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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1일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장혜영 의원이 참가자들과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가족구성권 3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년 5월 31일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장혜영 의원이 참가자들과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가족구성권 3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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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 <가볍게 결혼해 애 낳아라? 정부의 위험한 '동거혼'>(https://omn.kr/26xyt)에서 이어집니다. 

왜 이렇게밖에 대책을 못 만드는 것일까? 대단히 새로운 방안을 도입하는 척 하면서, 오히려 권리를 축소하고 효과도 없을 정책을 왜 내놓는 것일까? 일단 모든 면에서 능력도 성의도 진심도 없는 윤석열 정부 자체가 1순위의 문제겠지만, 일단 그건 다 아는 얘기니 넘어가자.

문제는 여전히 아이가 자궁 밖으로 나오는 출산의 순간에만 집착하는 가족 대책이다. 이 부분이 등록 동거혼의 가장 큰 문제다. 아이가 자라 노동자와 소비자가 되어 나라 경제를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그러니 지금 가족을 이루는 또는 이루지 못하는 국민들이 어떤 욕구와 불안을 가지고 있는지에 주목하지 않는 정책이 나오는 것이다.

저출생은 결과일 뿐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가족을 늘리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절망감이다. 구조적 원인과 제도의 미비가 국민들을 어쩔 수 없는 고독으로 몰아넣고 있다. 저출산은 고독과 절망의 많은 결과 중 눈에 띄고 수치화하기 쉬운 그리고 권력과 자산을 가진 자들에게 위협을 주는 결과일 뿐이다. 소리소문 없이 삭아드는 국민의 삶은 도무지 눈에 띄지 않나 보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눈에 띄는 데 말이다.

이성, 동성 구분 없이 폭넓은 가족 구성 권리 보장

생활동반자법은 등록동거혼과 다르게 '저출산'만이 아닌 '고독'과 '돌봄'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생활동반자법도 사람들이 함께 살도록 장려하는 법이기 때문에, 출산 등 미래를 계획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다. 저출산위는 등록 동거혼이 프랑스의 PACS(시민연대계약)와 유사한 법이라고 설명하고 프랑스처럼 우리도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PACS는 이성, 동성 구분 없이 폭넓은 가족 구성 권리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등록 동거혼보다는 생활동반자법에 훨씬 가깝다.

저출산위는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이 PACS와 더불어 가족 형태 등에 대한 차별을 막으려는 적극적인 반 차별 정책과 보편적 가족 지원 확대 때문이라는 점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PACS는 아동과 국민에 대한 보편적 권리 인식이 강하게 각인된 제도다. PACS는 도입 배경부터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 어떤 몸으로 태어나건, 어떤 정체성을 갖건 모두 소중한 생명이고 국민이란 점을 강조했기 때문에 프랑스를 '가족을 만들고 싶은 나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의 PACS(시민연대계약)는 이성, 동성 구분 없이 폭넓은 가족 구성 권리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등록 동거혼보다는 생활동반자법에 훨씬 가깝다.
 프랑스의 PACS(시민연대계약)는 이성, 동성 구분 없이 폭넓은 가족 구성 권리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등록 동거혼보다는 생활동반자법에 훨씬 가깝다.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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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취재에서 저출산위 관계자는 저출산의 주요 원인은 젊은 세대가 결혼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라며, 이 부담을 낮추는 것이 도입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동성 간 동거혼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설명이 따라 붙는다. 윤석열 정부의 입장은 가족 구성권에 대한 국민들의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필요에 따라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있는'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만 선택지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대한민국은 어떠한 국민이라도 환영하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확고한 약속이 없는 저출산 대책이 먹힐 리가 없다.

'동거가구 인정' 등 다양한 가족에 대한 지원 제도를 저출산 해결의 맥락으로만 제기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쩐지 임신을 시키기 위해 합사된 가축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동거 가구 차별 해소 논의의 초점이 저출산에 맞춰지면 출산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 가구는 다시 차별의 대상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고 위기인 1인 가구는 노인 1인 가구다. 특히 70대 이상 여성노인 1인 가구의 수가 압도적이다. 이들은 소득이 적고, 건강상 위기에 빠지기 쉽고 여러 비상 상황에 처하기 쉬운데다가 병원·관공서·은행 등에서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크다. 그런데 기존의 혼인제도로 새로운 가족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이들은 외롭고 가난하고 위험하게 방치되고 있다. 여성 노인들은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돌봄을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존재로 전제되지 않는다.

여성 노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갈수록 많은 이들이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가족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KB경영연구소의 <2022년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혼자 사는 이유로 비자발적 요인(82.7%)이 자발적 요인(61.4%)보다 많았다. 그런데 비자발적인 이유로 1인 가구가 되었다면, 기회를 봐서 가족을 만드는 게 합리적인 결정일 것이다. 그런데 '1인가구를 지속할 의향이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높다'는 응답이 56.3%로, '낮다'의 '9.9%'보다 월등히 높았다. 정리하면 한국의 1인 가구들은 어쩔 수 없이 비자발적으로 장기간의 독거 생활로 내몰리고 있다.

출산만을 염두에 둔 등록 동거혼으로는 이러한 광범위한 고독과 돌봄 공백을 해결할 수 없다. 70대 여성 노인들에게 이제 새로운 남성 연인을 만나 등록 동거를 하라는 게 현실적인 주장인가? 등록 동거혼은 '법률혼-등록 동거혼-법외 가족' 이라는 또 다른 가족 형태에 따른 위계와 차별을 만들어낸다. 그 기준은 사회에 필요한 재생산을 해내느냐는 생산성일 것이다. 보편적 권리로서의 돌봄과 가족구성의 권리는 사라진다.

동성 커플 막자고 국민의 권리 포기? 

정부가 생활동반자법 등 더 보편적인 가족구성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이성 간의 등록 동거혼만을 도입하는 것은 동성 커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재직 중이던 2023년 8월 15일, 페이스북 등에 글을 올려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동성혼 제도 법제화를 포함'한다고 주장하며 입법에 반대한 바 있다. 한동훈 장관은 이 글에서 생활동반자법 자체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평가를 하지 않고, 오로지 동성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에 생활동반자법도 입법할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를 전개했다.

일단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이 아니기에 '동성혼'도 아니고, 동성 사이에만 적용되는 법도 아니며, 동성 사이라고 하더라도 친구나 돌봄 관계 등 비성애적 관계도 포함하는 법이다. 동성 연인들도 물론 이용할 수 있겠지만, 그건 생활동반자 관계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일단 생활동반자법을 동성혼과 등치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며,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기대 더 많은 국민들을 위한 보편적 입법을 막고 있는 꼴이다.

동성 커플을 미워하고 그들을 모든 사회적 권리에서 배제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꼭 필요한 일인가? 왜 그게 이토록 중요한 정책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이 거대하고 심각한 고독과 빈곤, 돌봄 공백을 극복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더 급한가? 동성 커플들에게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머지 국민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가? '동성애자 미워하기'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모든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틀어막고 있어야 하는가? 생활동반자법뿐 아니라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등도 마찬가지다.

가능한 많이 사랑하고 포용하는 정책을 해야지, 누구 하나 미워하기 위해 다 같이 권리를 포기하는 정치를 언제까지 용납해야 하는가. 쟤가 먹는 게 싫어서 다 같이 굶자는 정치로 미래로 갈 수는 없다. 누군가는 성소수자를 싫어한다. 각자 속으로 미운 마음이 드는 것까지 어쩌겠는가. 사회적 소수자에게도 국민으로서 같은 권리를 줘야 한다는 주장은, 어쩌면 어떤 사회에서도 영원히 만장일치의 합의에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가 기꺼워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명확한 이유 없이 권리를 배제하는 정치는 결국 국민 전체의 기본권을 훼손하게 된다.

누군가의 강력한 미움을 받는다는 이유로 법적 권리를 주지 않아야 한다면, 윤석열 대통령부터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논리적으로 맞을 것이다. 누군가 '동성애를 허용'해서 나라가 망한다고 말한다면,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허용한 대만이 18년 만에 대한민국의 GDP를 넘어섰다고 답하고 싶다. 동성혼 입법을 주도한 민진당의 차이잉원의 적극적 과학기술 개발 지원과 산업 정책이 이유로 꼽히고 있다. 나라를 망치는 건 과학기술 R&D를 칼질하거나 멀쩡한 국토를 분쟁지역으로 인정하는 것이지, 생활동반자법 따위론 나라를 망칠 수 없다.
 
지난 2016년 10월에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
 지난 2016년 10월에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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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등록 동거혼'은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한다. 이성 간으로 한정해 입법해도 이 법은 바로 헌법재판소로 갈 것이다. 대한민국헌법 제36조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한다. 혼인은 이처럼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관계이기 때문에 다른 가족관계나 계약과 다른 특권과 권리를 보장할 이유가 된다. 그러나 등록 동거혼은 혼인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가 자의적으로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부여할 수 없다. '행정법상 평등의 원칙'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평등의 원칙'은 행정청이 합리적 이유 없이 국민을 차별하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으로, 평등 원칙에 어긋나는 법률은 위헌이다. 법률혼과 별도로 성애적 동거 관계를 인정하는 별도의 행정법을 입법한다면, 이 법은 혼인이 아니기에 동성 커플을 차별할 헌법상 근거가 없다. 정부는 '출산 장려'를 합리적 이유로 들며 출산의 가능성 때문에 이성 커플만 지원한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렇다면 출산의 가능성이나 의지가 없는 이성 커플도 배제해야만 하는 문제가 생긴다.

2023년 2월 11일, 동성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는 행정소송에서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동성부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법률혼 외에도 사실혼을 비롯한 민법상 가족이 아닌 실질적 부양관계까지도 피부양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동성혼이 입법되지 않았기에 동성부부를 '법률혼'으로 볼 수는 없지만, "밀접한 정서적·경제적 생활 공동체 관계"라면 비슷한 이성 간의 관계와 차별해서는 안 되다는 판결이다. '법률혼'이 아닌 관계라면 실질적인 정서적·경제적 생활 공동체 여부가 중요하지, 성적지향만으로 차별할 수 없다는 판례를 남긴 것이다.

등록 동거혼은 정부의 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동성 부부들을 가시화하고 동성 부부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가 될 가능성이 꽤 크다. 오랜 역사적 관례나 헌법에서 혼인을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다고 한 조항 등을 들어 법률혼은 이성 간에만 규정할 수도 있으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면서 이성애자에게만 그 권리를 부여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정부가 이런 평등한 미래를 내다보고 등록 동거혼을 추진한다고 보는 건 아니다.

이제 본말이 바뀌어야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과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에는 정말이지 공감한다. 저출산을 극복한 모든 나라들의 공통점은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아이를 낳더라도 모든 아이가 차별없이 환영받고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보장받는 국민적 믿음을 구축한 것이다. 그래야 불안과 걱정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즐거움이 회복될 수 있다.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해결책이다. 큰 돈 들이지 않고 문화적 혁신도 만들지 않으면서, '가성비 좋게' 국민들을 출산으로만 몰아가려던 그간의 타깃형 정책들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70~80년대에 아이를 다섯 명 낳았다면 나라를 가난하게 하는 주범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똑같이 아이를 다섯 명 낳으면 애국자가 된다. 바뀐 것은 국민 각자가 어떤 친밀함을 만들고 어떤 가족 생활을 하고 싶은지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발전 단계에 필요한 적정 인구일뿐이다.

이제 본말이 바뀌어야 한다. 이제 가족 정책의 근간을 국가적 인구 필요가 아니라 국민 각자의 욕구와 안정에 두어야 한다. 모두들 아이를 낳지 않아 나라가 망한다는 호들갑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망해가는 사회에서 나만 아이를 낳을 수는 없다는 각인만 강화할 뿐이다. 국가의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해 '국가가 필요한 가족'에게만 인센티브를 주면 인구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을 없애지 않는 한 윤석열 정부의 '등록 동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황두영은 더불어민주당 서울 서대문갑 국회의원 예비후보입니다.


태그:#등록동거혼, #생활동반자법, #저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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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서대문갑 국회의원 예비후보 <외롭지 않을 권리> <성공한 민주화, 실패한 민주주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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