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23년 4월 10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년 4월 10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과거 '일베'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 한 아이와 어처구니없는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단지 5월 1일을 노동절로 불렀다는 이유로 '종북 좌빨 교사'로 낙인찍혔다. 노동절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로 불러야 한다는 거다. 노동은 공산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라고 덧붙였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보통명사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북한 공산당의 이름이 노동당이라며 나름 근거를 댔다. 이어 해방 직후 우리 사회를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한 남로당도 '남조선 노동당'의 약칭이라며 알은체했다. 그때만 해도 '일베'를 그저 '반공 커뮤니티'쯤으로 여겼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주장은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사회의 '통념'이 됐다. '몸을 움직여 일은 한다'는 사전적 의미도, '사회의 유지에 필수적인 생산활동을 통칭한다'는 경제학적 의미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의 인식 속에 노동이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천한 일'로 정의된다. 그들에게 부모님의 직업은 노동자가 아니라 '회사원'이다.

노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천시되다 보니, 관련된 용어들도 하나같이 왜곡되고 폄훼된다. 노동조합이 그 대표적인 예다. 미래 노동자로 살아갈 아이들조차 헌법에 명시된 노동조합이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되어 허구한 날 반정부 투쟁만 일삼는 폭력 조직인 양 매도하는 현실이다.

덩달아 투쟁과 항쟁이라는 단어에도 색깔이 덧씌워졌다. 교과서 속 항일 투쟁이라는 '과격한' 용어 대신 항일 운동으로 '순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아이들도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일제강점기 항일 투쟁은 공산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이고, 항일 운동은 민족주의자들의 그것으로 여기는 황당한 경우마저 있다.

언젠가 답사 인솔 중에 만난 외지인 중엔 국립 5.18 민주 묘지에 우뚝 선 추모탑의 '민중항쟁'이라는 글귀를 문제 삼기도 했다. 무장한 시민들이 정부에 맞서 싸웠다는 사실을 자인한 표현이니 '반란'과 뭐가 다르냐는 논리다. 참고로, 일부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공식 명칭인 '민주화운동'보다 '민중항쟁'이 더 적확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마저 버리는 형국

'피지배 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을 지칭하는 용어인 민중도 혐오의 낙인을 피할 수 없다. 시민과 국민, 대중 등 다수를 뜻하는 비슷한 말이 여럿인데도 굳이 민중을 들먹이는 건 스스로 좌파임을 고백하는 행위라고 부르댄다. 그들은 '민중항쟁'을 '좌파들의 반란'으로 받아들인다.

하물며 인민은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금기어가 됐다. 한자대로라면, 사람 '인(人)'에 백성 '민(民)',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인민이라는 단어가 고어인 양 국어사전에만 남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북한에서 상용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뇌리에 인민은 오래전부터 공산주의 용어다. 북한의 공식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고,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의 본딧말도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근거를 댄다. 영어 '피플(People)'에 대응한 한자어일 뿐인데도, 분단의 현실 속에서 애꿎게 이념의 굴레가 씌워졌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우리 역사에서 인민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1896년 서재필이 발간한 독립신문의 사설에서였다. 인민을 공산주의 용어로 낙인찍는 건, 마치 서재필이 공산주의자라는 말과 다름없다. 아이들에게조차 민중과 인민은 '북한 말'이고, 대중과 국민은 '우리 말'이라는 이분법이 완고하다.

인민으로 번역된 '피플'에도 불똥이 튀었다. '피플'과 어원이 같은 '포퓰리즘(Populism)'이 뭇매를 맞고 있다. 원래의 의미와는 달리 악의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퓰리즘은 소수의 지배층인 엘리트 집단에 맞서 다수의 피지배층 대중이 사회 체제의 변혁을 이끈다는 정치 철학 용어다.

흔히 '대중영합주의'로 해석되지만, '반(反)엘리트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이 자의적으로 남용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상대방의 정책을 흠잡아 공격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됐다. 포퓰리스트로 낙인찍히면 정치인의 생명이 위태롭다.

급기야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포퓰리즘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주범"으로 규정하고, 모든 국민이 맞장구치는 상황이다. 소수의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하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 또한 사그라들었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마저 버리는 형국이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도 이현령비현령식 오용이 심각하다. 권력을 부자가 세습하는 북한도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인 중국도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처한다. 스스로 멋쩍었던지 그들의 민주주의 앞에는 '자주'나 '중화' 등의 수식어를 붙인다.

민주주의의 맏형이라는 미국의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전직 대통령이 앞장서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정치적 득실에 따라 상대 세력을 악마화하는 모습은 목불인견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는 국제 사회의 신뢰와 권위를 실추시켰다.

가치관이 물구나무선 현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서울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서울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대한민국 민주주의도 바람 앞의 등불 처지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권력을 사유화하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해 공론의 장을 파괴한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자신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무소불위 검찰권을 동원해 겁박하는 모습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마저 의심케 한다.

하루아침에 '대통령의 푸들'로 전락한 '국민의 방송'의 민낯은 '양두구육'의 끝판왕이었다. 대통령 경호원들이 입법 기관으로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입을 틀어막고 행사장 밖으로 끌어내는 장면에 국민은 아연실색했다. 그럴진대 카이스트 졸업생과 의사에 대한 '입틀막'은 단순한 가십거리로 치부될 정도다.

'입'은 대통령에게만 주어지고, 나머지 모든 국민은 '귀'만 열라는 메시지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독재 권력의 행태를 서슴지 않는 대통령의 이율배반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증명했다. 이젠 대통령의 웬만한 '헛발질'은 눈에 띄지조차 않는다.

민주주의가 조롱받는 현실이야말로 단어의 의미가 왜곡되고 온갖 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온상이다. 유튜브의 자극적인 콘텐츠가 범람하며 배제와 혐오가 세대와 지역을 넘어 도미노처럼 확산하는 지금, 당장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일베'가 준동하던 십여 년 전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본다.

"선생님도 대학 시절 '운동권'이었나요?" 한 아이의 느닷없는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긍정하든 부정하든 '운동권'에 대한 오해를 피할 길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운동권'은 아이들에게 '페미'에 버금가는 부정적인 단어다. 엄혹한 독재정권 시절 사활을 걸고 불의에 맞선 대학생이라는 의미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민주화 운동의 이력을 팔아 기득권을 누리는 집단쯤으로 매도된다.

정부와 여당, 보수 언론이 합세해 만든 치졸한 프레임에 아이들이 가장 먼저 걸려든 모양새다. 그들이 '운동권'에 대해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내 심경을 헤아릴 리 없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혐오하는 모습이 못내 서운하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그들의 헌신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알려줘야 할 텐데 말이다.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연일 '운동권'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그가 '소년 등과'를 준비할 때,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이들을 비아냥거리고 있다. 숱한 '운동권'의 희생으로 차려진 민주화라는 밥상 위에 숟가락을 얹는 걸 넘어서, 반찬 투정을 부리는 셈이다. 가치관이 물구나무선 현실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말의 뜻이 버젓이 왜곡되고 혐오의 언어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급격한 퇴행을 절감한다. 여당의 비대위원장이 십여 년 전의 '일베 짓'을 서슴지 않는 건, 그만큼 우리 국민의 역사 인식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뒷걸음질했다는 뜻이다. '공든 탑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말을 곱씹게 되는 하수상한 시절이다.

태그:#운동권, #한동훈비대위원장, #혐오표현, #입틀막, #윤석열대통령
댓글18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