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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분명 왔습니다. 3월 꽃샘 추위가 아직도 겨우내 입었던 옷깃을 여미게 할지라도 봄은 왔습니다. 남쪽의 봄 햇살이 두터운 겨울 일상을 덮고 있는 전 국민의 맘을 흔들어 놓고, 자꾸만 남쪽으로 맘을 돌이키는 것을 보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 일행 중 저도 문우들과 함께 전남 구례 산수유꽃 축제와 구례의 명소에 다녀왔네요.

여행 전 예비지식으로 산동은 구례의 어디쯤일까. 어떤 사연들이 들려올까 하고 검색했지요. 1000년 전 중국 산동성 처녀가 시집올 때 가져왔다는 산수유 한 그루. 그래서 산동면이라는 마을 이름도 붙었다는 야설도 읽고, 산동애가의 구슬픈 노래가사도 읊어보고, 얼마전 접한 김종길 시인의 시 <성탄제>에 나오는 붉은 산수유열매의 약용 효과도 예감해 봅니다. 무작정 떠나는 길에 한소끔 정보량을 담고 떠나니 왠지 더 즐거웠습니다.

여행 길잡이로 사진작가 한 분이 계셔서 사람들의 발길이 덜 붐비는 계척마을, 할머니 산수유 시목과 달전마을, 할아버지 시목을 찾았습니다. 특히 할머니 산수유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시목으로 키도 둘레도 할아버지 산수유보다 커서 여성인 친구와 저는 괜히 우쭐하며 사진 한 컷을 찍었네요.
 
산수유꽃 90퍼센트 개화모습과 지리산이 전경
▲ 산동 상위마을 산수유전경 산수유꽃 90퍼센트 개화모습과 지리산이 전경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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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만개한 산수유 꽃잎과 가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야트막한 마을 돌담길따라 펼쳐지는 꽃담길은 마치, 강형철 시인의 시 <야트막한 사랑>을 떠올리게 했구요.

다음 여행지는 산수유축제(3.9-3.17) 첫날을 알린 산동면으로 향했는데요. 역시나 대한민국 대표 봄축제의 명성만큼이나 관광객 차량 행렬이 끝이 없었답니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가장 아름다운 산수유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상위마을 안으로 들어갔네요.
 
푸른 하늘아래 묵직한 지리산 병풍이 감싸주는 마을표정이 따뜻하다
▲ 산동 상위마을 안쪽풍경 푸른 하늘아래 묵직한 지리산 병풍이 감싸주는 마을표정이 따뜻하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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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지리산 자락에는 하얀 서설이 보이고, 그 위에 펼쳐진 짙푸른하늘 지붕삼아 상위마을 개울물소리역시 청아로웠습니다. 어딜가나 관광객 맞이 상점으로 눈살 찌푸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 마을 안쪽은 정말 천상의 어느 정원 한쪽을 떼어와 옮겨 놓은 듯 아름다웠습니다.

다음 장소는 구례 운조루고택(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 영조시대 낙안군수 유이주(柳邇冑) 지음)이었어요. 몇 년전 모 여행 잡지를 읽으며 대한민국의 유명한 고택으로 나왔던 이곳을 언젠가 한번은 와야지 했거든요.

지리산 남쪽 구례 오미리에는 자리잡은 대표적인 우리의 전통 누정인 운조루(雲鳥樓). 금환락지(金環落地, 금가락지가 떨어진 명당)에 자리 잡았다네요. 운조루의 글자는 중국시인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 시구의 첫머리 글자를 따서 지었답니다.
 
고즈녁한 고택에도 산수유와 매화가 만발하였다
▲ 운조루 고택전경 고즈녁한 고택에도 산수유와 매화가 만발하였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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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의 두 가지 자랑거리, 하나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이 새겨진 큰 쌀독입니다. '누구든 이 쌀독을 열 수 있다'는 뜻으로, 흉년에 배고픈 사람들에게 이 쌀독을 열어 구제했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이 집만의 특징, 굴뚝입니다. 굴뚝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 눈에 잘 띄지도 않게 숨어 있는데요.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는 것을 막고,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굴뚝 연기를 보면서 아픈 마음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해요.

이런 작은 것까지도 세심하게 배려했던 조상들의 성품이 녹아 있는 운조루 굴뚝입니다. 고택의 정문 앞 연못지에서부터 사랑채 누마루, 안채, 사당건물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둘러보며 과연 명당이라 부를 수 있겠구나 싶었지요.

다음 행선지는 구례 오산에 있는 사성암입니다. 원래는 오산암이라 불렀는데, 4명의 고승-원효(元曉)·도선(道詵)·진각(眞覺)·의상(義湘)-이 이곳에서 수도(修道)하여 사성암이라 부른다고 해요. 구례 오산(해발 531m)에 있는 작은 암자이지만 구불구불 섬진강이 용이 되어 홍복을 나누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경내에 있던 나무사이로 걸린 지는 해 풍경이 아름답다
▲ 사성암에서 바라본 일몰 경내에 있던 나무사이로 걸린 지는 해 풍경이 아름답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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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비슷하여 옛 부터 소금강이라 불렀다하니, 평생에 금강산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을 예서 멈출까 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암자 뒤편으로 돌아서면 우뚝 솟은 절벽과, 풍월대·망풍대·신선대 등 12비경으로 절경이 뛰어나다는 설명서도 읽었습니다. 섬진강과 구례군을 한눈에 다 내려다볼 수 있는 배례석도 멋지구요.

팔순은 넘은 할머니 두 분이 지팡이를 들고 한 계단씩 오르시면서 먼저 가라고 순서를 내어주시길래, 몇 발자국 함께 갔지요.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을 보고 당신들의 소원을 빌러 가신다네요. 저도 후다닥 올라가서 합장 후 몰래 소원 하나 빌었네요. 이곳까지 올라올 때는 못보던 일몰을 경내에 서 있던 소나무의 후광이 되는 장관을 찍었으니, 덤으로 더 큰 행운이 올 것 같아 참으로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비록 하루 동안의 짧은 여행이었어도 글과 말로서 소통되는 사람들과의 여행이야말로 참 즐거움입니다. 남쪽마을 구례군에서 먹은 봄 밥 덕분에 일주일가량 밥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으니 더 많이 사랑 나눔 해야겠습니다. 산수유 하면 널리 유명한 시,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의 일부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중략)

태그:#구례마을, #산동산수유축제, #운조루, #사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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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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