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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베란다에는 화분이 많다. 반려동물 대신 반려식물로 키우고 있다. 그중 군자란 화분은 매년 3월이면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귀한 화분이다. 군자란 화분은 물을 2주에 한 번 정도 주고 제일 가장자리 잎만 가끔 벗겨주면 되어 키우기도 쉽다. 키우기도 어렵지 않은데, 매년 어김없이 꽃을 피워주니 그것도 참 고맙다.
  
포기를 나누어 다른 화분에 옮겨 심은 군자란 화분이 다섯개다.
▲ 아파트 베란다 군자란 화분 포기를 나누어 다른 화분에 옮겨 심은 군자란 화분이 다섯개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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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군자란은 우리 집 역사와 비슷하다. 아파트 입주하면서 키우기 시작했으니 20년이 넘었다. 하나는 친정에서 키우던 것을 가지고 왔고, 하나는 길에서 7,000원 주고 산 화분이다. 키우다 보니 옆에서 싹이 올라와서 포기를 나누어 다른 화분에 옮겨 심어 화분 수를 늘렸다. 군자란 화분이 다섯 개가 되었다. 군자란은 수선화과라 알뿌리가 있어서 포기를 나눌 때 조심해야 한다.

작년 봄에는 꽃이 많이 피어 베란다가 군자란꽃으로 화려했다. 색깔도 주황색이다 보니 초록색 잎과 대비되어 화려함의 극치였다. 몇 주 동안 우리 집은 꽃 잔치로 행복했다. 군자란꽃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애써 피운 꽃이 1주일도 안 가서 시드는 것도 있는데, 군자란은 3주 정도 꽃을 보여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참 요란했던 가을 날씨 
 
작년 3월 중순 경에 군자란꽃이 활짝 피어 행복을 안겨 주었다.
▲ 우리집 화분에서 핀 군자란꽃 작년 3월 중순 경에 군자란꽃이 활짝 피어 행복을 안겨 주었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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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날씨는 참 요란했다. 비도 많이 내리고 추웠다와 더웠다를 반복했다. 가을인가 싶으면 여름 같고, 다시 추운 겨울 날씨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도 적응하기 어려워 독감도 유행하고 감기도 많이 걸렸다.

이번 11월이 가장 힘들었다. 남편과 내가 나란히 감기에 걸려서 거의 한 달 내내 힘들었다. 처음에는 코감기와 기관지염으로 고생했다. 목이 나으니 다음에는 기침이 심해졌다. 감기 중에 기침이 가장 힘들다. 기침이 나오면 말하기도 힘들고 가슴도 아픈 탓이다.

사람도 적응 어려운 날씨 

내과에 가서 약 처방을 받고 항생제 주사도 맞았다. 이러면 좀 빨리 나을까 싶어 링거 주사도 맞았다. 그래도 낫지 않아서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거의 한 달을 감기와 씨름했다. 사람도 올가을 날씨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식물도 헷갈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주말에 화분에 물을 주는데 군자란 하나에 희끄무레한 것이 꽂혀있었다. 뭐지? 하고 가까이 가보니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렇게 추운 11월에 군자란꽃이라니. 군자란꽃은 겨울 지나고 봄이 오면 보통 3월 중순에 꽃이 핀다. 요즘 날씨가 갑자기 추웠다가 지난주는 봄처럼 따뜻했는데, 아마도 봄이 온 줄 알고 꽃이 피었나 보다.
 
매년 3월 중순에 피는 군자란꽃이 올해 11월말에 피었다.
▲ 11월 말에 핀 군자란꽃 매년 3월 중순에 피는 군자란꽃이 올해 11월말에 피었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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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잘못 알고 올라온 꽃봉오리라 더 신기하고 귀한 꽃이다. 군자란 꽃말이 '고귀'라고 한다. 잎사귀 사이에서 수줍게 핀 꽃이 정말 고귀하다. 며칠 따뜻해서 꽃대가 위로 쑥 올라와서 제대로 피어나면 좋겠다. 어제부터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걱정이 된다. 며칠 동안만이라도 봄 날씨처럼 따뜻하길 기대해본다.

우리 집은 겨울에도 화분을 거실로 들여놓지 않는다. 5년 전에 새시 공사를 하였다. 공사하기 전에는 겨울마다 화분을 거실로 들여놓아 거실의 절반을 화분이 차지하다 보니 많이 불편했다. 새시 공사 후에 바깥공기가 이중으로 차단되다 보니 겨울에도 화분이 얼지 않는다. 햇빛이 비치면 온실 효과도 있어서 화분이 잘 자랐다.

추운 베란다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3월에 어김없이 군자란꽃이 피었다. 그런데 이렇듯 내년 3월에 피어야 할 꽃이 11월 말에 핀 걸 보면, 이 또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우리나라 날씨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좋은 것은 사계절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특히나 요즘은 사계절이 딱 떨어지지 않는 듯하다. 여름과 겨울이 길고 봄과 가을은 그냥 짧게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다. 무늬만 봄이고 가을이다.

요즘 날씨가 가을인지 겨울 지난 봄인지 헷갈려서 핀 군자란이지만, 꽃이 피어나니 반갑다. 그냥 감기 나은 걸 축하해 주려고 피었다고 생각해야겠다. 아니면 오는 12월에 기다리는 좋은 소식을 물어다 주는 건 아닐까 기대도 된다. 꽃은 언제 피어도 반갑고 예쁘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발행될 예정입니다.


태그:#군자란, #군자란꽃, #반려식물, #지구온난화, #베란다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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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교원입니다. 등단시인이고, 에세이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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