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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는 스포츠 현상을 비평하고, 대안 담론을 생산하는 모임입니다. 토론 불모지의 한국 스포츠 풍토에서 다양한 가치와 합리적 비판이 경쟁하는 공론장 구실을 지향합니다.[기자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문이 닫혀 있어 격리된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문이 닫혀 있어 격리된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 김창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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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공 찰까?"

10여 년 전만 해도 집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딸과 공을 차기는 쉬웠다. 학교에서는 축구부가 있어 잔디가 깔렸었고, 밤에도 주민들은 운동장 둘레를 산책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이 학교의 정문과 후문은 개방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번듯한 체육관 건물까지 들어섰지만, 체육관 사용은 고사하고 운동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학교 행정실에 전화를 해봤다.

- 학교 홈페이지를 보면 평일 오전과 오후 일정한 시간, 주말과 휴일에는 하루 종일 개방한다고 돼 있는데 왜 안 열죠?
"코로나 때문에 그래요."

- 지금 코로나 끝난 지 1년 됐는데요?
"아, 당직자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근무하지 않아 문을 열 수가 없어요."

- 평일에는 왜 안 여나요?
"그거 홈페이지가 잘못된 거예요. 수정할 거예요."

- 직원이 없다고 개방할 수 없다니 이해할 수 없네요. 잘못된 것 아닌가요?
"제가 말씀드리기는 그렇구요. 윗분들과 얘기를 해 볼게요."

이렇게 통화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학교 쪽 사람들의 관료화된 답변이다. 학교 운동장을 공공재로 의식하거나, 주민들을 위해 개방하다는 인식은 없어 보인다. 학교가 관리 주체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규정을 지키는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체육시설 개방에 대한 최상위 규정은 초·중등교육법에 나와 있다. 이 법의 11조(학교시설 등의 이용)에는 "모든 국민은 학교 교육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그 학교의 장의 결정에 따라 국립학교의 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고, 공립·사립 학교의 시설 등은 시·도의 교육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나 경기도 등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는 학교시설의 개방과 이용에 관한 규칙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 지역에서 규칙은 대동소이한데, 경기도의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 시설의 개방 및 이용에 관한 규칙'을 보면 제4조(개방시설의 종류 및 이용의 제한 등)에 관련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 규칙에 따르면 ① 개방시설은 일반교실·특별교실, 시청각실, 체육관, 강당, 운동장, 그 밖에 시설로 하되 학교시설 전체를 이용하여야 할 특별한 경우에는 일괄 개방할 수 있다. 다만 ② 각급 학교의 장은 다음 각호의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학교시설의 관리 및 이용자의 안전을 고려하여 학교시설의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제한 조건으로는 일몰이나 영리·음주·흡연·취사 행위 등이 이뤄질 경우다.

그 결정권은 관리자(교장)에게 있다. 이런 까닭에 누가 교장을 맡느냐에 따라 학교체육시설의 개방이나 폐쇄가 이뤄지고, 주민들의 스포츠 복지의 질이 결정된다. 운 좋게 개방에 적극적인 교장 선생님을 만난 주민들은 쉽게 운동장을 사용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집 주변의 운동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문이 개방형으로 돼 있어 열린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문이 개방형으로 돼 있어 열린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 김창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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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어졌는데...

운동장 개방은 법제화돼 있지만 관리주체인 학교의 판단에 따라 제한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개방의 필요성을 알고 있지만, 지나치게 소극적인 곳도 있어 주민들의 학교시설 이용 체감률은 떨어진다.
 
국공립·사립 초등(5897개), 중학(3163개), 고등(2303개) 학교 가운데 1만 1363개(98.6%)가 운동장을 갖고 있고, 이 중 1만 368개가 운동장을 개방한다. 체육관(강당 포함)을 보유한 학교는 8252개로 평일 개방률은 65%, 토요일은 71%, 공휴일은 72%다. 체육관 개방률은 높지만 개방 시간과 요일을 최소화하고 소수 동호회에만 대관하는 등 소극적, 자의적 개방에 머물고 있다. 수영장을 보유한 학교는 149개에 불과하며 그중 일반인에게 수영장 문을 연 학교는 97개뿐이다.(스포츠경향 2017)

학교체육시설 개방의 정당성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어졌다는 데 있다. 체육시설이 절대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일정 규모의 인구나 거리에 비례에 지어진 학교시설처럼 접근성이 뛰어난 공간은 없다. 갈수록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운동장 등 학교체육시설 등은 생활체육의 근거지가 될 수 있다. 집 주변 학교는 5층짜리 대규모 시설이지만 개교 30년이 지나면서 재적 학생은 1~6학년 7개 반 100명 정도로 줄었다.

김미옥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는 "학교는 부족한 공공체육시설을 대체하기 위한 좋은 자원이다. 양적으로도 그렇고, 접근성이나 생활권 특면에서도 체육시설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생활체육 가운데 축구나 풋살 인구가 많은 것은 학교 운동장 개방이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체육관은 이용자나 관리자 모두에게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반영한 '표준 대관약관' 등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학교가 운동장을 개방하거나 체육관 대관을 꺼리는 이유는 관리에 대한 어려움 때문이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고 기물을 파손한다면 비용은 학교가 부담해야 한다. 등교 전과 하교 뒤 개방하도록 했지만, 행여 안전사고라도 난다면 관리 책임자인 학교는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학교의 책임이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시설개방운영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고, 개방 절차나 사후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위원회가 결정권을 갖게 되면 교장의 책임이나 부담이 훨씬 가벼워지게 된다"고 했다.

지자체가 학교와 공동으로 학교체육시설 개방을 위해 애쓰는 사례도 있다. 포천시는 올해 관내 50개 학교 가운데 21개와 협약을 맺고 학교시설을 시민에게 개방하는 대신, 시설운영이나 민원 발생에 대해 시 차원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노후 시설의 개보수 등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을 해결해 주면서, 학교시설을 주민들의 생활체육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운동장, 체육관을 지역 주민에게 적극적으로 개방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운동장, 체육관을 지역 주민에게 적극적으로 개방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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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차원에서도 학교복합시설 건립 등을 통해 체육 등 수업 시간 활용 외에 주민들에게 개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려고 하지만 제한적이다. 서울 언남고의 언남체육문화센터의 경우 수영장은 학생과 주민이 공유하는 요긴한 시설이지만, 이런 학교는 많지 않다. 사실상 '생존수영'이 초등학교에서 의무화됐음에도 전국 학교의 수영장 설치 비율이 1% 안팎으로 낮은 것이 현실이다. 늘어나는 폐교를 체육 시설화하는 것도 고민해 볼 대목이다.

학교체육시설이 생활체육의 기지가 되기는 쉽지 않지만, 학교체육시설 개방은 시대적 요구다. 국가도 국민의 신체활동 참여를 높이기 위해 학교에서 요구하는 안전대책이나 시설 보수, 대관료 현실화 등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 당국이 개방하지 않기 위해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문을 꽁꽁 잠근 학교 운동장은 폐쇄되고 고립된 공간으로 남는다.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서 운동장과 체육관을 지역 주민에게 적극적으로 개방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태그:#학교운동장, #생활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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