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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박사
 박재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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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박사가 최근 <큰 사상가 다석 유영모 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은 다석 유영모(1890-1981)의 사상을 13개의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 형태로 설명했다. 다석의 사상은 몸, 맘, 얼을 아우르는 민주 생활철학이다. 박재순 박사는 책의 첫머리에 다석의 생명철학을 소개했다. 다석의 철학은 동서문명의 만남과 한민족의 주체적 자각으로 전개된 한국근현대의 시대정신을 담은 사상이다.

다석은 동양의 유교, 불교, 도교와 한국정신문화를 바탕으로 서양의 기독교정신, 민주정신, 과학사상을 주체적으로 깊이 받아들였다. 박재순 박사는 이 책에서 한국정신과 유불도의 동양정신을 바탕으로 기독교·민주·과학을 받아들여 형성한 다석의 민주생활철학을 소개했다. 아래는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박재순 박사와 이 책에 관해 서면으로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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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세기를 살다간 다석의 삶과 사상에 대해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아는 게 왜 중요하다고 보나?
"20세기는 조선왕조 국가에서 민주공화국으로 바뀌는 변혁의 시대이고, 나라를 잃고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고 남북이 분단되는 고통과 시련의 시대였다. 또한 농업중심의 국가에서 산업기술국가로 발전해간 혁신의 시대였다. 총체적인 난국과 변화 속에서 인생과 역사, 사회와 국가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깊고 넓은 깨달음과 이해를 다석의 삶과 사상에서 배울 수 있다.

젊은이들은 돈과 기계가 지배하는 산업기술 사회 속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았다. 돈과 기계를 중심으로 사는 젊은이들은 인생과 역사, 사회와 국가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를 갖기 어렵다. 젊은이들이 인생과 역사, 사회와 국가의 주인과 주체로서 민주공화의 나라를 이루어가려면, 다석이 체험하고 깨달은 인생과 역사, 사회와 국가에 대한 깊고 큰 정신과 사상을 배울 필요가 있다."

- 다석이 한국 사상사에 남긴 가장 중요한 공헌은 무엇이라고 보나?
"사상가 다석의 공헌은 동서문명의 만남과 한민족의 주체적 자각이라는 시대정신을 그의 삶과 사상 속에 구현한 것이다. 다석은 한민족의 정신, 동아시아의 종교, 유불도를 서양정신문화, 기독교, 민주정신, 과학사상에 비추어, 그리고 오늘 우리 삶의 관점에서 새롭게 비판적, 창조적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다석은 동양의 고대사상을 고대사상 틀 안에서 이해하고 해석하지 않고 오늘 우리의 관점에서 민주적이고 과학적인 정신과 기독교 정신에 비추어서 새롭게 해석했다. 동양 전통사상을 그 시대 제약과 한계에서 벗어나 오늘 우리의 삶과 정신 속에서 생동하도록 했다.

그는 한국정신과 유불도의 사상에 비추어 서양 기독교정신, 민주정신, 과학사상을 심화하고 발전시켰다. 서양 정신문화는 과학주의(유물론과 기계론)와 국가주의(약육강식과 우승열패)에 예속되어 깊이와 풍성함을 잃고 왜곡되고 변질되었다. 다석은 서양 정신문화, 기독교, 민주사상, 과학사상을 한국과 동양 정신문화와 만나게 하고 오늘 우리 삶과 정신 속에서 살아나게 함으로써 서양 기독교 정신, 민주사상, 과학사상이 더욱 깊고 풍부하게 했다."

-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다석의 한계는 무엇이었나?
"사회역사에 참여해 활동하기보다는 자신의 속세계와 정신훈련에 집중했다는 것을 다석의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안창호(1878-1938)와 함석헌(1901-1989)은 역사와 사회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삶과 사상을 형성했다면 다석은 자신 에 집중하고 엄격한 금욕과 절제 생활을 했다. 또한 다석은 젊은 시절에는 잡지에 글을 쓰기도 했으나 50대 중반 이후에는 공적인 글을 거의 쓰지 않았다. 65세 때 그의 사상을 압축 정리한 '제소리'를 '새벽'이란 잡지에 실었으나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글이다. '다석일지'에 자신의 생각을 남겼으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대중과 소통하고 대중을 설득하지 못한 사상가로 비판받을 수 있다."

- 다석이 함석헌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무엇이었다 보나?
"오산중학교 시절에 교장으로서 다석은 학생 함석헌이 인생과 종교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도록 이끌었다. 한국정신문화를 바탕으로 기독교를 넘어서 유불도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철학을 형성하는 데서 다석은 함석헌의 선구자가 되었다. 다석과 함석헌은 철저한 민주주의자로서 민주 생활철학을 형성했다. 다석이 유교경전 '대학'의 '親民'(친민)을 '씨알을 어버이 뵙듯'으로 풀이하여 민(民)에게 '씨알'이라는 깊고 높은 이름을 주었다. 함석헌은 다석을 따라서 '씨알'을 민의 이름으로 받아들여 민주생활철학으로서 씨알사상을 정립했다. 다석과 함석헌의 철학을 표현하는 언어와 사상의 틀이 매우 비슷한 데서도 다석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평가하나?
"오늘 한국 기독교는 기독교의 본래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본다. 히브리 기독교 전통에서는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지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열망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보다 물질(돈), 물질적 생산력을 더 존중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국가주의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 정의와 평화로 다스리는 나라다. 그런데 오늘 한국기독교는 하나님보다 돈과 권력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에 빠졌고 국가의 부와 권력을 장악한 지배 세력과 유착되었다.

예수와 바울, 안창호와 이승훈, 유영모와 함석헌은 모두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국가주의를 넘어서 자유롭고 평등하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추구했다. 이들에게서는 기독교의 본래 정신이 힘차게 살아 있었다. 그러나 오늘 한국기독교는 본래의 기독교 정신을 잃어버렸다."

- 다석과 함석헌의 가장 큰 공통점과 차이점은?
"둘의 공통점은 오늘 여기 '나'의 자리에서 동서문명의 만남과 민족의 자각을 구현하려고 했으며 영성적인 민주생활철학으로서 씨알사상을 정립했다. 차이점은 다석은 자신의 속에서 하늘, 하나님을 향해 솟아올라 나아가려 했다면, 함석헌은 역사와 사회 속에서 전체(민족, 인류, 우주)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혁신과 변화를 일으켜 나아가려 했다."

"다석, 인간을 생명과 역사의 주인과 주체로 파악"

- 다석은 자신이 '이승훈(1864-1930)과 함석헌이라는 두 벽 사이에서 살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이 뜻을 풀어 밝히면?
"다석의 사상은 이승훈에서 함석헌으로 이어지는 사상의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되었다. 민족을 깨워 일으키는 안창호와 이승훈의 교육운동, 오산중학교, 3·1운동의 역사 속에서 다석은 살았고 자신의 사상을 형성했다. 또한 이승훈과 유영모의 사상을 이어서 펼친 사람이 함석헌이다. 다석은 이승훈과 함석헌이란 두 인물을 빼고 자신의 삶과 사상을 생각할 수 없었다.

다석은 이승훈과 함석헌이 자신의 삶과 정신을 감싸주고 지켜주는 울타리, 벽으로 여기며, 이승훈과 함석헌을 늘 생각하며 살았다. 내가 20대 후반인 지난 1970년대 후반 종교사상가 변찬린(1934-1985)을 만났을 때 그가 다석에게서 들은 말을 내게 전해주었다. '내가 대륙의 끄트머리에서 두 태양을 보았다. 하나는 스승인 이승훈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라고 할 수 있는 함석헌이다.' 이 말에서 다석이 이승훈과 함석헌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 책에서 '다석은 동양도 서양도 아닌 새로운 사유의 지평, 새로운 정신세계, 제3의 세계를 열었다'고 했는데 다석이 연 제3의 세계는 무엇인지?
"인간을 생명과 역사의 주인과 주체로 파악한 다석은 자연질서와 사회질서에 맞추어 조화롭고 성실하게 사는 삶을 지향했던 동아시아의 자연 생활철학에서 벗어났다. 중국 중심의 사상은 땅과 시간의 질서와 변화, 법칙과 원리에 순응한 사상이다. 주역팔괘, 음양오행, 풍수지리, 사주명리학뿐 아니라 극기복례를 추구한 유교, 무위자연을 추구한 도교도 땅, 자연과 때의 흐름과 법도, 사회의 질서와 법도에 순응하는 사상이다. 이에 반해 다석은 땅에서 하늘로 솟아오르고 지금 여기서 새 나라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철학을 형성했다.

또한 다석의 사상은 서양의 과학주의와 국가주의 사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양의 과학주의 철학은 유물론과 기계론으로 귀결되었고 국가주의철학은 약육강식과 우승열패의 생물학적 생존경쟁원리로 치달았다. 다석의 사상은 서양의 과학주의철학과 국가주의철학을 청산하고 새 문명을 형성하는데 길잡이가 될 수 있다."

- 지난해 12월 한울회 사건이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로부터 진실규명된 것을 축하드린다(관련기사 보기). 한울회 사건이 진실규명 된 이후 지금까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아는데 현재 진행상황은?
"43년 전 이맘때 대전지역에서 한울회 사건이 조작되어 2년 6개월의 실형을 살았고 반국가단체를 구성했다는 낙인을 받고 고통 속에서 살았다. 한울모임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죄목으로 옥고를 치른 아람회, 오송회, 청람회, 금강회 등은 모두 재심을 받고 무죄판결 받은 후 형사보상과 민사배상을 받았다.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은 지난 2010년 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발언은 무죄판결을 받고 반국가단체 구성에 대하여는 그대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법관들이 이런 판결을 내린 까닭은 '진실화해 위원회'의 조사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지난 2022년 12월에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 17명이 한울회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책을 썼다. 고맙게도 우리가 쓴 책의 진실이 공감을 얻어 문화관광부와 출판문화진흥원이 운영하는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으로 지정되었다.

다행스럽게도 2023년 12월 12일에 제2기 진화위에서 한울모임 관련자들이 '수사기관에서 허위자백을 강요받았고, 그 과정에서 불법구금, 폭행, 고문, 가혹행위 및 진술강요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국가는 경찰청, 국군방첩사령부, 대전지방검찰청이 저지른 불법구금, 가혹행위 및 허위자백을 강요한 점 등에 대해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피해와 명예회복을 위해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현재 한울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재심이 허락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 박재순 박사는: 씨알사상연구회 초대회장(함석헌기념사업회), 재단법인 씨알 상임이사, 2008년 세계철학대회 ‘유영모, 함석헌 철학발표회’ 주관, 2009년 한일철학대회 ‘씨ᄋᆞᆯ철학과 공공철학의 대화’주관, 현재 ‘진영논리극복과 상생사회를 위한 일천인선언 모임’ 공동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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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다석 유영모-동서사상을 아우른 창조적 생명철학자’(2008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씨알사상’(2010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2015), ‘애기애타: 안창호의 삶과 사상’(2020), ‘애국가 작사자 도산 안창호’(2020),‘도산철학과 씨알철학’(2021), ‘인성교육의 철학과 방법’(2022 세종우수학술도서), ‘한울회 사건의 진실’(2023 세종우수교양도서)


큰 사상가 다석 유영모 이야기

박재순 (지은이), 나눔사(2023)


태그:#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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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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