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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 아들이 입학했다(자료사진).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 아들이 입학했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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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은 유독 추웠다. 초봄이라고는 하지만 겨울이 쉬이 물러나지 않은 나날들. 가뜩이나 추운 날.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었고, 더불어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입학을 하게 되면서, 우리는 누구보다 더 추운 한 달을 보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입학한 아들 

첫 초등학교 입학식날, 나는 같은 학교지만 입학식에 안 갔다. 정확히는 못 갔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첫날, 나도 4학년 아이들과 첫날을 맞이했기에 쉽사리 자리를 비울 수 없었고, 그런 나 대신 어머님이 아들의 입학식에 함께 해 주셨다. 혹여나 첫 입학식날 엄마의 부재로 아들이 실망할까 봐 아침부터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OO아, 엄마가 너무 가고 싶은데, 형누나들 돌봐야 해서 갈 수가 없어. 엄마도 열심히 형누나들 가르칠 테니 OO이도 씩씩하게 입학식 잘할 수 있지? 엄마는 4층에서 2층에 있는 OO이 응원할게. 우리 잘해보자." 

미안함이 서린, 진심이 담긴 내 말에 아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날이라 긴장된 모습의 반 아이들을 보며, 너른 강당에서 긴장된 모습으로 서있을 아이를 떠올리며 그날의 수업을 마쳤다. 수업 후 어머님이 보내주신 입가에 짜장면을 잔뜩 묻히고 먹는 아들의 사진을 보며 나는 그제야 휴우,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첫 학부모 공개수업날, 나는 같은 학교라서 공개수업에 가지 못했다. 전 학년 동시에 시작되는 수업이라 달리 방도가 없었다. 나는 뒤에 늘어선 학부모님들의 애정 어린 눈빛들에 내 눈빛을 겹쳐보며 그날의 수업을 마무리했다. 

쉬는 시간에 헐레벌떡 뛰어내려 가니 이미 수업은 마친 후였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는 어머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열린 교실 뒷문 틈새를 빼꼼히 들여다보니 아들이 친구와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애처로이 바라보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들은 같은 학교에 있는 엄마와 입학식도, 공개수업도 함께 하지 못한 채 입학적응기간인 3주를 작은 몸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아직도 생생히 떠오르는 그날, 입학 첫 주. 돌봄 교실을 미처 신청하지 못한 탓에 아이는 4학년 연구실에 3주간 머무르기로 했다. 1시 40분에 학교로 오는 영어학원차를 타기 전까지만. 그 이후론 태권도 학원까지 이어지니 그 시간만 잘 버티면 되었다. 아침 등교 때마다 초등학교 스케줄이 익숙지 않은 아이에게 '수업 마치면 꼭 4층 연구실로!'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하고선 2층 1학년 교실로 들여보내고 헤어진 그날. 

마침 점심시간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1층 급식실로 향하던 중, 1층에서 서성이는 낯익은 얼굴의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내 눈에는 동공지진이 일어났다. '쟤가 왜 여기 있지? 4층 연구실로 가야 하는데...' 

속으로 의문을 품은 찰나, "엄마 엄마~"하며 1층 현관에 까랑까랑하게 울려 퍼지는 아들의 목소리. 엄마가 반가워 만면에 미소 띤 아들에게, 당황한 나는 미간을 좁히며 눈짓으로 백 마디를 던졌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서둘러 1층 급식실로 향했다. 

그 사이 아이가 없어지면 어쩌나 속으로 안달복달하며 출석번호 맨 마지막 아이가 밥을 받고 앉자마자 아이가 있던 1층 현관으로 달음박질해 갔다. 그 새 아이는 온데간데없었다. 헉헉 거리며 4층 연구실로 올라가니 다행히 아들은 거기서 동료선생님이 건네준 초코바를 오물거리며 먹고 있었다. 엄마의 등장에 좋아하며 웃던 아들은 아까 내가 모른 척하고 지나간 것에 딱히 의문을 표하지도 않았다. 

나는 아까의 일이 떠올라 아들에게 눈을 맞추고선 그 언젠가 회자됐던 드라마 명대사를 시전 했다.

 "OO아, 여기선 엄마는 선생님이고 너는 학생이야. 그러니까 학교에서 마주치면 엄마라고 부르면 안 되고, 선생님이라고 해야 해." 

나의 간곡한 당부에 아들은 더 묻지도 않고 '알았어'라고 쿨하게 대답한다. 그런 아들을 뒤로하고 다시 원래의 내 자리, 급식실로 향한다. 아까의 '엄마소동'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 26개 눈동자는 그날의 특식 허니버터치킨에 빠져있었다. 

나는 거친 숨을 고르고 자리에 앉았다. 급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연구실로 가보니 아이는 이미 영어학원 버스를 타러 간 뒤였고, 책상 위에는 아이가 남긴 금색 초코바 봉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초코바 봉지를 멍하니 바라보며 이곳에서 외로이 시간을 견뎠을 아들의 모습을 가만히 떠올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점심 급식시간. 2층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4교시가 끝나고 하교하는 아들과 두 번째 조우를 한다. 살짝 긴장하는 나를 향해 이번엔 세상 심쿵한 미소를 던지고 제 갈길을 가는 아들. 나를 향해 던지던 그 의미심장한 눈웃음에 나는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밥을 먹으면서도 방금 전 본 아이의 눈웃음이 머릿속에서 아프게 맴돌아 평소 양의 반도 먹질 못하고 남겼다. 

점심급식이 끝나고 축 처진 어깨로 교실로 들어왔는데 반 아이들의 일기장과 학습지로 너저분한 책상 위에 진분홍색 색종이 꽃이 놓여 있었다. 이름도 글도 없이 달랑 꽃 한 송이. 나는 우리 반 수줍이의 깜찍한 사랑고백이라 치부하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컴퓨터 책상 유리안에 고이 넣어두었다. 

색종이 꽃의 정체 
 
아들이 점심시간에 놓고간 색종이 꽃
 아들이 점심시간에 놓고간 색종이 꽃
ⓒ 이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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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태권도 차에서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내리는 아들은 내게 "엄마 오늘 꽃 봤어?" 라며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나는 짐짓 당황했지만 이내 아까 꽃을 준 이의 정체가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딱 봐도 OO이가 준 건지 한눈에 알아봤지. 엄마 오늘 6교시 수업하느라 힘들었는데 그 꽃보고 힘이 솟았어, 고마워 아들."

나의 말에 아들의 무거운 가방에 축 처져있던 어깨가 일순 솟아오른다. 

아들은 첫 초등학교 한 달을, 나는 신입생 학부모이자 4학년 담임으로서의 한 달을 보내며 우리는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혹독한 겨울나기를 해왔다. 엄마가 같이 있어주지 못해도, 자신을 위해 엄마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일까?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는 상황에도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조용히 꽃까지 놓고 간 가슴 따뜻한 아들. 하교 스케줄만 가르쳤지 마음을 쓰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아들은 그 이상의 것들을 해나가고 있었다. 공개수업 후 잠시 뵌 아이 담임선생님의 말. 부모의 우려가 무색할 만큼,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잘 해내고 있다는 말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내가 연구실의 초코바를 보며 아들의 애씀을 안 것처럼, 아들도 꽃을 놓으러 간 교실에서 정신없는 내 책상의 흔적을 보며 엄마의 애씀을 알아준 것일까? 서로의 애씀을 온몸으로 알아가며 보낸 한 달. 그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졌고 더 애틋해졌다. 

3월의 마지막날을 보내며 문득 박노해 시인의 시에서 본 한 구절이 떠오른다. 

"봄은 많이 떨고 견딘 자에게 먼저 온다." 

우리는 그 어느 해보다 올 3월을 더 떨고 힘든 순간을 견뎌왔으므로, 그 누구보다도 봄이 더 빨리 찾아올 거라 믿는다. 4월엔 고사리손으로 접어 내게 준 진분홍 꽃보다 더 짙은 빛깔의 꽃으로 피어날 너를 기대한다.
 
아이들은 어른 생각보다 더 잘 자란다(자료사진).
 아이들은 어른 생각보다 더 잘 자란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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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초등학교1학년, #입학적응기, #같은학교에다니는엄마와아들, #초등학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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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는 에세이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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