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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잊고 지낸다. 자신과 관련 없다는 착각 아래 소중한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기후 위기가 그렇다. 기후 위기는 이미 여러 곳에서 재앙이 됐다. 그럼에도 눈앞에 놓인 이해에 급급한 나머지 무관심하다. 22대 총선이 한창이지만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엉성한 공천에 이어 이제는 상대를 비난하는 데 당력을 쏟고 있다. 집권여당도 제1야당도 선심성 개발 공약만 쏟아낼 뿐 기후 위기를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농부는 굶어죽어도 씨앗은 먹지 않는다.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생존과 직결된 기후 위기는 최우선 현안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지구 생태계 붕괴는 시간문제다.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는 매년 상승하고, 이로 인한 부작용은 전 지구적이다. 태풍과 홍수, 가뭄, 무더위, 혹한, 폭설 등 온갖 기상재해가 매년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1.5도 마지노선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기후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2050 지구는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정치는 기후 위기에서 비켜서 있다.

"2023년은 모든 기후 지표를 경신한 해다. 파리 협정에서 정한 1.5도 하한선에 근접했다." 셀레스테 사울로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한 해 동안 모든 기후변화 지표는 기록을 갈아치웠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육지와 바다, 빙하 등 전 지구에서 기후변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최근 WMO가 공개한 '2023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는 우려스럽다. 지난해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45도(±0.12) 상승했다. 2023년은 역사상 가장 따뜻한 해로 기록됐고, 지구촌은 심각한 고온 피해를 입었다. 미국 서부와 유럽에 닥친 열풍과 산불은 그 결과다.

해수면 온도와 해양 열 역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뜨거운 바다는 해양 생태계를 파괴한다. 우리 앞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진지 오래고, 울릉도 오징어 어획량도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바다 폭염 때문에 극지방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았다. 특히 남극 해빙 면적은 지난해 2월, 위성 시대(1979년) 사상 최저 수준에 도달했다. 북극 해빙과 그린란드 빙상(Ice sheet) 면적도 큰 폭으로 손실됐다. 얼마 전 외신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은 극지방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휴식처를 찾지 못한 북극곰이 작은 얼음덩어리에서 불안하게 잠을 청하는 모습이다.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은 지구를 달구는 주요 요인이다. WMO에 따르면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주요 온실가스 지표는 이전보다 악화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 관측 농도는 2022년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고, 2023년에도 계속해서 증가했다. 보고서는 "이산화탄소는 산업화 이전 대비 50% 높은 수준이며, 앞으로 몇 년간 기온 상승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남부 유럽과 북아프리카 폭염으로 불탔다. 이탈리아는 48.2도까지 치솟았고, 튀니지(49도)와 모로코(50.4도)도 역대 최고였다. 캐나다 산불 피해 면적은 평년 7배를 넘었고, 하와이 산불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산불로 기록됐다.

동물이 살 수 없는 지구에서 인간은 온전할까? 위기는 구체적이다. 심각한 식량 불안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식량 위기에 처한 사람은 3억3300만 명에 달했다.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기후변화로 가장 취약한 분야는 농업이다. 가까운 미래, 가난한 나라에서는 필수 식량조차 얻지 못할 우려가 높다. 여러 경험을 통해 확인했듯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혹독하다. 기후 위기를 방관한다면 사회적 약자를 방치하는 것이다.

유엔 재해 위험 감소 사무국(UNDRR)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이 2.5℃ 오르면 슈퍼 태풍은 지금보다 2배 더 발생한다. 이 경우 극심한 가뭄을 겪는 사람은 80년 이내 두 배 증가한다. 또 기온이 1℃ 증가할 때마다 대홍수 빈도도 늘어난다. 지난해 7월, 우리나라는 극심한 물난리를 겪었다. 기록적인 폭우로 충남 청양 570㎜, 공주 511㎜, 충북 청주 474㎜, 전북 익산 500㎜ 강수량을 기록했다. 청주 오송 지하차도에서는 급격히 불어난 빗물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기후 위기를 외면하고 방치한다면 지속가능한 삶은 기대하기 어렵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미래세대를 걱정해야 한다. 오늘부터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공항 짓고, 재개발 완화하고, 도로를 내겠다는 개발공약만 넘쳐난다. 뭣이 중한지를 망각한 22대 총선이다. 정치가 문제라면 유권자들이라도 변해야 한다. 미래세대가 걱정되는가. 그렇다면 기후 위기를 고민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자.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후보를 찾아내는 게 그나마 대안이다. 싸구려 연고주의와 저급한 진영논리에만 머문다면 지구 멸망에 가담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이 글을 쓴 임병식씨는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태그:#기후위기, #기후현황보고서, #15도, #화석연료, #지속가능한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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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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