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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15일 2년 대학 과정을 79세 나이로 졸업한 김순임(왼쪽)씨와 동기생.
 올해 2월 15일 2년 대학 과정을 79세 나이로 졸업한 김순임(왼쪽)씨와 동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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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만 나왔어요. 더 공부하고 싶은데 학교를 못 갔죠. 평생 한이 되어 칠순 넘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통과했고, 꽃을 좋아해서 전남과학대 화훼원예과에 입학해 버스로 통학하며 졸업했어요.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에요.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어요. 멋지게 삶을 즐기면서 인생이 부끄럽지 않게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전북 순창군 동계면에 거주하는 김순임(79)씨가 지난 2월 15일 전남 곡성군 소재 전남과학대를 졸업하며 전한 소감이다. 김씨는 73세이던 2018년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 위치한 인화초중고등학교에 입학해 중·고 과정 4년을 마치고 검정고시를 통과하며 2022년 2월 25일 77세 나이로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못 배운 게 한이라 울곤 했다"


김씨는 "친구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양재학원, 미용학원 다니면서 일을 배웠다"면서 "순창군 (동계면에서) 적성면으로 시집을 갔는데, 못 배운 게 한이 맺혀서 힘들 때면 동산에 올라 '동심초'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울곤 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김씨는 결혼 이후 양품점을 운영했다. 단골로 드나드는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공부 생각이 계속 났다고 한다. 김씨가 느지막이 공부하게 된 건 우연한 기회였다. 어느 날, 단골 미용실 원장이 "공부에 한이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이 많은 사람도 입학할 수 있는 학교를 추천해줬다. 김씨는 "그때, 정말이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면서 "공부할 수 있는 학교 이야기를 듣자마자 입학했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7시 30분에 학교 버스가 (임실군 오수면에서 순창군 동계면) 집으로 왔어요. 수업은 8시 30분에 시작하는데, 월요일에만 오후 1시에 수업이 끝나고, 나머지 요일에는 12시에 끝나서 제가 할 일도 하며 공부할 수 있었어요."

아무리 공부에 한이 있어도 늦깎이 학생에게 공부는 결코 쉽지 않았을 터. 김씨는 "중학교 과정도 어려웠지만, 고등학교 과정은 정말 힘들었다"며 말을 이었다.

"수학, 영어, 문학, 독서, 기술가정, 과학, 한문, 중국어 등 한 가지도 쉬운 게 없었어요. 별수 있나, 시간 날 때마다 책 펴놓고 공부했어요. 선생님들이 모두 교장을 퇴직한 분들이라서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제 마음을 잘 이해해 주셨어요. 선생님들과 마음이 맞으니까 힘든 공부를 이겨낼 수 있었어요."

김씨는 "공부하는 동안 학교 화분 관리를 정말 잘 해서 졸업식 때 공로상도 받았다"면서 "대학에서 화훼원예를 잘 배워 꽃도 심고 나무도 심고 주변에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김씨와의 인연은 중·고 졸업을 계기로 계속 이어졌다.
 
지난 2022년 2월 25일 김순임씨가 77세 때 인화초중고 졸업을 축하해준 둘째 아들·며느리와 손자 손녀들.
 지난 2022년 2월 25일 김순임씨가 77세 때 인화초중고 졸업을 축하해준 둘째 아들·며느리와 손자 손녀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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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공부해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순창군 문인협회에서도 활동하는 김씨는 필명 '자목련'으로 순창군 지역신문인 <열린순창>에 시를 종종 보내주는 열혈독자다. 지난해 5월 3일 김씨가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학교 수업 끝나고 순창에 가는데 신문사에 있느냐"고 물었다. 10여 분이 흘렀을까. 김씨가 장미꽃 화분을 들고 찾아왔다. "무슨 꽃이냐"고 물으니 김씨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제가 화훼원예를 공부하고 있잖아요. 오늘 학교 수업에서 화분을 만들었는데, 신문사가 생각나잖아요. 그래서 선물로 가져왔어요." 
 
지난 2023년 5월 8일 어버이날, 김순임씨가 <열린순창> 사무실을 찾아와 학교에서직접 만든 장미꽃 화분을 선물했다.
 지난 2023년 5월 8일 어버이날, 김순임씨가 <열린순창> 사무실을 찾아와 학교에서직접 만든 장미꽃 화분을 선물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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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에게 "대학 공부는 할 만 하느냐"고 물으니 뜻밖의 답이 나왔다.

"작년(2022년)에 차 편을 몰라 집에서 학교까지 택시를 타고 다녔어요. 차비만 수백만원 들었는데, 제가 알아보고 학교에 말하니까 학교에서 순창읍까지 학교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어요. 방금도 학교 버스 타고 순창에 왔어요."

경계선이 맞닿은 전북 순창군(동계면 자택)에서 전남 곡성군(옥과면 대학교)까지는 26km정도 거리다. 안타깝게도 시골농촌에서는 군과 군을 넘나드는 대중버스를 이용하며 통학 시간을 맞춘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김씨는 학교에서 순창읍까지 13km가량은 학교 버스를 이용하고, 순창읍에서 동계면 자택까지 13km가량은 다시 군내 버스를 갈아타고 오갔다. 김씨는 수업이 있는 날이면 왕복 50km 넘는 거리를 버스로 오가며 공부했다.

자택과 학교까지 택시비를 따져보니 1회 편도만 5만원이 넘는다. 한두 푼도 아니고 수백만원의 교통비까지 들여가며 공부한 이유를 물었다.

"1945년(호적은 1947년), 7남매 중에서 오빠 아래 맏딸로 태어났어요. 부모님께서 남동생과 막내 여동생은 고등학교까지 보내셨는데, 그 위에 형제자매는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를 시키지 못하셨어요. 늦은 나이지만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못 배운 평생의 한을 풀었어요. 공부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남은 생은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팔순 앞둔 소망, 꽃밭 가꾸고 시집 출판
 
김순임씨가 그동안 틈틈이 써 온 습작 시 원고 뭉치.
 김순임씨가 그동안 틈틈이 써 온 습작 시 원고 뭉치.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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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을 얼마 앞둔 지난 1월말 김씨가 노란 서류봉투 하나를 전했다. 서류봉투에는 김씨가 언제부터 썼을지 모를 시 원고가 가득했다. 김씨는 "글이라고 쓰기는 썼는데… 내놓기가 정말 부끄럽다"면서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오래전에 쓴 글을 읽으면 지금 마음 같지 않기도 하고, 남부끄럽기도 해요. 자식들이 '뭣 하러 예전 일을 쓰시느냐'며, '어머님 마음에 드는 글들만 간추려야지, 써 놓은 글을 전부 보내면 어떻게 하느냐'고 뭐라 해요. 제가 쓴 글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걱정되기도 하고… 부끄럽네요."

지난 2월 22일 오후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대학 졸업 이후 1주일이 지났는데 어떻게 생활하고 있느냐"고 묻자, "순창군 노인일자리 하면서 집 앞에 있는 동계초등학교 담장 아래에 꽃을 심으려고 꽃밭을 다지고 있다"며 해맑은 목소리로 답을 이었다.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면 한 달에 30만원을 줘요. 그 돈으로 아이들 학교 가는 길에 예쁘게 꽃도 심고 나무도 심고 그러려고요. 대학에서 배운 화훼원예 실력을 이제부터는 주변을 위해 써 보려고요."

지난 6년간 중·고·대학 과정을 쉼 없이 마친 김씨는 "주변에 봉사하며 살고 싶다"며 대학에서 공부했던 목표를 또다시 부지런히 실천하고 있다. 김씨가 건넨 시 원고 서류봉투에는 "쓰고 싶은 글입니다. 김순임 시"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팔순을 앞둔 김씨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시집 출판을 소망하고 있다. 김씨가 가꾼 꽃밭 위로 김씨가 쓴 시가 꽃잎처럼 흩날리는 날이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2월 21일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태그:#김순임, #전북순창,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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