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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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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부에서 이른바 '건폭'으로 지목 받았던 건설노동자 9명이 특수강요미수와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법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재판부가 "검찰에서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다중의 위력'을 행사하였다고 볼 수 없다"며 모두 죄가 안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형사2단독 백광균 판사가 지난 13일에 내린 선고다. 건설노동자들을 변론했던 법무법인 '여는'이 받아 16일 공개한 판결문을 보면, 법원이 왜 무죄 판단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

사건은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산건설기계지부 강서김해지회가 2021년 11~12월 사이 한 공영차고지 건설 현장에서 소장한테 조합원의 덤프트럭 등 장비 사용을 요구하며 벌어진 갈등을 말한다.

검찰은 지회장‧조합원들이 현장소장한테 위협을 가하고 집회를 열며 구청에 민원을 제기해 공사 업무를 방해하고, "계속 요구에 불응하면 공사업무를 방해할 듯 협박하여 피해자(소장)한테 '의무 없는 일'을 시키도록 순차 공모했다"며 기소했다.

지회는 공사 현장 인근에서 몇 차례 모여 확성기가 부착된 차량을 세워 두고 집회를 벌이고, 공사 소음과 장비 관련 민원을 구청‧경찰서에 신고했다.

검찰은 지회장‧조합원들에 대해 "다중의 위력으로 공사 업무를 방해함과 동시에 피해자(소장)한테 의무 없는 일을 시키려고 하였으나, 해당 요구를 거절 당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미수이 그쳤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지회장과 소장의 진술이 다소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지회장이 공사 소식을 듣자 현장에 찾아가 소장을 만나 지회 소속 덤프트럭 등 장비를 요구하였고, 소장이 대놓고 거절하지 못한 채 필요하면 쓰겠다고 응당했으며, 나중에 지회장이 현장에 가보니 지회 소속 아닌 장비만 있길래 거칠게 항의한 다음, 근처에서 항의성 집회를 시작하였다는 내용은 대체로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지회장과 소장의 만남 경위 등에 대해, 재판부는 "한쪽에서는 묵시적 승낙(지회장), 반대 쪽은 묵시적 거절(소장)로 상호 오인하였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지회장은 여러 공사 현장에서 되도록 지회 소속 장비가 많이 사용되도록 요구하고 관철해 내는 업무를 담당해 왔다고 보인다"라며 "이 공사 현장에서도 지회 소속 장비가 조금이나마 쓰이겠다고 소장을 믿었는데, 전혀 다른 상황을 목격하자마자 거친 말투로 항의하고 집회까지 나아갔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검찰에서 특정한 공소사실의 발언 자체도, 지회장이 현장에서 지회 장비 사용이 합의되었음을 전제로 합의가 깨어진 사실에 대한 항의이지, 앞으로 지회 장비 사용을 요구하는 취지로까지는 넘겨짚을 수 없다"고 했다.

범죄 성립 요건 관련해, 재판부는 "지회장의 발언만으로는 업무방해죄, 특수강요죄의 성립요건으로 '다중의 위력'을 행사하는 데에 착수했다고 볼 수 없으니, 범죄가 성립하려면 더 나아가 '다중의 위력'을 행사하였다고 볼 수 있어야만 한다"고 밝혔다.

당시 집회 등 상황에 대해, 재판부는 "집회신고서, 관계자 진술, 소장 측에서 찍은 동영상 등을 종합하면, 집회 신고를 하였고 집회신고 기간 중에 일이 없을 때 1~3번씩 삼삼오오 모였으며, 간간이 주변 사진을 찍어온 사실만 인정할 수 있다"라며 "현장 자체 소음을 넘어설만큼 소음을 내거나 인력‧차량 출입을 방해하거나 공사 관계자한테 장비 사용을 강권한 사정은 확인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사전 신고를 적법하게 마치고서 일 없는 사람 위주로 드물게 몇 명씩 모여 공사를 위협할만한 소음이나 폭력 없이 집회를 해온 이상, 이것만으로는 '다중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했다. 집회결사의 자유를 언급한 재판부는 "설령 실제 집회 목적이 신고 내용과 다른 데에 있었다고 치더라도 섣불리 범죄로 재단, 처벌할 수 없음 역시 명명백백하다"고 했다.

이들이 제기한 민원‧신고 관련해, 재판부는 "소음 만원만 두 차례 구청에 제기하고, 자가용 화물차의 영업용 사용을 두 차례 경찰에 신고하였다"라며 "경찰 신고 2건은 모두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으로 적발, 입건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라고 봤다.

재판부는 "민원‧신고는 개개인이 제기한 것이 분명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모‧가담하였다고 볼 증거가 없고, '다중'의 위력이 되지 못한다"라며 "설령 공모‧가담하였다고 치더라도 빈도가 한 달에 한두번이고 내용 또한 공사를 방해할만한 수준이 못 되며, 지회 소속 장비 사용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라며 "오히려 신고 덕택에 현장에서 일어난 범죄 2건이 적발되기도 했으니 그 어느 모로 보나 다중의 '위력'으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건설노동자들을 변론했던 김기동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가에서 함부로 집회결사를 막지 못하도록 허가 제도 또한 부인한 이상 섣불리 범죄로 재단, 처벌할 수 없음이 명명백백하다고 선언한 것"이라며 "건설노조가 항의수단으로 한 업체의 위법행위에 대한 신고행위마저도 강요나 업무방해의 수단으로 보았던 기존 선례를 답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건설노조 장비 채용 요구하며 집회·민원, 전원 무죄(3월 13일자)

태그:#건설노조, #부산지방법원, #업무방해, #특수강요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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