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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이었다. 할머니 댁에서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기차 이야기가 나왔다. 할머니께서 서울에 있는 병원을 가실 때 어떻게 이동하실지가 대화의 주제였다. 일단 첫째는 어느 역으로 가느냐의 문제가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기존에 집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몽탄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셨다. 그러나 몽탄역은 무궁화호밖에 서지 않는 작은 역이었고, 무궁화호가 계속해서 줄면서 몽탄역에는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에 5대의 기차만이 정차하게 되었다. 그러자 몽탄역을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고, 수요가 줄은 탓에 자연스레 몽탄역으로 가는 마을버스도 눈에 띄게 배차간격이 줄어버려 이용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할머니는 더 먼 함평역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해서 기차를 타셔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셨다. 또 다른 문제는 함평역에서 무궁화호를 탈 것이냐, KTX를 탈 것이냐를 정하는 것이었다. 큰어머니나 아버지는 빠른 KTX를 타는 게 좋다고 하셨지만, 할머니께서는 일전에 KTX를 타 봤을 때 의자도 높아 시야가 막혀있어 답답하고 통로 간격도 좁아 이동하기도 불편하며, 너무 빠르게 달리기 때문에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도 없어 오히려 무궁화호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셨다고 하셨다.

고모가 할머니의 의견에 동의하셨지만, 표를 끊는 건 큰어머니의 역할이었기에 며칠 뒤 할머니는 KTX 표를 받으셔야 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빠르게 가는 게 더 좋다는 덧붙임 말과 함께 말이다. 이렇게 오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필자는 말로만 듣던 무궁화호와 지역역사의 소멸이 가까운 이야기임을 깨닫고 무궁화호의 존재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전히 무궁화호가 필요한 이유 

우선 필자는 무궁화호의 축소가 과연 수요를 반영한 공급인지에 의문이 들었다. 소수의 시골 어르신들이 주된 수요층이라면 여기에 대해서는 무궁화호 증편 대신에 또 다른 대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2023년 10월 26일, 코레일의 공식 기차 예매 사이트인 레츠코레일에서 1주일 뒤인 11월 3일부터 6일까지, 가장 대표적이고 먼 거리에 해당하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여정에 해당하는 열차들의 예매 현황을 집계해 보았다.

정확히 몇 석이 남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매진 여부를 확인했을 때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KTX는 예매가능한 열차가 41대, 매진 임박이거나 입석해야 하는 열차가 11대, 매진인 경우가 26대였다. 그러나 무궁화호는 예매 가능한 열차가 2대, 입석해야 하는 열차가 2대, 매진인 경우는 18대였다. KTX는 총 78대 중 약 33%가, 무궁화호는 총 22대 중 약 82%가 매진이었는데, 이는 여러 방면에서 엄청난 차이이다.

첫째로 주목할 것은 2배 이상에 달하는 매진율의 차이이다. 매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이 기차를 이용하기를 원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수요가 높다는 것은 공급인 열차를 증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총 대수의 양부터가 3배 이상 차이가 나니 매진율에서도 왜곡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반론은 역으로 무궁화호를 증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이렇게 매진이 잘 되는데 열차의 대수는 KTX보다 3배 이상 적은 현 상황이 이상하다는 점에 대한 반증으로서 말이다.

심지어 이 자료는 필자가 '온라인이나 앱'을 통해서 예매된 상황만 본 것이다. 오늘날처럼 디지털 격차가 심화된 사회에서, 그리고 특히 무궁화호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연령대가 노인분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 온라인 예매만으로도 기차가 매진되어 버리면 온라인 예매법을 모르는 어르신들은 역에 방문해서야 기차가 매진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당신들은 기차 외의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보거나 가장 가까운 시간의 기차를 예매하신 후 몇 시간, 혹은 며칠을 기다리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무궁화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열차의 수는 터무니없이 부족해 여러 불편함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현재 상황임을 알게 된 필자는 무궁화호의 증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무궁화호의 최대 장점은 이동성, 접근성이 좋아 항공기나 승용차와 달리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다양한 계층이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무궁화호는 타 고속열차에 비해 절반 이상 저렴하기 때문에 이용 부담이 덜 하다. 그리고 거점도시에만 멈춰 서는 것이 아니라 한 도시에서도 세 군데의 역에 정차하는 등 전국 곳곳을 누비기 때문에 교통중심지나 대도시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열차가 다양한 역에 정차하기 때문에 환승할 필요가 적어 환승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이나 장애인들도 열차 이용의 불편함을 덜 수가 있다.

이러한 장점은 타 이동수단과 비교했을 때 더 두드러진다. 혹자는 '무궁화호 대신에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타면 되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생각은 그 자체로 고속열차나 도시 중심의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우선 고속버스는 고속열차처럼 주요한 도시, 터미널 간에만 운행이 되고 있을뿐더러, 정차역이 더 많은 시외버스라고 하더라도 '시'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 간에 이동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반면에 무궁화호는 앞서 말했듯 한 도시 내에서도 세 군데의 역에 정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무궁화호 호남선은 대전 내에서 신탄진과 서대전 두 역에, 경부선은 세종 내에서 조치원과 부강 두 역에, 충북선은 청주 내에서 청주, 오근장, 청주공항 세 역에 정차한다. 이는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지역 간의 거리가 아니다. 설령 무궁화호도 정차하고 고속, 시외버스도 정차하는 두 지역을 오간다고 하더라도 (가령, 대전-서울) 무궁화호가 버스보다 더 저렴하다.

시내버스와 비교하면 어떠한가? 무궁화호는 일단은 열차이기 때문에 기본 속도 자체가 버스보다 빠르며, 버스보다 한번에 더 많은 거리를 정차 없이 이동하기 때문에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적다. 또한, 작은 시나 군의 경우 시내버스가 하루에 2번 오는 등 잘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이 명확히 명시되어 있고 하루에 5번이라도 오가는 무궁화호가 버스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일례로, 앞서 예로 든 청주 내 이동의 경우 오송역에서 오근장역까지는 무궁화호로 14분이 걸리지만 시내버스로 이동하려면 대기시간 제외, 환승해서 1시간 5분이 걸린다.

무궁화호는 자가용이나 시내버스, 전철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이용에 불편함을 겪는 교통약자들에게는 삶에 필수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무궁화호를 타야 출퇴근을 할 수 있는데 폭염으로 인해 기차가 중단되자 일을 나가지 못한 사람의 경우도 있다. 이처럼 장기적인 측면에서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무궁화호를 증편하는 것은 타당한 목적과 이유를 지니고 있다.

또, 열차는 도보와 자전거를 제외한 그 어떠한 교통이동 수단보다도 친환경적이다.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소속의 전현우 철도경제 객원기자에 따르면, 철도의 에너지 효율은 자동차 도로와 비교해 통상 10배, 탄소 효율은 5배에 달한다. 한국철도공사는 이를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이용하면 소나무 12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며 홍보한다. 23년 12월 16일과 19일에 필자 역시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 빈번하게 '기차는 환경이다!'라고 크게 쓰인 현수막이 열차들에 붙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철도의 친환경적 이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철도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어야 하는데, 철도를 타고 원하는 지역까지 갈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때, 무궁화호는 다양한 지역에 정차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에 부합한다.

'새로운 무궁화호'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토록 수요도 많고 이점도 많은데 대체 왜 무궁화호는 증편이 아니라 감축이 되고 있느냐? 이는 수익성 때문이라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무궁화호나 KTX를 운영하는 코레일, 한국철도공사는 공기업이다. 지자체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운영하듯, 국가와 사회는 사람들이 그 무엇에 의해서도 차별받거나 어려움을 겪지 않고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동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 점은 노인 무임승차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에서도 빈번히 등장하는 논거 중 하나이다.

무궁화호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손쉽고 저렴하게 다양한 곳을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앞선 두 사례와 마찬가지로 수익성보다도 형평성과 인권이 먼저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익을 우선 추구하는 사기업과 달리 공기업은 이익의 감소를 감수하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철도 정책은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보편복지'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이 경우 철도의 혜택를 받지 못하는 지역은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복지의 성격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역은 혜택을 못 누리는 것은 차별의 문제이고, 지역 불평등의 문제이다. 게다가 공공철도의 적자가 무궁화호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신이 어떤 이동수단을 이용해 이동할 것인지는 개인의 이동권에 속하는 영역이다. 누군가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비행기 대신에 배를 타는 것처럼, 누군가는 시간이 더 중요해서 무궁화호 대신에 고속열차를 이용하고, 누군가는 멀미가 나서 버스 대신에 기차를 이용한다. 또,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있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기차가, 누군가는 버스가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데에 더 편리할 것이다. 개인의 선호 외에도 장애의 유무나 소득의 수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특정 이동수단을 택해야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돌아보면 당장 필자부터가 다양한 이유로 인해 무궁화호를 애용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대면 수업을 듣기 위해 대전에서 서울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매주 왕복했던 때였다. 처음에는 왕복 5만원 대에 달하는 고속열차의 기찻값을 내가 부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편도 2만 원 초반대 가격인 무궁화호를 이용했었다. 그리고 무궁화호를 타고 다니면서 넓은 통로와 덜컹거리는 기차, 탁 트인 시야로 보이는 반대쪽 창문과 통로에 앉아있는 사람들, 그러한 풍경과 소리와 느낌이 좋아 이 기차에 정이 들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무궁화호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한지에 대한 물음도 존재한다. 실제로 안전과 노후화의 문제로 인해 2029년에는 비상시 사용할 40대를 제외하고 모든 무궁화호가 폐차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는 ITX 새마을 고속열차나 신형 열차가 대체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무궁화호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둘 것인가? 그렇게 되었을 경우에 불편함을 겪을 수많은 사람들의 각종 권리와 혜택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오히려 지금, 기존의 무궁화호가 폐차될 예정인 지금이야말로 더 안전하고 쾌적한 신형 무궁화호를 준비하고 증편해 무궁화호라는 열차가 지닌 장점들이 최대로 발휘될 수 있는 정책을 고안해야 할 시점이다.

태그:#기차, #무궁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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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한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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