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2 09:06최종 업데이트 24.02.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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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을 수리하며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사연과 그 속에서 얻은 깊은 통찰을 전합니다. 갈수록 디지털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필기구 한 자루에 온기를 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온/오프(On/Off)로 모든 게 결정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아날로그 한 조각을 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펜닥터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기자말]
"어떻게 만년필 손보는 일을 업으로 하게 되셨어요?"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만년필 수리공'은 꽤 희소한 직업이 분명하니까요. 인터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 물음에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만년필 수리공으로 살게 될 줄은 저도 미처 몰랐어요. 물자가 차고 넘치다 보니, 어지간하면 고쳐쓰기보단 새 것으로 다시 사는 경우가 많잖아요? 또 그게 합당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다른 사람에겐 그저 평범한 필기구 한 자루일지언정, 내겐 세상 둘도 없는 의미가 담긴 귀물(貴物)이라면 얘기가 달라져요. 시간을 들이면 살려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고쳐주는 곳이 없어 버려지는 펜들을 보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렇게 한 자루 한 자루 매만지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렸고요."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직업들이 있지만, 세계적인 미래학자들 중 2030년까지 현존하는 직업의 50%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태 없던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날 겁니다. 또 이미 사라진 줄만 알았는데 용케 살아남은 직업도 있다는 걸 알게 되겠지요. 제가 하는 이 일, 만년필 수리공처럼요.
 

휘어져 생명이 다한 만년필 펜촉이 되살아난 순간입니다. ⓒ 김덕래

 
"만년필 수리로 정말 생계를 꾸려갈 수 있나요?"

내가 쓰지 않음은 물론 내 주변에도 이 손가는 필기구 사용하는 이를 찾아보기 힘든데, 과연 만년필 사용자가 도처에 있다는 말이 사실일까... 싶은 거지요. 수입이 없어 경제적으로 빈곤하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텐데, 생각보다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의아할 법도 합니다.

정말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 표정의 상대방과 마주하는 자리가 처음엔 머쓱했지만, 이젠 편하게 말합니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요. 그건 바로 적당히 살이 붙은 제 얼굴과 아랫배입니다.

"보시기에 어떤가요? 어제 밤늦게 라면을 끓여 먹고 자 얼굴이 부은 게 아니라, 요게 제 순살입니다."
 

엄지와 검지로 볼살을 집으며 슬쩍 너스레를 떨면, 대부분 내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채고 웃음을 터뜨립니다. 납득하기에 충분한 살들 덕을 톡톡히 보는 순간입니다.

"펜닥터님은 만년필 한 자루 살려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들이는 걸로 알아요. 그러면 의뢰인이 꽤 오래 기다릴 수밖에 없잖아요? 지금처럼 혼자 일하지 않고 사람을 써 분업화하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펜을 수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야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질 테고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늘 어린 시절 생각이 납니다. 저는 밥 먹는 것보다 만화책 보는 걸 더 좋아했습니다. 선호하는 만화가의 신간이 나와 책방 소파에 푹 파묻힌 채 몇 권을 쌓아놓고 보던 어느 날, 고개를 갸웃한 기억이 있습니다.

책 겉장에는 분명 내가 아는 그 만화가의 이름이 쓰여있는데, 아무리 봐도 그림체가 다른 사람인 거예요. 한참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유명 만화가가 되면 많은 작품을 내놓게 되고, 그러면 일손이 필요해져 어쩔 수 없이 문하생의 손을 빌리게 된다는 걸요.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정 부분 맞는 말입니다. 시간이라는 재화가 곧 돈으로 여겨지는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내게 자신의 사연이 담긴 펜을 보내는 까닭은, 내게 만큼은 세상에 둘도 없는 이 펜을 당신이 자기 것처럼 살펴줄 것을 믿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살면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다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이들을 눈웃음으로 토닥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누군가로부터 전적인 신뢰를 받는다는 건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기쁨입니다.
 

수리한 만년필로 시필하는 과정입니다 ⓒ 김덕래

 
사람은 모두 각자의 가치 기준을 갖고 삽니다. 누구보다 많은 돈을 벌길 원하는 사람도 있고, 비길 데 없이 영화로운 명예를 소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보람과 소신을 귀히 여기며 삽니다. 그저 다름이 있을 뿐, 틀림은 없습니다.

내가 좀 더 잘 할 수 있는 일, 살아가는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볼까? 싶다가도 이내 생각을 접게 됩니다. 바로 '직장이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말 때문입니다. 이 말이 틀렸다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에서 난 잎들도 생김새가 조금씩이나마 다 다릅니다. 외양이 비슷할지언정 각자가 서로 다른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컵 안에 굵은 자갈만 있으면 빈틈이 많고, 고운 모래만 채워져 있으면 쉽게 허물어집니다. 큰 돌과 자잘한 흙 알갱이가 촘촘히 조화를 이뤄야 컵을 뒤집어도 형태가 유지됩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게 아닐까요? 잘 되는 상점이 있다고 그 옆에 무작정 비슷한 가게를 내면 오래가기 힘들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양성이 보다 존중되고 일반화 되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작년 김제 지평선고등학교에서 만년필 강연을 했던 날의 기억이 종종 떠오릅니다. 그날 필기구 수리업에 대한 소견을 묻는 학생에게 답한 것처럼, 만년필 수리는 그다지 효율이 좋은 일은 아닙니다. 누구에게 권하기도 어렵고, 실제 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현재의 가치가 빼어난 주식을 '우량주'라 하고, 지금보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주식을 '유망주'라 합니다. '유망하다'는 말은, 당신의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만년필 수리는 일정 부분 유망한 면이 분명 있으며, 가치주에도 살짝 한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 있을 리 없습니다. 경제적 빈곤이 사람을 겉부터 병들게 한다면, 정서적 결핍은 몸 안쪽 깊은 곳부터 허물어뜨립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가 OECD 38개 회원국 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게 그 방증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통해 경제적 자유도 누리는 것이 '최선'이라면, 마지못한 일을 하며 곤궁하게 사는 것은 '최악'입니다. 수입이 다소 줄더라도 높은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은 '차선'에 속합니다.

차선의 가치는 최선을 바라볼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수입엔 큰 문제가 없지만, 내가 하는 일에서 조금치의 보람도 느끼기 힘든 '차악'의 순간에 사람은 서글퍼집니다. 10년 20년 뒤의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짧던 길던 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이렇습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나 지향하는 목표는 뭔가요?"

모나미와 소규모 수제 만년필 제조사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만년필은 다 수입품입니다. 통상 만년필의 황금기를 1920년부터 1940년까지로 봅니다. 1888년 존 로우드(John Loud)에 의해 발명된 볼펜이 1938년 라슬로 조제프 비로(László József Bíró)의 손을 거쳐, 1950년대 상용화되어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얻은 이후에도 한동안 만년필은 번성했습니다.

만년필 시장은 활황이었지만, 당시 세계정세는 불안정했습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1929년 세계 대공황을 거쳐, 1939년 2차 세계대전이라는 긴 혼돈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으니까요. 이 시절 국내 사정은 더 암울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직후 곧바로 임시정부를 수립했지만 여전히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기 전까지 35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겪어야 했고, 정국이 안정되는가 싶었지만 5년 뒤 한국전쟁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1953년 휴전 협정을 맺은 후에도 한참 동안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큰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세계 만년필계엔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가진 제조사가 무수할지언정, 우리나라에는 그에 견줄 만한 업체가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합니다. 격동의 시대를 견디고 올해로 창립 64주년이 된 국민 브랜드 모나미의 뚝심을 칭찬합니다.

최근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코리아나'에 제 기사가 실렸습니다. 종이책은 영문본으로 만들어지지만, 홈페이지에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말이 참 반가웠습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코리아나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 김덕래

 
"우리나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년필 제조사는 없지만, 펜 수리에는 누구보다 진심인 만년필 수리공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돌고 돌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마침내 찾았으니, 이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작은 감동이라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만년필 수리가 대단한 일이라 생각하진 않아요. 그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나름의 지키고 싶은 바를 굽히지 않고 나아가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가능한 볼과 배의 살이 지금보다 빠지지 않도록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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