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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월 22일 창간한 <오마이뉴스>가 올해로 창간 24주년을 맞았습니다. '청년'이 된 오마이뉴스가 같은 해에 태어난대한민국 2000년생들이 어떤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2024년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편집자말]
스물넷 청년들에게 '연애'에 대해 물었다.
 스물넷 청년들에게 '연애'에 대해 물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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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세상은 종말을 기다렸다.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연도를 인식하지 못해 대재앙이 일어나는 '밀레니얼 버그'가 터질 거라 했다. 비극이 쏟아지던 시대에 누군가는 태어났고, 누군가는 펜을 쥐었다. 그 해에 태어난 <오마이뉴스>와 밀레니얼 세대. 24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뜻밖의 '밀레니얼 버그'를 발견했다. 

2022년 9월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발표한 '청년의 연애, 결혼, 그리고 성 인식'에 따르면 연애하고 있지 않은 청년의 70%는 자발적 비연애 상태다. 전체 청년 중 29.1%는 연애 경험이 없다. '자발적'이란 글자에서 멈춘다. 연애를 못하는 게 밀레니얼의 버그일까, 아니면 이 시대에 연애하는 것이 오류 상태인 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스물넷 청춘들을 만났다.

'칵테일 사랑'은 마시기 비싸다

A씨에게 연애란 '시간과 비용을 잡아먹는 기회비용의 하마'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 헤매고,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모두 과도한 물리적, 감정적 지출이다.

"낭만도 돈이 든다는 말이 맞아요. 게다가 같이 낭만을 즐기려면 그런 사람을 찾고, 또 만나야 하잖아요? 그런 것보다 혼자 즐겁게 지내고 싶어요."

A씨의 생각에 다른 B씨와 C씨도 통했다.
 
X 사용자 '현밍(@hyeonmiing)'의 게시글
 X 사용자 '현밍(@hyeonmiing)'의 게시글
ⓒ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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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칵테일 사랑> 밈이 인터넷에 유행했는데 정말 공감했어요."

B씨의 말처럼 SNS에선 2001년 발매한 '마로니에'의 노래 <칵테일 사랑>과 관련한 해학적인 밈(meme)이 유행했다. 낭만적인 하루를 그린 이 노래를 경제적으로 추산한 것인데 노래 가사처럼 살아가려면 오늘날에는 약 4만7000원이 들고 최저 임금으로 따지면 5시간의 노동이 필요하다. "연애는 돈이 가장 많이 드는 낭만이잖아요." 그런 B씨에게 홀로 살기야말로 가성비가 좋은 낭만이다.

"전 혼자인 게 좋아요. 진짜 원하는 걸 할 수 있잖아요. 굳이 타인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싫은 걸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B씨의 대답처럼 청년의 비연애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좋은 사람을 찾기까지의 과정, 타인과 연애하면서 발생하는 데이트 비용을 고려한다면 연인보다 안정적인 홀로 살기를 택하는 것이 낫다. 실제로 C씨는 연애하면서 데이트 비용에 큰 부담을 느낀 적이 있었고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을 정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이야기했다.

돈이 없어서 사랑을 포기한 N포 세대, 그렇지만 안쓰러운 시선을 원치 않았다. A씨는 "돈이 없어서 연애를 못 한다기보단 지출한 돈보다 연애가 주는 행복이 적은 것"이라 답했고 B씨 또한 "데이트 비용을 아껴서 내가 원하는 걸 사고 있다"며 비연애 상태에 만족감을 표했다. 예전처럼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맞잡고 걷지는 않아도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몰두한다는 점에서 청춘은 여전히, 아직까지는 낭만적이다.

너 <환승연애> 뜬 거 봤어?
 
<솔로지옥> 시즌 3의 한 장면
 <솔로지옥> 시즌 3의 한 장면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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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안 해도, 연애 프로그램은 좋아하는 청년 세대.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솔로지옥> 등 최근 몇 년 사이 연이어 히트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연애다. 해당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A씨와 C씨. 시청 이유는 달라도 방향은 같았다. 그건 간접경험이다. A씨는 "출연진들이 연애로 설레고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느낀다"고 답하며 드라마보다 실제 사연과 관계성에 집중한 연애 프로그램들이 현실성이 있어서 좋다고 평했다.

반면, C씨는 "나 대신 감정 소모를 해주는 모습이 좋다"라며 "연애할 때 느끼는 오락가락한 감정을 직접 경험하고 싶지는 않더라. 그래서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 게 일종의 대리 경험처럼 느껴진다"고 답했다. 의외로 C씨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해당 프로그램에 관한 시청자 평에는 "이런 데 못 나가도 보는 건 좋다", "이 커플 보면서 미친 사랑을 배웠다" 등 출연진의 극적인 감정 변화에 이입하여 보는 이들이 많았다.

대리 설렘을 느끼는 A씨와 대리 슬픔을 느끼는 C씨. 그러나 B씨는 연애 프로그램 열풍에 공감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 연애하는 걸 봐서 뭐 하나 싶어요. 연애 자체에 관심이 없는데 남의 연애는 더더욱 그렇죠." 연애 프로그램이 젊은 층에게 수요가 있지만, 연애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이들에겐 먼 이야기다. 그럼에도 비연애를 지향하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연애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이를 통해 간접적인 경험과 감정을 즐기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연애와 결혼, 꼭 해야 하나요
 
왼쪽부터 넷플릭스 <솔로지옥3>, 티빙 <환승연애3> 포스터.
 왼쪽부터 넷플릭스 <솔로지옥3>, 티빙 <환승연애3> 포스터.
ⓒ 넷플릭스,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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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애를 택한 그들에게 결혼에 대한 계획은 더욱 낯설다. A씨는 "요즘 비혼주의자가 늘고 있다. 비혼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점점 결혼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비단 자신뿐만 아니라 결혼하지 않는 것이 청년 세대의 경향이라 진단했다. B씨와 C씨 또한 "설령 비연애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해도 결혼을 고려하지 않을 거 같다"고 답했다.

결혼하지 않는 삶, 그들은 외로움과 노후에 대한 불안보다 자유롭고 즐거운 미래를 상상했다. B씨는 "가끔 친구들이랑 같이 노인정에 입소하자고 이야기한다. 혼자보다 여럿이서 함께 생활하는 상상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C씨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노후를 도와줄 자식이 없지 않냐'고 한다. 그렇지만 자식이 노후 대비책은 아니지 않냐"고 답하며 팁을 덧붙였다.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이 재테크 관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하는 콘텐츠가 늘고 있어요."

모두 비혼을 택한 건 같지만, 이유는 달랐다. A씨는 "가치관이 같은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라 털어놨고 B씨는 "혼자 사는 게 좋아서"라고 답했다. 한편, C씨는 "결혼할 지 말지조차 생각해본 적 없다"며 어색함을 드러냈다. 이들과 달리 비연애와 비혼에 대한 20대의 전반적인 경향은 어떠할까. 앞서 언급한 '청년의 연애, 결혼, 그리고 성 인식' 조사에 따르면, 연애 중이지 않은 청년 중 48.3%가 만족을 표했고 여성(62.3%)이 남성(37.8%)보다 높았다. 향후 결혼 의향에 긍정적인 응답은 남성(57%)이, 부정적인 응답은 여성(56%)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셋이 생각한 연애는 각기 다르되, 결국 같았다. A씨는 "어딘가 좋은 연애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회의적인 것"이라 답했고 B씨에겐 "굳이 해야 하나 싶은 일"이었다. C씨는 "경험해 봤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에게 연애란 포기보다 더 원치 않는 것에 가까웠다. 자발적 비연애를 택하는 청년층이 증가할수록 'N포'의 재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란 가사로 센세이셔널한 열풍을 일으켰던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파티>. 발매된 2013년 당시에는 인생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결혼이 선택으로 바뀌던 시절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운명 관이 담긴 단어, 아모르파티. 청년들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기 위해 타인과의 사랑에서 멀어졌다. 그러니 사랑 자체를 포기한 슬픈 N포도, 나르시시스트적인 MZ인 것도 아니다. 이제 새로운 사랑 노래를 부르자. "연애는 선택, 결혼은 글쎄!"

태그:#MZ, #연애, #비연애, #비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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