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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고갯길은 주요한 통로(path)로 기능하였다. 특히, 지금과 같이 밝지 않던 옛날의 밤고갯길은 야생동물이나 산적 등 각종 위험이 도사리던 곳이었다. 그래서 고갯길을 오르기 전 하루 묵어갈 주막촌이 기슭에 종종 번성하였다.

보통 우리는 이름난 험준한 산들이 많은 관동 지방(강원특별자치도)의 고개들을 많이 떠올리곤 한다. 대관령이나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고개들이 그러하다. 예로부터 고갯길을 나타내는 말에는 '치(峙)', '현(峴)', '재', '고개' 등이 있었지만, 교통량과 규모 등이 어느 정도 있는 고개를 나타내는 '령(嶺)'으로 끝나는 고개들이 예로부터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앞서 말한 대관령, 진부령과 같은 고개들도 유명하고 중요한 곳들이지만, 도(道)를 연결하고 아울러 수도(首都)와 주요 지역을 잇는 고개들은 그 자취와 흔적, 그리고 미래를 살펴볼 가치가 클 것이다. 영남 지방의 인재들과 물자의 흐름은 죽령(竹嶺)과 조령(鳥嶺), 추풍령(秋風嶺)의 세 갈래에서 수도 한양을 향하였다.
 
      죽령 옛길의 모습
▲ 죽령 옛길  죽령 옛길의 모습
ⓒ 윤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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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은 충청북도 단양군과 경상북도 영주시를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죽령의 역사는 다른 두 고개보다 더 길다. 삼국시대, 신라의 아달라 이사금 5년에 죽령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때 죽령은 고구려와 신라를 서로 가르는 경계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 죽령은 신라의 경주와 고구려의 평양을 잇는 중간 지점에 근접하게 위치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더욱 죽령은 양국이 서로 경합을 벌인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영주시에서는 관광 진작의 일환으로 '죽령옛길'을 복원하였다. 희방사역을 기점으로 하여 옛 정취를 느끼며 탐방을 할 수 있다. 숲길을 쭉 가다보면 '죽령 주막터'가 있는데, 탐방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영주시 반대편의 단양군에서는 용부원리라는 작은 산지촌이 있다. 적은 수의 가구가 농사와 임산물 채취, 판매, 민박 운영 등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죽령은 교통의 발달과 함께 쇠퇴하였다. 1940년대 초 중앙선 철도의 개통, 1960년대 중반 5번 국도의 부설, 2000년대 초반 중앙고속도로의 개설로 인하여 죽령 고갯길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다만 죽령옛길과 같이 '통행'이 아닌 '휴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서야 사람이 다니는 곳이 된 것이다.
 
문경새재 알림판입니다.
▲ 문경새재 문경새재 알림판입니다.
ⓒ 윤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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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조령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를 잇는 고갯길이다. 흔히 문경새재로 알고 있는 관문이 바로 조령 일대를 말한다. 죽령에서 서편으로 직선거리 30km 이상 떨어져 있다. 조령 고개는 조선시대의 핵심적 통로였으며, 문경 방면으로 외침 수비를 위해 만든 것이 바로 문경새재다. 문경새재는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으며, 세 개의 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로 새재의 어원으로는 새가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혹은 억새가 우거진 고개 등 여러 설(說)들이 분분하다.

2관문인 조곡관이 1594년 임진왜란 중 가장 먼저 건설되었으며, 숙종 34년인 1708년 남쪽 방어를 위하여 1관문인 주흘관이 건설되었다. 주흘관과 같은 시기에 건설된 3관문인 조령관은 문경새재에서 가장 깊숙이 위치하며,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도계(道界)를 이룬다.

문경새재 일대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광객들로 붐비는 모습을 보여준다. 초입에는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밀집해있고, 주흘관을 지나 사극 세트장으로 활용되는 문경새재 오픈세트장도 위치해 있다.

하지만 조령 고개 역시, 교통의 발달과 함께 오히려 통행으로서의 성격은 많이 약화되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3번 국도의 통행으로 나그네들이 다니며 경제권을 형성하였던 조령 일대는 문경새재 관광을 위한 목적지로서 주로 기능한다. 반대편의 괴산군 연풍면의 급격한 쇠퇴와 인구감소를 보면 흐름의 중심으로서의 조령 고개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추풍령역 플랫폼입니다.
▲ 추풍령역 추풍령역 플랫폼입니다.
ⓒ 윤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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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추풍령은 충청북도 영동군과 경상북도 김천시를 잇는 고갯길이다. 추풍령 고개는 해발 221m로 고갯길 중에서는 낮은 구릉의 수준이지만, 경부선 철도에서는 가장 높은 구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충북 옥천 부근부터 추풍령IC 부근까지 많은 터널들이 자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과거 구불구불했던 선형을 개량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실제로 이러한 나쁜 선형으로 인하여 많은 교통사고가 추풍령에서 발생해왔다.

또한 추풍령 고개는 경부고속도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큰 의미가 있었다.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인 추풍령휴게소가 이 지역에 위치해있다. 또한, 경부선 철도에 과거 증기기관차가 지날 때 추풍령역 부근에서 열을 식히며 쉬어갔다. 이때, 증기의 재료 물을 보충하기 위해 1939년 급수탑이 세워졌다. 이 급수탑은 원형이 아닌 사각형 구조로 건축사적 의의가 있다. 현재는 이 일대에 급수탑공원이 조성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추풍령 고개는 과거에는 죽령과 조령과는 다르게 한적한 곳이었다. 관로(官路)였으나, 주된 통로로 활용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 이유로 여러 설(說)이 있는데, 첫째, 추풍낙엽(秋風落葉)이라는 말을 연상한다는 이유로 상경하는 유생들이나 상인들에게 선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로 옆 괘방령이 우회 통로로 더 활용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둘째, 영남 지방에서 추풍령을 지나더라도, 옥천군과 영동군 일대의 금강을 지나는 험준한 계곡들이 많았기 때문에 통행로로 크게 선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령 고개를 지나 남한강 수로의 수운을 통해 한양에 도달하는 경로가 많이 활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은 현재 고속도로와 왕복 4차선 국도(4번 국도), 철도가 지나가는 현재의 추풍령의 위상과 대조된다. 다만, 이러한 위상이 발전 개념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추풍령 역시 통로가 지난다는 점과 많은 교통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유명해졌을 뿐, 정작 해당 지역은(추풍령면) 소멸 위기에 봉착해있다. 소재지의 초등학교는 학생수가 점점 감소하여 현재는 학생수가 30명 이하로 내려갈 위기에 처해있다.

결국 고갯길에서 우리는 균형발전과 지역소멸의 문제를 찾을 수 있다. 교통의 고도화는 체류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발달된 통로가 향하는 곳은 지역 사이사이가 아닌, 집약된 수도권과 대도시이다. 빨대효과로 불리는 것처럼, 과거의 체류 공간들은 더 빠른 속도로 쇠퇴해갈 것이다.

모든 지역들을 다시 일으키고, 재생사업을 실시하는 것은 한정된 자원의 배분에 있어서 불가능한 상상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때 체류의 공간으로 구실하며 흐름의 중심에 있었고, 또 지역들을 이었던 이 고개들은 남겨두고 더 살려야하지 않을까?

옛 고갯길의 관광으로서의 테마도 살리고, 전원형 주거 모델을 토대로 지역형 일자리를 개발하고, 교육 연계형 주거 플랫폼 등의 사업 도입을 통해 지속 가능한 학교를 창출해내는 균형발전 모델을 그려본다.

주막집에서 국밥에 한잔하는 각지의 관광객들로 붐비면서, 귀농을 통한 지역 일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전원형 교육과정으로 자연과 함께 성장하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은 죽령과 조령, 추풍령 일대를 상상해본다. 밑그림이 반이고, 색칠은 시간문제인 법이다.

덧붙이는 글 | 충청북도영동교육지원청 교사이자 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교육, 복지 전문위원입니다.


태그:#지역균형발전, #지방시대, #죽령, #문경새재, #추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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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 현상 및 균형발전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꿈과 다양성을 키울 수 있는 균형잡힌 미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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