓰기'가 23일 오후 7시 서울 은평구 한 카페에서 열렸다.
 김인정·이슬아(왼쪽부터) 작가의 북토크 '타인과 나 사이에서 쓰기'가 23일 오후 7시 서울 은평구 한 카페에서 열렸다.
ⓒ 최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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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를 이용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쉽게 촬영하고, 중계하고, 전달하는 '고통의 중개인'인 시대인 것 같아요. 또 소셜미디어에 접속하기만 해도 자신의 의지와 관련 없이 타인의 고통을 구경하게 되는 시대인 것 같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데 서툰 시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낸 김인정 작가(전 광주MBC 기자)가 지난 23일 오후 7시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 열린 북토크에서 한 말이다. 사회부 기자로 일했던 김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고통의 전달자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고통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데 긍정적일까? 아니면 구경꾼을 양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뿐일까? 사건·사고를 사람들이 어디까지를 목격하도록 해야 단순한 충격이나 선정적 자극이 아닌 효과적인 목격이 될 수 있을까?" - <고통 구경하는 사회> 32~33쪽

고통 재현하는 기자의 딜레마 "감시와 사유 필요"

이날 김 작가는 이슬아 작가와 함께 고통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 50여 명을 모아 북토크를 열고 "타인의 고통을 재현할 때 필요한 태도"에 대해 말했다. 두 작가 모두 '나'에서 '너',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로 시선을 확장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느낀 점들을 풀어냈다.

이들은 서로를 얼굴보다 글로 먼저 만났다. 이 작가는 "인정이 보스토크 잡지 편집동인으로 있을 때 쓴 글"로, 김 작가는 "슬아를 그의 책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로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이후 "서로가 개인에서 공동체로 확장하는 글쓰기를 하는 걸 보며 서로가 멀지 않은 글쓰기를 해왔을 거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기자로 일했던 13년간 고통을 재현하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전했다. 수많은 사건사고, 재난참사 현장에 갔고 간절한 제보자들을 마주한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비극적인 사건을 전달할 때) 그와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분명히 필요해요. 그런데 시선을 끄는 것에서 멈춰버리면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 되더라고요.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 이미 겪고 있는 고통에 한 가지 고통을 더하는 것 같았어요." 
 
김인정·이슬아(왼쪽부터) 작가의 북토크 '타인과 나 사이에서 쓰기'가 23일 오후 7시 서울 은평구 한 카페에서 열렸다.
 김인정·이슬아(왼쪽부터) 작가의 북토크 '타인과 나 사이에서 쓰기'가 23일 오후 7시 서울 은평구 한 카페에서 열렸다.
ⓒ 최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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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그런 고민이 담긴 인정의 책은 딜레마의 천국같으면서도 무기력에 빠지지 않게 하는 책"이라고 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 속 제가 좋아하는 문장을 읽어드리고 싶어요. '대상화를 무작정 멈추라는 말은 함정이다. 타인에 대한 말하기가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도울 기회를 알지도 못한 채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이 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엄청 큰 위안이 되었고, 무기력의 시대 속 무기력에 빠지지 않게 하는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두 작가는 마지막으로 공동체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을 이렇게 정리했다.

"<일간 이슬아>를 보낼 때 처음에는 저의 이야기를 보내다가 2년쯤 됐을 때부터 중요한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 타인에게 있다는 걸 여실히 느꼈어요.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 이야기, 동물권 이야기, 장애인이 춤 추는 이야기 등 (공동체의) 이야기를 보냈어요. 그러다 어떤 독자님으로부터 '왜 이렇게 정치적인 글을 보내나요? 재미가 없다'는 답장이 왔어요.

'재미가 없다'는 말은 속상했지만 '정치적이지 않은 글이 있나?'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법과 제도, 시스템, 권력자들의 결정과 그게 일상에 미치는 영향들에 관련된 이야기요. 그래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재미있게 쓸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저는 그런 일을 잘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 이슬아

"타인의 고통은 재현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편집과 해석이 들어갈 수 있어요. 여러분도 타인의 고통을 다루게 될 때 누구의 고통이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향해 재현되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재현되고 있는지, 공동체의 진짜 중요한 고통이 말해지고 있는지 감시하고 사유하며 지켜보면 좋겠어요." - 김인정


광주MBC에서 기자로 일한 김 작가는 현재 미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 사이 보스토크 잡지의 편집 동인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사진가로 살았다. 최근엔 타인의 고통을 담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느낀 딜레마를 <고통 구경하는 사회>라는 책으로 엮었다.

'2023년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예스24)에 오른 이 작가는 이메일로 보내는 '일간 이슬아' 서비스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13권의 책을 낸 그는 작가, 출판사 사장, 드라마 각본가로 살고 있다.
 
김인정·이슬아 작가의 북토크 '타인과 나 사이에서 쓰기'가 23일 오후 7시 서울 은평구 한 카페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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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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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은이), 웨일북(2023)


태그:#김인정, #이슬아, #고통구경하는사회, #일간이슬아, #북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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