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티어의 'AK47' 뮤직비디오. 코미디 유튜브 채널 <뷰티풀너드>가 발매한 신곡이다.

맨스티어의 'AK47' 뮤직비디오. 코미디 유튜브 채널 <뷰티풀너드>가 발매한 신곡이다. ⓒ 뷰티풀너드

 
힙합 듀오 '맨스티어'가 지난 2월 28일 발표한 신곡 'AK47'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뮤직비디오 영상은 발매 하루 만에 100만 조회수를 넘겼고, 음원차트에서도 유의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진짜 힙합 래퍼가 아니라, 래퍼를 흉내내는 코미디언이라는 점이다.

코미디는 특정 대상의 특이한 지점을 포착하고 이를 과장시켜 모사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만들어왔다. 특정 직업군의 특성이나 모순을 가져다 패러디하는 선을 넘어, 이를 재창조시킨 인물을 연기하는 방법을 극대화시킨 '부캐'(부캐릭터)는 코미디언들에게 더욱 강력한 자신만의 표현방식으로 자리잡았다. SBS <웃찾사>, KBS <개그콘서트>, tvN <코미디 빅리그> 등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연이어 폐지되자, (현재 <개그콘서트>는 지난해 11월부터 다시 방송을 재개했다) 재능 있는 코미디언들은 유튜브 생태계에 뛰어들어 자신만의 부캐를 창조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맨스티어'를 만들어낸 코미디 유튜브 채널 <뷰티풀너드>도 그 일환이다.

<뷰티풀너드> 채널의 'M생을 찾아서'라는 콘텐츠는 밑바닥 인생을 담는다는 콘셉트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8수 공시생 캐릭터로 장수생들의 모순을 꼬집는 동시에 그들만의 애환을 되돌아보고, 뮤지션이라는 타이틀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바쁜 래퍼 캐릭터를 통해 힙합 뮤지션들의 허세를 꼬집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으로 코미디를 만드는 건 <뷰티풀너드>가 처음은 아니다.
 
한국 힙합씬의 새로운 장을 연 래퍼 '언에듀케이티드키드' 언에듀케이티드키드는 미국의 '총질하고 마약을 팔아 성공한 래퍼' 컨셉을 내세웠다.

▲ 한국 힙합씬의 새로운 장을 연 래퍼 '언에듀케이티드키드' 언에듀케이티드키드는 미국의 '총질하고 마약을 팔아 성공한 래퍼' 컨셉을 내세웠다. ⓒ 언에듀케이티드키드 인스타그램

 
인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비대면 데이트'는 중고차 딜러, 카페 사장, 재벌 3세 캐릭터 등을 내세우며 이들의 특성과 모순을 웃음의 소재로 활용했다. 그 이전에 <개그콘서트>의 코너 '용감한 녀석들', <코미디 빅리그> '코빅법정' 등 레거시 미디어에서 코미디언들이 직업적인 특성을 풍자해온 것의 연장선상이다.

그중에서도 힙합 래퍼는 자주 패러디의 대상이 되어온 직업군이다. 미국 흑인 래퍼들의 추임새들을 일상생활에서 쓰는 래퍼들을 따라한다거나 (말끝마다 yeah, 갱갱갱 같은 추임새를 넣는 등), 힙합의 남자다움을 위시하며 여성 앞에서 강한 척을 하지만 정작 위기의 순간에 나 몰라라 도망가는 식으로 허세에 찌든 남성성에 관한 풍자도 코미디 콘텐츠에선 이미 익숙한 문법이다. 

이러한 힙합을 패러디하는 코미디는 어느새 '진짜 갱스터' 콘셉트를 차용한 뮤지션의 등장으로 더욱 심화된다. 2010년대 초반, 흑인 슬럼가의 마약 거래장소에서 유래된 힙합 장르 '트랩'을 직수입한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흑인 갱스터의 총격전과 칼부림 사이에서 탄생한 음악을 차용했는데, 직관적이고 거친 사운드를 만들며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한국 힙합에서 "나는 진짜 갱스터 출신이다"라고 말하는 래퍼 '언에듀케이티드키드'가 등장했다. 트랩 사운드만을 차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슬럼가 뮤지션들의 특성을 가져다가 연기하는 래퍼가 나타난 것이다. (물론 그는 서울 도봉구 출신의 한국인이며 캐나다에서 유학한 사실이 있다.)

언에듀케이티드키드는 반복적으로 범죄나 돈, 여자에 관한 가사를 쓰며 중독적인 사운드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여기엔 부작용도 따랐다. 마치 힙합 장르의 허들이 낮아진 것 같은 착시효과를 준 것이다. 자극적이고 뻔한 가사들을 반복해 쓰고, 강렬하고 거친 사운드를 연달아 사용하면 사람들이 좋아해 줄 거라는 착각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언에듀케이티드의 성공은 그의 음악적 성취보다는, 독특한 콘셉트 덕분이라는 오해 때문에 이를 따라하는 래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코미디 유튜브 <뷰티풀너드>는 이런 상황을 자신들의 기회로 삼았다. 어쩌면 코미디언들에게 래퍼는 군침이 도는 소재였을지도 모른다. 래퍼들의 이러한 '기믹 전략'(콘셉트를 연기하는 전략)은 어찌 보면 코미디언들의 '부캐' 전략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소위 '기믹' 래퍼라고 불리는 이들은 작업실에서 10분 정도 음악작업을 하다가 인스타그램 릴스를 1시간 이상 보고, 예쁜 여성 셀럽(유명인)들에게 DM을 보내며 치근덕대기에 몰두하고, 그러나 자립심 없이 부모 집에 얹혀 사는 것으로 풍자된다. 미국 흑인 게토와 같은 어려운 환경에서 한번도 살아보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을 동경하고 따라하는 데 여념이 없는 가짜 래퍼들은 풍자의 대상으로 적격이었다. <뷰티풀너드>는 가상의 힙합 듀오 '맨스티어'를 창조해 이러한 힙합 뮤지션들의 문제 혹은 모순을 패러디하기 시작했다.
 
 맨스티어의 '빈민가 소년' 뮤직비디오. 뷰티풀너드의 부캐 '맨스티어'는 힙합 래퍼들의 삶을 패러디하는 행위를 코미디의 동력 삼는다.

맨스티어의 '빈민가 소년' 뮤직비디오. 뷰티풀너드의 부캐 '맨스티어'는 힙합 래퍼들의 삶을 패러디하는 행위를 코미디의 동력 삼는다. ⓒ 뷰티풀너드

 
맨스티어는 래퍼들이 내세우는 '기믹'을 코미디의 동력으로 활용한다. 과거 소련군이 사용하던 소총의 이름을 딴 신곡 'AK47'에는 'AK47을 맞고 사망한 외할머니, 그 말대로 악 소리 47번 외치셨지'와 같은 가사가 포함돼 있다. 이는 흑인 게토의 불안정한 치안과 갱스터간 갈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총기사고를 가정해서 쓴 황당한 가사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이게 가상의 콘셉트가 아니라 과장된 코미디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렇다고 만듦새에 힘을 쓰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음악에 쓰인 가사의 본질은 풍자이지만, 랩의 기본이 되는 라임을 활용하는 등 힙합 장르의 규칙을 지키는 편이다. 과거 유행했던 플로우를 그대로 가져다 쓰지만 흉내내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직접 해낼 수 있는 수준까지 구사한다. 대상을 흉내내고 풍자하려다 본질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 이른 셈이다.

맨스티어의 'AK 47'에 따라오는 반응은 일종의 현상이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공개 하루만에 100만 조회수를 돌파했고, 이는 최근 힙합 뮤지션들의 저조한 음원 성적과는 남다른 반응이다. 그동안 <뷰티풀너드>가 유튜브 콘텐츠로 착실히 쌓아올린 '기믹 래퍼' 서사를, 해당 곡을 통해 큰 결과로 성취해낸 것이다. 온갖 욕설과 혐오성 가사, 콘셉트에 사로잡힌 행동의 근원은 '가짜 래퍼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희극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다. 또한 이는 힙합 뮤지션의 편견에 염증을 느껴가던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길티 플레저'로 작용한다.

물론 힙합 래퍼, 또는 힙합 음악 팬들에게 '맨스티어'의 행보는 자신들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조롱하는 불편한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허나 코미디의 지향점 중 하나는 대상의 부조리를 건드리고 이를 통해 불편함을 발생시키는 데 있다. 맨스티어의 총자루는 힙합이라는 장르 전체를 난사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힙합 음악을 하는 일부 사람들이 빚어내고 있는 사회적 문제 혹은 부조리를 정확히 겨냥한다. 그들이 재조명하는 힙합 신의 모순과 부조리는 자정 작용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만한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유진 시민기자의 개인 SNS에도 업로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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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노동자.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 사회와 문화의 전반적인 감상을 글로 남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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