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복잡하고 긴, 혹은 기이한 이름의 밴드에 호기심이 동한 적이 있었다. 이름이 저러면 음악은 어떨까? 잘 맞아떨어질까, 아니면 예상 밖일까?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뭘까?
 
이탈리아 밴드들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포털사이트에서 제대로 된 철자와 뜻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때 그런 게 있을 턱이 없다. 그저 고등학교 음악 시간 때 배운 이탈리아 가곡 가사 같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지다고 느꼈다.
 
20대부터 쓰는 내 아이디는 '방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은행원이냐"라고 묻는다. 이탈리아 록 밴드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방코 델 무투오 소코르소(Banco del Mutuo Soccorso), 뜻은 '상호 부조 은행'이다. 방코만큼 좋아하는 밴드는 프레미아타 포르네리아 마르코니(Premiata Forneria Marconi)다. '수상 경력이 있는 마르코니 제과점'이다.
 
퀠라 베키아 로칸다(Quella Vecchia Locanda, 그 오래된 오두막), 피키오 달 포초(Picchio dal Pozzo, 우물에서 나온 딱따구리), 라 로칸다 델레 파테(La Locanda delle Fate, 요정의 오두막), 부온 베키오 찰리(Buon Vecchio Charlie, 마음씨 좋은 노인네 찰리), 일 로베쇼 델라 메달리아(Il Rovescio della Medaglia, 동전의 다른 면) 등도 이름만으로 궁금증을 부른다.
 
영미권에서는 얼티밋 스피니치(Ultimate Spinach, 궁극의 시금치), 오케스트랄 매뉴버스 인 더 다크(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어둠 속의 관현악단식 기동),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 전자 경음악단), 반 데 그라프 제너레이터(Van de Graaff generator, 반 데 그라프 발전기), 프랭키 고스 투 할리우드(프랭키 할리우드에 가다) 등도 그랬다. 이름만 보고 도대체 무슨 음악을 시전할지 알 수 없다. 들어보는 수밖에.
 
그러다 마주친 밴드가 스푸키 투스(Spooky Tooth)다. '무시무시한 이빨'이라니. 어떤 음악을 할까.
 
한 평론가는 "아이언 제플린(Iron Zeppelin)과 레드 버터플라이(Led Butterfly)"라고 썼다. 오타가 아니다. 헤비메탈 밴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사이키델릭 록 밴드 아이언 버터플라이(Iron Butterfly)의 혼종이라는 뜻이다. 절묘한 표현이다.
 
첨언하면 아이언 버터플라이에서 약 기운을 조금 빼고, 레드 제플린에서 헤비함을 덜어내서 섞었다. 여기에 블루스, 솔(Soul), 가스펠 등 미국식 유색 음악을 가미했다. 맛난 것에 맛난 것을 더한 셈이다.
 
스푸키 투스는 영국의 블루스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브이아이피스(V.I.P.s) 출신 4명이 주축이다. 마이크 해리슨(Mike Harrison, 보컬), 루서 그로스비너(Luther Grosvenor, 기타), 그레그 리들리(Greg Ridley, 베이스), 마이크 켈리(Mike Kellie, 드럼)이다. 이들은 나중에 밴드 이름을 아트(Art)로 바꿨다. 여기에 미국에서 온 개리 라이트(Gary Wright, 보컬 및 키보드)가 합류했다. 1967년 일이다. 그리고 밴드 이름을 '무시무시한 이빨'로 바꿨다.

60-70년대 영국 록의 지형을 품다
 
 밴드 스푸키 투스(Spooky Tooth)의 1집 앨범.

밴드 스푸키 투스(Spooky Tooth)의 1집 앨범. ⓒ 지미밀러

 
1968년 데뷔 음반 <잇츠 올 어바웃(It's All About)>이 나왔다. 이 음반 프로듀서는 지미 밀러(Jimmy Miller)다. 밀러는 모토헤드(Motorhead), 트래픽(Traffic),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 프로듀서였다. 록 역사에 이름을 남긴 밴드 음반을 다 주물렀다.
 
<잇츠 올 어바웃> 음반은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영국 록의 지형을 품고 있다. 칼칼한 보컬, 날카로우면서 몽롱한 기타 톤, 블루스에 기반한 화려한 키보드 연주, 묵직한 베이스와 드럼이 돋보인다.
 
첫 곡 '소사이어티스 차일드(Society's Child)'는 재니스 이언(Janis Ian) 곡이다. 몽롱한 이언 곡을 강렬한 사이키델릭 록으로 변모시켜 놓았다. 전면에 키보드를 배치했고, 기타는 송곳처럼 불쑥 찔러온다. 앞으로 이 밴드가 어떤 음악을 할지 보여주는 듯하다.
 
두 번째 곡 '러브 리얼리 체인지드 미(Love Really Changed Me)'는 코러스와 키보드가 곡을 이끈다. 당대 활약중이던 밴드 프로콜 하럼(Procol Harum)과 사운드스케이프가 비슷하다. '투 머치 오브 나싱(Too Much of Nothing)'은 밥 딜런(Bob Dylan) 곡이지만, 딜런 곡과 스푸키 투스 곡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밍밍하지만 묵직한 딜런 노래와 달리 이들 스푸키 투스는 강렬한 가성으로 사이키델릭 록을 구사한다.
 
어찌 보면 이들 노래의 알맹이는 B면에 있지 않나 싶다. 첫 번째 곡 '잇츠 올 어바웃 어 라운드어바웃(It's All About a Roundabout)'은 영국식 사이키델릭 록의 전형적인 밴드 소리다. 가성 보컬에 경쾌한 리듬, 그에 어울리지 않은 약간은 어두운 멜로디의 적절한 부조화가 그렇다.
 
두 번째 곡 '타바코 로드(Tobacco Road)'는 이 음반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가 아닐까. 스푸키 투스 곡이 아니라 미국 작곡가 존 디 라우더밀크(John Dee Loudermilk) 곡이다. 점차 고조되는 감성과 연주가 반복되는 하드 사이키델릭 록이다. 이 곡은 이들 외에도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 블루스 마구스(Blues Magoos), 에릭 버든(Eric Burden), 레어 어스(Rare Earth), 데이비드 리 로스(David Lee Roth), 재즈 키보디스트 브라더 잭 맥더프(Brother Jack McDuff) 등이 커버했다. 곡이 별로면 이들이 달려들어 연주했겠나.
 
잔잔한 발라드 '잇 허츠 유 소(It Hurts You So)', 윌슨 피켓(Wilson Pickett)이 불러도 손색이 없을 솔 명곡 '포켓 잇, 아이 갓 잇(Forget It, I Got It)', 비치 보이스를 연상케 하는 상큼한 사이키델릭 팝 '버블스(Bubbles)' 등도 담고 있다.

천재들이 넘쳐 나는 재능을 조금은 느슨하게 펼친 듯한 이 음반은 평단이 주목했지만,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 밴드는 멤버를 교체하고 해산과 재결성을 결성하며 11장의 스튜디어 음반을 냈다.
 
멤버 중 리들리는 험블 파이(Humble Pie)에 가입했고, 그로스베너는 또다른 전설적 밴드 못 더 후룰(Mott the Hoople)에 간다. 중간에 들어왔던 믹 존스(Mick Jones)는 슈퍼밴드 포리너(Foreigner)를 결성한다. 밴드 사운드 핵심 개리 라이트는 솔로 활동을 하며 세련된 팝 음악가로 변신했다.
 
탄탄한 연주력과 1960년대부터 이어온 영국 밴드 특유의 약간은 오만해 보이는, 그러면서 예민한 감성을 품고 있는 음반이다. 음악가들의 음악가, 평론가들이 사랑한 연주자들로 그들의 발차취는 멈췄지만, 더 많은 이들이 접하게 되면 더 널리 사랑받을 것 같다.
B메이저AZ록 영국 사이키델릭 스푸키투스 SPOOKYTOOTH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간지 기자로 23년 일했다.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홍보기획, 연설기획비서관을 했다. 음반과 책을 모으다가 시간, 돈, 공간 등 역부족을 깨닫는 중이다. 2023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다룬 책 <대통령의 마음>을 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