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래 내용에는 작품 중 일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한정현의 소설 <나를 마를린 먼로라고 하자>를 인상 깊게 읽었다. 소설은 여자 빨치산이었던 인물들의 비탈에 선 사랑과 가부장을 혁명으로 가장했던 빨치산의 폭력에 침탈당한 섹슈얼리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탈을 용인하지 않은 두 퀴어의 삶을,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 여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맞물려 추리 소설 기법으로 담아냈다.

1980년대생 소설가에게 빨치산은 흐릿한 소재임에 틀림없을 테지만, 한정현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퀴어 혁명가의 모습을 고유하게 구현해냈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혁명가 이후의 삶을 조명한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것에 비하면 한정현의 빨치산 소설은 매우 저평가 받은 것으로 보인다. 빨치산조차도 남성 빨치산이 기본값인 걸까. 정지아는 소설을 통해 아버지의 혁명가다움에 집중하느라 어머니의 빨치산 이력은 에피소드화한듯 했다.
 
<쿄코와 쿄지> 책표지(문학과 지성사).
 <쿄코와 쿄지> 책표지(문학과 지성사).
ⓒ 문학과 지성사

관련사진보기

 
빨치산을 소재로 한국 현대사 한 마디를 짚어냈던 한정현이 이번 소설 <쿄코와 쿄지>에서는 5. 18과 부마사태 그리고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은 삼풍백화점 참사까지를 얽히고설키게 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까지 10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은 각각 단편으로 읽어도 무방하나, 읽어가노라면 우연히 마주치는 등장인물들의 재등장에 이 단편들이 매우 공교롭게 기획되었음을 눈치채게 된다.

이를테면 <쿄코와 쿄지>의 '영소'가 엄마와 친구들의 5.18을 증언하도록 매개하고는, 이어지는 <리틀 시즌>에서 유기견 자자를 키우는 '영소'로 재등장해 자신의 이모를 경유해 여성들 목소리로 증언하는 삼풍백화점 참사를 듣도록 돕는다. 이어 다시 <결혼식 멤버>에서도 '영소'는 엑스트라로 깜짝 등장해, 대만 국적이지만 일본에서 자란 이중 국적 이주 여성의 디아스포라의 당위를 제공한다.

각각의 이야기로 충분한 단편 소설을 연작식으로 이어가며 마치 장편 소설을 완독한듯한 느낌을 주는 독특하고 영리한 작법이다. 게다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허투루 쓰임이 없이, 모두 각각 존재의 의미와 이유를 가지고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앞선 이야기에서 스쳐 지나갔던 얼굴을 다음 이야기에서 선명하게 드러내어 그때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듣게 한다.

안 보이는 소수자들의 이야기  

무엇보다 인물 모두가 우리 사회에서 비가시화되기 쉬운 소수자(성소수자, 이주민, 국가폭력 피해자, 식민주의 피해자, 참사 피해자 등)라는 데서, 그 인물들의 의미와 존재성을 빚어낸 작가의 의중이 웅숭깊게 다가온다. 우연이 인연이 되고 분절된 개인사가 역사적 맥락으로 엮이는 즐거움을 직접 만끽하길 바라며 이중 <결혼식 멤버>의 독특함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결혼식 멤버>의 주인공 '나나'는 어느 날 생물학적 엄마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는다. 엄마는 딸을 딸이라 부르지 않고 '귀하'라 부른다. 이건 자식을 키우지 못한 엄마의 죄책감, 그리고 이제는 모녀 관계를 인간관계로 갱신하자고 손 내미는 시도다. 복잡하고 애매한, 그러나 존중의 마음을 다한 호칭이다.

대만 출신이지만 일본에 살아 이중 국적을 가진 엄마는 한국학을 공부하기 위해 1980년 한국에 입국했다. 1980년대는 일본과 연을 가진 유학생은 안기부의 감시를 받던 때라, 어떤 남자도 엄마와 연애만을 즐기려 할 뿐 결혼 상대로는 여기지 않았다. 이방인의 감정으로 고립되어 있을 때 기꺼이 결혼을 감수한 '나나'의 아빠는 엄마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선의는 결혼과 '나나'의 출생으로 얼굴을 갈아 끼웠다. 이제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니 공부 따위는 집어치우고 모성의 본분을 다하라는 가부장의 삼엄한 얼굴로 말이다. 공부를 더 하겠다는 '나나' 엄마의 의지는, 그러나 폭력을 써서라도 모성 수행을 완수시키려는 남편에 의지와 날카롭게 대립했다. 양육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떠난 모성은 쉽게 매도되고 삭제되었다.

엄마에게 '귀하' 메일을 받을 시점에서 '나나'는 허둥대고 있었다. 지방에서 서울에서 올라와 대학원을 다니는, 별 특출날 것 없는 고학력 여성에게 정해진 희망찬 미래는 없었다. 예정된 엄혹한 미래를 유예시키고 있을 뿐인 '나나'에게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재우치는 사회의 눈 흘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정상성을 부여받는 결혼밖에 없었다.

정상성을 채워주리라 믿어지는 남자가 청혼을 해오고 이에 결혼으로 나아가면서, '나나'의 생활은 점차 남자가 정한 정상의 굴레에 예속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남자가 '나나'의 아이폰을 갤럭시로 교체시키고 통신 요금을 저렴한 알뜰폰으로 바꾸게 하는 등, 사소한 방식에서부터 삶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남자의 정상성이란 언뜻 보기에 매우 경제적이고 합리적 선택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에게 결혼은 더 많은 저축을 해 더 좋은 차와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 경제적 공동체로 결속되는 것, 게다가 그에겐 가사노동이 면제되고 덤으로 '나나'의 감정노동과 돌봄노동이 기반인 '스위트 홈'이 넝쿨째 굴러들어 오는 것이었다. '스위트 홈'을 위해 배우자의 개성이나 취향 따위는 쉽게 지워도 될 뿐 아니라, 경제적이라는 근거로 상대의 소비를 비합리적이라고 폄하하는 등 가부장 제도로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엄마의 참회가 불러온 혼돈과 깨달음 

엄마가 남편의 폭력으로 연구자의 길을 부정당하고 오직 모성만을 강요당했던 것처럼, 어쩌면 '나나'의 미래 남편도 '나나'의 정체를 함부로 지우고 가부장의 질서에 복속시키려 들 것이다.

생물학적 엄마의 지난날에 대한 증언과 참회는 '나나'를 혼돈에 빠뜨리는 대신 자칫 미끄러져 빨려 들어갈 결혼이라는 늪에서 끄집어내게 했다. 각성한 '나나'는, 엄마가 딸을 버렸다는 구시대 모녀 관계의 각본은 멀리 집어던지고, 서로의 '귀하'가 되는 제3의 관계로 대담히 나아가려 한다.

이러한 새로운 관계, 즉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만이 정상이 아니라 서로를 어떻게 위치시키고 승인하는가가 중요한 관계는 또 하나의 이야기 <무이네>에서 적절히 수렴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주민 여성을 자신의 어머니로 받아들이고, 고정된 어머니라는 호칭 대신 '무이'라 부르며 친밀감과 소중함을 이어가는 것, 여성들의 삶의 이행과 완결에 완고한 국가나 가부장의 개입을 밀어내고 서로를 소중한 '귀하'로 자리매김하는 것, 이러한 제3의 관계로의 이행이야말로 소수자들이 구가할 삶의 방식일 것이다.

이방인의 이야기로 시작해 경계인의 정처 없음으로 부유하는 이 소설은 고정된 무엇으로 사는 것의 불가능함과 무의미함을 함의하면서, 그러므로 어떤 맥락에 처해 누구로 살아왔고 살 것인가에 공적인 기획이 끼어들 이유가 없다는 것을 각인시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쿄코와 쿄지

한정현 (지은이), 문학과지성사(2023)


태그:#쿄코와쿄지, #한정현, #광주민주화운동, #삼풍백화점참사, #퀴어서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