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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공과대학 건물 입구로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공과대학 건물 입구로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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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원) 학위수여식에서 일어난 이른바 '입틀막 사건'을 두고 대학가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 16일 금요일 사건 발생 후 첫 월요일인 19일 찾은 서울의 여러 대학에서 정부의 과잉 경호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발단인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19일 서울 신촌·대학로 인근에서 학부생·대학원생 10명을 만나 지난 16일 카이스트 졸업생의 강제 퇴장 사건에 관해 물었다. 대부분 학생들은 해당 사건을 알고 있었는데,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당시 영상이 급속도로 전파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 대다수는 정부가 예산 삭감을 우려하는 학생의 문제 제기를 외면하고 도리어 과잉 진압했다며 "폭력적이다", "민주주의가 없다", "버려지는 기분이 든다"고 비판했다.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 홍혜민(26)씨는 "의견을 말한 졸업생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가운데 그 정도 얘기는 할 수 있다고 본다. 오히려 대통령이 있는 자리라고 그런 식으로 강하게 진압하는 건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공과대학에 재학 중인 예비 대학원생 유혜민(23)씨는 "대학원생들이 국회도 가고 목소리를 냈지만 그동안 개선된 게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해당 졸업생이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표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예산 삭감이라는 단어 자체가 열심히 공부하며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버려진다는 기분을 들게 하고,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화여대 공과대학에서 학부생 인턴으로 일하는 김혜율(23)씨는 "소셜미디어(SNS)로 카이스트 사태를 접했다. 경호원들이 졸업식 가운을 입고 숨어 있다가 해당 졸업생을 진압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 있는 일이라 놀랐다"며 "R&D 예산 삭감에 대해서는 지난해부터 복원하라는 요구가 꾸준히 있었는데 이번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비로소 이슈화가 되는 현실이 아쉽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한 학부생도 "그 졸업생이 정부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과학 기술 예산 삭감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고 해서 이를 무력으로 저지하고 경찰서까지 연행한 데 대해 정부는 어떤 사과도 없었다"며 "크게 반성해야 하고 추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산 삭감 체감 "항체 살 돈도 없다" "밤늦게 알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정문. 학교 이름이 새겨진 패딩을 입은 한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정문. 학교 이름이 새겨진 패딩을 입은 한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
ⓒ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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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R&D 예산이 큰 폭으로 삭감된 것 자체에도 비판했다. 그동안 진행해온 연구가 중단될 뿐만 아니라 학생 연구원들의 경제적 환경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정부 전체 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4.7%(4조 6000억 원) 삭감된 26조 5000억 원으로 확정됐다.

연세대 공과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 이아무개(26)씨는 "화학공학 및 바이오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데 항체를 살 돈이 없어서 실험을 못하고 있다. 연구생들에게 주어지는 인건비 역시 매달 100만 원에서 30만~60만 원 선으로 줄어들었다"며 "주변에 문 닫은 연구실도 있고 연구가 아예 중단된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대학  공과대학에 올해 대학원생으로 입학한 김근희(24)씨는 "예산 삭감으로 연구하는 데 있어 최소한의 생계도 유지되지 못한다면 학부생들이 굳이 대학원에 진학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라며 "앞으로 대학원에 가는 대신 바로 취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공과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 이아무개(26)씨는 "R&D 예산 증액을 말하는 대통령 연설 내용과 달리 올해에는 그동안 진행해 오던 연구 과제 예산이 예상보다 삭감된 채로 계약이 이뤄졌고 과제 공고 자체도 전보다 줄어들었다"며 "학생 연구원들의 민주주의가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정을 걷고 있는 학생들 뒤로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가 보인다.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정을 걷고 있는 학생들 뒤로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가 보인다.
ⓒ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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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학 공과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 강아무개(25)씨도 "학생들 인건비가 축소되면서 생계를 위해 조교 활동 또는 외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경우도 봤다"며 "이공계의 경우 오전부터 오후까지 연구실에서 고정적으로 연구 활동을 하다 보니 아르바이트는 밤늦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피로 누적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또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부분이 크다"며 "정부 차원에서 예산을 삭감하다 보니 연구원으로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학생들의 연구 이력이 줄어들게 되면 취업에서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것이고, 박사 진학을 염두에 두던 학생들도 진로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6일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선 축사 중이던 윤 대통령에게 R&D 예산 삭감을 항의한 졸업생이 대통령실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간 사건이 발생했다. 경호원들은 해당 학생의 입을 막고 팔다리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퇴장당한 학생은 카이스트 대학원을 졸업한 신민기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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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연세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카이스트, #입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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