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0 10:56최종 업데이트 24.02.0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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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났던 날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함께 울었고, 분노했고, 행동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날 뒤로 많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10년의 시간 동안 여전히 기억의 장소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도 긴 시간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기억 속의 그 장소들을 가보고, 그곳을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울러 피해자들의 견뎌온 이야기들도 풀어냅니다. 이 이야기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길 바랍니다.[기자말]
지난 10월 둘째 주 토요일, 단원고4.16기억교실(아래 '기억교실')에 갔다. 1층 로비에서 기다리니 이은화씨가 마중 나왔다. 그와 2층의 기억교실 중 한 교실로 함께 갔다. 교실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는 책상 위에 적힌 낙서를 가리켰다. 

이유를 묻자 "저희가 기억교실을 공간기록으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려고 하는데..."라고 말했다. 교실을 전시한다고 하면 흔히 박물류만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 박물류에 남겨진 메모나 낙서 같은 글씨도 기록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요즘 기억교실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준비하면서 이 부분을 검토하고 분석하고 있단다.
 

‘단원고 4.16기억교실’ 책상 위의 낙서. 이은화는 이 ‘낙서들’을 기억교실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활용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 김용우

  
세월호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단원고 '2학년 교실(기억교실)'을 보존하려 했다. 그런데 '재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을 이기기 어려웠다. 경기도교육청은 '4.16민주시민교육원'을 새로 건립하고 그곳에 기억교실을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유가족들은 마지못해 교육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기억교실은 지난 2016년 8월 20일, 첫 임시이전 이후, 한 번의 임시이전을 더 거쳐 지금의 자리로 돌아왔다. 지난 2020년, 교육청은 약속대로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을 완공하고 그 안에 기억교실을 복원했다. 2020년 12월 14일, 기억교실은 세 번째 이전을 마무리했다. 그 이후로 기억교실은 4.16기억저장소와 4.16민주시민교육원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다.

4.16기억저장소(아래 '기억저장소')는 세월호참사 기록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민간기록기관이다. 기억저장소는 기억교실의 첫 임시이전 이후부터 기억교실을 관리하고 있다. 이은화씨는 지난 2017년 1월 2일부터 기억저장소에 기록팀장으로 입사해 2021년 3월 초에 퇴사했다.

곧이어 그는 경기도교육청 직속기관 4.16민주시민교육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21년 3월 15일부터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운영실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의 소속이 달라졌지만, 기억저장소에 입사한 후로 지금도 기억교실의 운영과 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기억저장소에 입사한 2017년 이후로 이은화씨는 한 번 이직했고, 기억교실은 두 번 이전했다. 

이은화씨와 기억교실은 지난 6년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소시민'이었던 기록전문가
 

이은화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운영실 팀장이 기억교실 안의 기록물을 확인하고 있다. 이은화는 지금도 기억교실을 지키기 위해 하루에 하루를 얹고 있다. ⓒ 4.16민주시민교육원

 
이은화씨는 지난 1992년부터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에서 기록 관리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 그가 다룬 영구보존문서들은 전산화가 되지 않은 종이 문서였다. 그 뒤 대학교 박물관, 기업 등을 두루 섭렵하며 20여 년 이상 기록 관리 경력을 쌓았다. 

세월호참사 직후, 기록전문가들은 참사 현장 기록을 위해 '추모기록 보존 자원봉사단'을 꾸렸다. 이은화씨 역시 기록 봉사활동을 함께하자는 단체 문자 메시지를 받았지만, 함께 하지 못했다.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 젊은 학부생, 대학원생들이 많이 갈 거라 생각했어요. 어찌 보면 회피한 셈이죠. 저는 진짜 소시민이었거든요." 

그는 입사 전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서명 용지에 서명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사회운동에도 관심이 없었다. 대학생일 때 잠깐 학생운동을 경험한 것이 전부였다. 기억저장소에서 일하면서 그런 것들이 아킬레스건처럼 느껴졌다.

지난 2016년, 이은화씨는 지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기억저장소의 운영위원으로 있던 대학원 교수였다. 그는 기억저장소에 와서 기록팀장으로 일해달라고 했다. 이은화씨는 2017년 1월부터 별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예정이기에 처음엔 고사했지만,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은화씨가 입사하기 전, 기억저장소 기록팀장 자리는 열 달 정도 비어있었다. 전임자가 없으니 인수인계도 없었다. 기록물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곳곳에 흩어진 서고에 꽉꽉 채워져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입사 후 열 달 정도는 주말에도 나와서 기록물을 정리했다. 정리를 도왔던 봉사자들이 주말밖에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작업을 하기 위해 기록물 정리 방법을 연구했다. 

"그 전의 분류번호 체계로는 컨테이너(서고) 하나를 끝내야 그다음 컨테이너를 정리할 수 있었어요. 그럴 바에 각각 다른 번호를 줘서 각자 따로 일하게 나름대로 체계를 만들었어요. 기록물을 다 한곳에 넣더라도 조금이라도 공간을 확보하려고 유형별로 구분하고요." 

지난 2019년, 기억교실 복원을 위해 단원고에서 문틀, 창틀 같은 고정기록물을 철거했다. 이은화씨는 현장에서 모든 철거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지휘했다. 방학 중에 빨리 마쳐야 했기에, 공사는 주말에도 이뤄졌다. 책임자였던 그는 주말이라도 공사가 있으면 매번 나갔다.

"단원고에서 철거할 때는 뜯어내는 게 아니라 오려냈어요. 벽을 절단하고 그랬죠." 

기록자들은 안전모를 쓰고 사진을 찍고, 캠코더로 촬영하며 작업 현장을 지켰다. 촬영자이면서 감시자였다. 기록의 관리는 기록의 생산과 활용이 끝난 다음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맡은 일은 기록을 생산하는 일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업무였다. 

지난 2021년 12월 27일, 국가기록원은 기억교실을 '국가지정기록물 14'호로 지정했다. 국가지정기록물 지정을 위해 분류목록을 만드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국가기록원은 관리·감독을 위해 매년 국가지정기록물을 현장 실사한다. 기록물의 분류체계가 복잡하면 조사가 어렵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 

"'기록물 철', '기록물 건'이라는 포맷이 있어요. 가령 이 책이 '철'이에요. 그럼 책 안의 챕터가 '건'인 거예요. 그럼 교실에서 철을 뭘로 잡을지 맞춰줘야죠. 고민하다가 '1반'을 '철'로 삼았어요. 그 안에 큰 덩어리들, 일테면 칠판, 게시판, 천장, 책상, 의자 등 종류별로 하나라도 있으면 '건'으로 만들었어요." 

소신과 현실 사이
 

‘단원고 4.16기억교실’의 칠판 옆 화이트보드. 칠판과 화이트보드 등에 공기 접촉을 줄이고자 아크릴로 막았다. ⓒ 김용우

 
기억교실과 함께 보낸 지난 6년 동안 이은화씨는 자신의 소신과 현실 사이에서 여러 일을 겪었다. 

지난 2016년 진도에서 희생자들의 유품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학생들이 쓰던 캐리어도 많았다. 그 안에 화장품과 세면도구도 있었다. 그는 내용물은 버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대로 유가족들은 내용물도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오래 고민하던 그는 수많은 유품들을 모두 진공 포장했다. 유품을 용기에 넣어 일일이 공기를 빼고 압축하는 일을 반복했다.

기억교실을 관리하는데도 신경 쓰고 염려할 일이 많았다. 기억교실은 개방형 전시 공간이라 그만큼 훼손의 위험이 크다.
 
"저는 관리해야 되는 사람이잖아요. 뭐가 훼손되거나 하면 엄청 힘들죠. 기억교실에 사람이 못 들어오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제일 문제가 되는 게 습도거든요. 사람들이 오니까 불도 계속 켜놓잖아요." 

뿌듯하고 보람 있는 일

이 일을 하면서 후회한 적이 없냐고 묻자 그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들에 결과물이 보이니 뿌듯하고 재미도 있었단다. 

"민간 기록관치고 이렇게 기록물 보관 분류체계부터 시스템까지 정리해 놓은 곳은 손에 꼽아요. 주변에서 지원해 줘서 가능했던 부분도 있지만, 제 노력도 있었어요. 기억저장소에서 일한다고 하면 기록학 쪽에 있는 분들이 힘든 곳에서 일한다고 미안해 했어요. 그럼 자원봉사자가 아니고 월급 받고 일한다고 해요."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에 복원한 기억교실은 단원고의 원래 설계도대로 지었다. 그런데 단원고에서 문을 철거해서 복원한 교실에 넣으면 크기가 맞지 않았다. 더 크면 깎고, 틈이 있으면 우레탄 폼으로 메우기를 반복해야 했다. 

"저희가 정말 우스갯소리로 못 하나라도 그 교실에 박힌 거 갖고 온다고 그랬어요. 그런 것들이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갔을 때는 너무 감사했죠."

지난해에 한 단원고 재학생이 인터뷰에서 '기억교실에 들어왔을 때, 자신이 수업을 듣는 단원고 교실이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학생이 쓰는 책걸상은 기억교실의 책걸상하고 달랐다. 2016년에 기억교실로 책걸상을 가져온 후, 형태가 다른 새 책걸상으로 모두 교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단원고 학생이 복도를 보는 순간 너무 똑같아서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때 보람을 느끼죠."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품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지류(종이류) 복원업체에서 수학여행의 유인물을 복원한 적도 있다. 당시 업체에서 '유인물에 불이 탄 자국이 있다'고 했다. 

"설명을 듣는데 '애들이 추워서 이렇게라도 불을 피우려고 했었나?' 연상이 되는 거예요. 그걸 들고 소장님한테 보고할 때 가슴이 미어져서 진짜 목놓아 울었어요." 

이은화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억저장소에서 일하면서 생긴 변화도 있다. 

"제가 사람 사이의 터치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기 와서 자연스러워졌어요. 기록물이나 유품 정리하다가 어머니들이 우시면 그냥 안고, 가만히 있어 주고, 말씀하면 듣고, 너스레도 떨고 막 그래요. 동화되어 가는 거죠." 

'하루에 하루를 보탠다'는 말은 이은화씨가가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다. 이 문장은 기억교실과 함께 보낸 6년을 버텨낸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냥 하루에 하루가 계속 얹어졌던 것 같아요. 길게 보고 간 것도 아니고요. 해야 할 일들이 있었어요. 우선 유가족들이 정말 열심히 움직이는 부분도 있고요. 그냥 그렇게 지나다 보니까 햇수로 7년이 된 거죠."

기억교실을 지키기 위해 지켰던 자리
 

‘단원고 4.16 기억교실’의 어느 교실 모습. 2014년 당시에 단원고 희생자들이 썼던 교실을 그대로 복원했다. ⓒ 김용우

 
기억교실을 지키기 위해 이은화가 지켰던 자리는 어떤 자리였을까. 그는 인터뷰 내내 '모른다', '고민했다'는 말을 유난히 많이 내놓았다. 모르기 때문에 고민했고, 치열하게 고민했기에 방법을 찾았을 테다. 그리고 어떻게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냈다.

또 '1'이라는 숫자를 자주 언급했다. 교실 한 반, 책상 하나, 못 하나... 그는 그 기록물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살려냈다. 덕분에 별이 된 세월호 희생자 한 명, 한 명을 다음 세대가 기억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에 하루를 얹었다.

4.16민주시민교육원은 '기억교실 돌봄사업'을 단원고 학생들과 처음 시작했다. 이은화씨는 담당자로서 학생들과 함께 기록물을 정리했다. 어떤 때는 일부러 학생들에게 밥을 사기도 했다.

"이 친구들이 기억교실에 처음 오면 숙연하잖아요. 그런 분위기를 제가 깨줘야 하니까 '너희끼리 얘기도 좀 해라. 음악 좀 틀어봐. 너희들이 이렇게 하면 선배들이 좋아할 거야' 이런 얘기도 했어요."

이은화는 세월호참사 10주년을 맞이하는 바람을 이렇게 말했다.

"많은 분들이 기억교실에 직접 와서 보셨으면 좋겠고요. 세월호참사를 모르는 학생들이 와서 배워가는 그런 공간으로 계속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계속 교육의 현장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싶거든요."

단원고 4.16 기억교실 
방문위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적금로 134
운영시간: 평일 09:00~18:00 / 주말·공휴일 10:00~17:00

4.16기억저장소
문의전화: 031-410-0416  
방문예약: http://www.416memory.org/about/visiting

4.16민주시민교육원
문의전화: 031-414-0416
방문예약: https://www.goe416.go.kr/?p=24

(※ 방문을 희망하시는 분은 사전 예약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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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이자 공동체은행 ‘빈고’ 조합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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