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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갱신이다. 매년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역대급 갱신이다. 매년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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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남편의 단톡방이 심상치 않게 울렸다. 휴대폰이 하루종일 띵똥 띵똥 대는 게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인기남이네? 누구야?"
"아파트 단톡방이야, 지금 다들 난리 났어."
"왜? 우리 아파트에 뭔 일 생겼어?
"관리비 때문에 다들 멘붕 상태인가 봐."
"얼마씩 나왔대?"
"역대급 찍었대. 다들 40-50만 원 대인가 봐. 지난해보다 더 춥게 살았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 "
"휴우... 왠지 동질감이 생기네." 


1월 우리집 관리비. 57만 8천 원. 30평 4인 가족, 10년 차 아파트 관리비다. 사람들 말마따나 역대급 갱신이다. 매년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지난해 최대 관리비가 40만 원 대였는데, 현재는 10만 원이 훌쩍 넘게 오른 상태다. 특히 난방비와 공동 열요금, 급탕비가 많이 올랐다. 관리비가 부과된 후, 우리 집은 비상 태세에 돌입했다. 

비상! 비상! 당장 실내 온도를 22도에서 21도로 내린다! 샤워 시간 10분 이상 금지! 쓸데없는 전기 사용 금지, 온수 빨래와 설거지 금지! 알겠습니까?
 
매년 역대급 갱신 중인 관리비... 귀신 보다 무서워요
▲ 후덜덜 매년 역대급 갱신 중인 관리비... 귀신 보다 무서워요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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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군기 빠진 사춘기 아들 딸은 욕실만 들어갔다 하면 함흥차사다. 게다가 온 집안의 불은 죄다 켜고 다니고, 냉장고 문은 10분 단위로 열었다 닫았다... 휴우... 할 수만 있으면 조기제대 시키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다. 

아이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잔소리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내 마음도 슬슬 짜증과 원망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따뜻하게 산 것도 아닌데...' 
'뜨끈뜨끈한 탕 목욕도 못하고...' 
'대체 뭣 때문에 관리비가 오른 거야! 누구 짓이야? ' 


옷 사고, 가방 사는 건 아껴도 내 집에서 쾌적하게 사는 건 아끼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는 차갑고 시린 겨울바람을 맞더라도 집에서만큼은 따뜻한 온기와 넉넉한 풍요를 맛보았으면 했다. '아, 여기가 내 집이지.' 하는 마음의 안정만큼이나 육체의 안정도 주고 싶었던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가족 모두 서로의 눈치를 보고 감시를 하며 난방비 사수작전을 펼치느라 집안에서도 편히 쉬기 어렵다. 남편이나 나나 예전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데도 나아질 거란 기대보다는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더 커져가는 요즘이다. 난방비 폭증과 전기요금 인상, 물가 인상, 이다음엔 또 뭐가 있을지... 원래 보이지 않는 공포가 더 크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희망만큼 무서운 것도 없으리라. 

온수 한 번 콸콸 써 보지 못했는데
 
실내온도 내리기, 샤워 10분이상 금지, 온수 빨래 금지... 관리비 줄이기 사수 작전을 펼치다가 부아가 치밀었다(자료사진).
 실내온도 내리기, 샤워 10분이상 금지, 온수 빨래 금지... 관리비 줄이기 사수 작전을 펼치다가 부아가 치밀었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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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사람들을 만나면 '관리비 안녕'부터 묻는 게 자연스러운 인사가 됐다. 다른 아파트 사는 친구들에겐 더 집요하게 묻는다. 우리 아파트만 유독 비싼 건지, 내가 헤프게 쓰는 건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이다. 한 친구는 작년보다 온도를 2도를 낮추고, 사용량도 훨씬 줄었는데 관리비는 외려 올랐다며 울상을 지었다.  

다들 비슷비슷한 상황임을 확인하고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하소연에 커피가 식어가는 줄 모른다. 효과적인 난방 기술과 온수 이용법을 공유하기도 하면서 마음의 냉기를 제거해 본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에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예전에 한 재테크 책에서 경제적 위기에서 헤쳐 나갈 여유가 있을지 없을지 확인해 보려면 살고 있는 집이 현재 수준의 소득 없이 거주 가능한지 살펴보라고 했다. 현재의 소득 없이 살 수 없는 집에 살고 있다면 위험 상황이라고 했는데 이거 어쩌나, 현재의 소득으로도 살기 힘든 집에 살고 있는 나는. 

이 겨울, 따순 방에 몸 한 번 지져보지 못하고, 온수 한 번 콸콸 써 보지 못하고, 창문 한 번 시원하게 열어 환기시키지 못하는 내가 왠지 가난의 한 줌을 쥐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떫다. 

징징대는 거 딱 질색이고, 웬만하면 좋게 좋게 생각하자가 나의 신조인데 언제부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내 징징 대고만 있는 것 같다. 장보기 무섭다. 관리비 무섭다. 뉴스 무섭다. 징징... 징징... 어떻게 해야 괜찮아질 거야라는 희망의 다짐을 나에게 또, 상대에게 할 수 있을까? 

징징대는 내게 한 친구가 귓속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더 무서운 사실 알려줄까? "
"뭔데?" 
"곧 설이다."
"꺄악!!!" 


나이가 들면 귀신보다 돈 나가는 날이 제일 무섭다. 댁내 관리비는 다들 안녕하신가요? 

태그:#관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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