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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와 소설, 동화 등을 주로 써오던 내가 요즘은 뉴스 기사 쓰기에 도전해 보고 있다. 아직 많이 어렵고 낯설어 한 줄, 또 한 줄, 고민을 거듭하며 더듬더듬 써 나가고 있다. 혼자만의 동굴 속에서 글을 쓰다가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서니 마음에도 볕이 드는 기분이다. 기사 쓰기를 통해 신생아처럼 세상을 배우는 기분으로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어주시는 게 그저 얼떨떨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이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설렘과 조심스러움은 나만의 것일까. 서툰 기사에도 '좋아요'를 눌러 주시거나 따뜻한 감상을 댓글로 남겨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어떤 분들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내 기사에 공감해 주신 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더 진솔한 이야기를 글 속에 담아 화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이번 글에선 오래 전에 펴낸 나의 첫 책 이야기를 슬쩍 녹여내 보려 한다. 그러자니 긴장 내지 멋쩍음이 앞선다. 부끄러워 숨고 싶은 마음을 돌아서게 하는 나만의 방법을 써야 할 때이다. 조심스럽게 질문 하나를 던지는 것이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생뚱맞은 질문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이 질문을 받으면 웃거나 깊게 숨을 들이쉰다. 소중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꿈'이라는 다소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단어를, 평소에도 천연덕스럽게 사용하는 특별한 사람이 늘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나에게 꿈을 물어봐주는 사람을 만나기를 갈망했다.

어린 시절 나의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중 어느 누구도 나에게 꿈을 물어보지는 않았었다. 나는 그게 언제나 불만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며 '왜 이렇게 사는지', 회의가 고개를 들어 흉한 이마를 보일 때마다 막연한 원망감에 휩싸이곤 했다.

'왜 아무도 나에게 꿈을 묻지 않는 거야?'

무의미한 일상을 반복하며 나는 같은 질문을 곱씹었다. 그러다 눈이 떠지듯 가슴 속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아무도 묻지 않으면 어때? 내가 나에게 물어봐 주면 되잖아.'

사람들의 짜증 묻은 숨소리가 가득하던 출근길의 복잡한 지하철에서 나는 그렇게 갑자기 자유를 깨우쳤다.

그날부터 나는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무신경하게 나를 툭툭 건드리고 나를 진실에서 멀리 떼어 놓는 사람들을 벗어나 나만의 공간에서 진짜 꿈을 꾸어 보자고. 잔인한 정글 같은 이 회사를 언젠가는 그만두고 답답한 집에서도 독립을 하자고.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직장 생활을 얼마간 더 이어가다가 계획했던 독립 자금이 채워진 날 나는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며칠 뒤 겨울비가 지나간 투명한 저녁, 내 힘으로 장만한 작은 골방으로 걸어 들어가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세간살이라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던 그 텅 빈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책상을 들여놓을 자리를 고민하다가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중고매장에서 산 싸구려 책상이 한쪽 벽 앞에 놓였다. 소음이 크고 금세 본체가 뜨끈뜨끈해지던 중고 노트북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앉아서 나는 작은 창문으로 하늘을 마냥 바라보았다. 그제야 나는 온전히 내가 될 수 있었다. 내 나이 스물일곱이던 2004년 12월의 일이었다.

난방이 잘 들어오지 않아 무척이나 추웠던 그 방에서 나는 평생 읽은 책 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일 년이라는 짧은 시간 뒤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된 일곱 편의 단편 동화와 결국 책에 담길 수 없었던 졸렬한 원고들을 쏟아냈다. 조금 전까지 아침이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온 세상이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저녁 여덟 시 혹은 아홉 시가 되어서야 어두워진 걸 깨닫고 스탠드 불을 켰다. 화장실을 잠깐 다녀온 뒤에 또다시 자석에 이끌리듯 책상으로 돌아왔다. 글을 쓰다가 킥킥 웃기도 하고 주인공이 다음에 내뱉을 말이 궁금해서 손바닥을 싹싹 비비기도,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하다가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우습다고 생각했다.
 
내 꿈은 토끼, 임태희, 바람의아이들
 내 꿈은 토끼, 임태희, 바람의아이들
ⓒ 임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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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06년 봄이 왔고, 나의 첫 창작동화집 <내 꿈은 토끼>가 세상에 나왔다.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린 나머지 반항적으로 토끼가 되는 꿈을 꾸는 아이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른의 시선이 아닌 철저히 아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동화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꾸었던 즐거운 꿈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 책을 읽은 아이들로부터 나중에 직접 손으로 쓰고 그린 편지를 받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마음에 이토록 생생한 그 시절이 벌써 18년 전 일이라니. 가슴에 아릿한 잔파동이 인다.

이후로 출간이 드문드문 이어졌지만 가장 순수했고 모든 것이 서툴기만 했던 초보 동화작가인 그때의 나는 내가 누군가의 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몹시도 가슴이 떨렸었다.

피부질환으로 힘들었던 지난 10년

원래 알레르기 체질이었던 나는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피부염 같은 피부질환이 더욱 심각해졌다. 오른쪽 종아리 절반은 화폐상습진으로 뒤덮인 지 오래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손도 마찬가지다. 바쁜 육아와 피부질환의 고통으로 지난 10년은 글쓰기는 커녕 다른 일을 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건강 문제에 있어선 여전히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다. 아이가 자라 내 시간이 조금씩 생기면서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해 하얀 여백을 응시하다가 나는 또다시 그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기사 쓰기라는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요즘, 세상과 소통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좌절에 주저앉고 싶을 때나 오만이 덮치려 들 때, 바로 이 첫 물음을 순수했던 시절의 내 목소리로 자꾸자꾸 되물을 수 있기를… 그래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아니 꿈꾼다. 오늘 이 새로운 출발선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기자, #꿈,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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