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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를 앞둔 2월 2일 금요일 늦은 오후 어린이집 전화벨이 울립니다. 

"네~~ 원장님요? 잠시만요~" 
"원장님, KBS <6시 내고향>이라는데요, 원장님을 찾으세요." 


'무슨 일이지?'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KBS 프로그램 6시 내고향 PD ○○○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저희가 단구서당 장재혁 선생님 촬영을 위해 자료를 찾던 중에, 서당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원장님네 아이들이 맞을까요?" 
"아! 네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 지난 11월쯤 6시 내고향에서 촬영 오셨었는데, 혹시 그때 PD님 아니신가요?" 
"오! 정말요? 네~ 저희가 매주 진행되는 프로그램별로 팀이 따로 있어요. 저희는 장수하는 어르신들을 찾아 그분들의 생활을 알아보는 프로그램입니다. 혹시 지난번 촬영은 어떤 내용으로 촬영하셨는지 여쭤도 될까요?" 
"네에~ 지난번에는 버스에서 만나는 지역민들을 따라가는 각본이었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혹시 이번에도 촬영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네~ PD님, 훈장님께서 아이들을 위해 자원봉사(재능기부)해주시니 훈장님께 좋은 일이라면 보탬이 되어야죠. 오늘 학부모님들 의견 수렴 후 연락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고맙습니다. 원장님." 


올해 6살이 된 우주반 친구들의 6시 내고향 두 번째 출연제의를 받았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훈장님에 관한 글을 보고 6시 내고향에서 취재를 온 겁니다. 돌아오는 월요일 바로 촬영하기로 하였으나 대설예보로 수요일(2월 7일)로 연기되었어요.
 
슬리피 삼촌의 자기소개 시간
 슬리피 삼촌의 자기소개 시간
ⓒ 박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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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드디어 촬영 D-DAY. 점심식사 후 온몸이 노곤해지며 졸음이 찾아오려는 찰나! 방송국에서 오셨습니다. 

방송촬영 예고 사인 때문인지 우주반 친구들은 긴장하는 모습 없이 얼굴이 활짝 피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모두가 끼와 재능을 타고난 거 같아요.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이들 쩌렁쩌렁한 대답소리에 카메라 감독님도 PD님도, 진행을 맡은 래퍼 슬리피님도 대만족 하십니다. 원장님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아이들 자존감이 쑥쑥 자랍니다. 

친구들과 처음 만났을 때 알려주신 "天地之間 惟人最貴(천지지간 유인최귀)"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다'라는 구절을 이날 복습했습니다(관련 기사: 매주 수요일, 훈장님 수업 듣는 어린이집 아이들 https://omn.kr/247wv).

첫 시간의 감동이 다시금 물밀듯 찾아듭니다. 아이들 역시 지난 시간이 스쳐 지나는지 싱글벙글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훈장님의 가르침은 마음에 새기고 머리로 기억하는 단단한 마음근육을 길러주십니다.

두 달 후면 아내분이 출산할 예정이라는 래퍼 슬리피님은 넘치는 장난으로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 주었습니다. 슬리피님이 아이들과 순식간에 친해진 비결은 진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방송이 끝난 후 옆교실 동생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는 다정함은 이제 곧 아빠가 되는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올해로 8번째 십 대를 맞으신 훈장님은 "~라테(나때)는 말이야"가 없습니다. 사람을 귀하게 대하시는 성품은 어른, 아이를 구분하지 않고 높이 대하는 존댓말과 부드러운 어조에 그대로 담겨있고 웃음을 참고 참다 나오는 미소는 수줍은 아이처럼 순수하십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노인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고령사회에 도달했습니다. 경로우대란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어르신도 계시고, 사라져 가는 경로우대에 쓴소리 하시는 어르신도 계십니다. 경로우대권 폐지에 대한 주장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저는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든을 앞둔 엄마와 아흔을 바라보는 훈장님의 어깨에 더 이상의 삶의 무게는 없이 편안한 백세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무릎이 아파 절뚝거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지나간 시간이 야속합니다. 가는 세월을 막을수는 없지만 엄마의 남은 시간은 화려한 백세인생이기를 기도합니다. 꽃처럼 아름답고 나무처럼 단단했던 젊은 날을 되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참! 사랑스러운 우주반 친구들의 방송 나들이는 오는 2월 15일 방송된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노후를 응원합니다.


태그:#오마이 이런일이, #방송출연, #장재혁 훈장할아버지, #어린이집아이들, #단구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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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ISFP 입니다. 게으른 내가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꾸준히 써 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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