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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는 경기 부천은 봄이면 축제가 시작된다. 원미산의 분홍 꽃천지 진달래가 꽃몽우리를 터뜨리기 시작하면, 연이어 도당산의 벚꽃이 만발하고 느지막 하게는 춘덕산의 복숭아꽃 축제가 열린다. 마치 공기 속에 섬유유연제를 타 놓은 것 마냥 숨 쉴 때마다 콧속으로 샤프란향기가 진동한다. 

'사람이 향기로 기억되는 건 그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라는 어느 가곡 가사가 떠오른다. 

매해 봄이 되면 꽃을 좋아하시는 친정엄마를 모시고 이산 저산 다니면서 내 눈과 귀도 호강을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꽃들이 피어나는데 나는 순간 멈칫하다가 어느 봄날 기억의 향기로 생각의 길을 잃었다. 진달래 향기는 은은한데 엄마의 냄새와 섞여서 눈물 냄새가 난다. 벚꽃이 만발한데, 그 화려한 꽃송이들 사이에서 엄마의 미소 냄새가 난다. 

막상 이별을 마주해서는 하고픈 말도 다 제대로 못 했다. 그냥 현실에 떠밀려 급하게 장례를 치르면서도, 사람들 인사치레 하느라 정작 엄마와 헤어짐의 포옹도 깊게 나누지를 못했다. 나는 그래도 엄마한테 최선을 다했다 자위하며 슬픔보다는 천국 가셨으니 기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그렇게 엄마 없는 1년을 바쁘고 씩씩하게 살아냈는데... 봄꽃과 함께 날아온 기억의 향기로 나는 지금 어지럽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엄마가 더더 그립고 보고 싶다. 요즘 꿈속에서 엄마를 자주 뵙는다. 그런데 미련하게도 여전히 나는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못한다. 엄마는 언제나 그대로인데.
 
벚꽃아래에서 찍은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벚꽃아래에서 찍은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 임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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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을 급하게 찾아보았다. 재작년 봄 엄마와 벚꽃과 사람 수가 같아 보일만큼 빼곡한 인파를 피해 산허리즈음에서 찍은 봄사진에 엄마와 내가 얼굴을 기대고 서 있다. 연보라색 점퍼와 비취색 머플러를 두른 엄마와 분홍진달래꽃이 참 잘 어울린다. 

엄마는 비교적 건강하셔서 착한 치매(비교적 증상이 가벼운)와 친구가 되었지만 요양원 등 기관에 가지 않고 나랑 제일 친한 친구로 지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 다녀오시다가 넘어지시면서 고관절 골절로 수술을 받으셨다. 다들 고령의 수술을 반대했지만 나는 수술을 고집하고 결정했다. 나는 엄마가 충분히 이겨내시리라 믿었었는데 어이없게도 그러시질 못했다. 수술 후 요양병원도 예약해 놓았었는데 준비 없는 이별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장례식장 관계자가 내게 영정사진을 준비했냐고 물었는데,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급하게 핸드폰 사진첩을 뒤져서 찾아낸 사진이 엄마와 나란한 봄꽃사진이었다.

그렇게 그 사진에서 나를 제외하고 엄마만 꺼내 영정사진이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진을 보며 "어머님이 참 고우시네요~"를 조문 인사로 건네곤 했다. 덕분에 한복 갖춰 입고 조금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엄마의 영정사진은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사라졌다. 

봄의 대표 꽃인 벚꽃의 꽃말 중 하나는 삶의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봄꽃들 덕분에 내 삶도 아름답게 향기를 내는 것 같다. 나의 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유일한 한 사람, 엄마. 할 수만 있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엄마와 함께 한 시간이 매 순간 감동이었고 행복했어요. 생의 마지막 부분, 엄마가 병과 죽음 앞에 두렵기도, 외롭기도 했을 텐데 코로나로 인해 온전히 함께 할 수 없어서 저도 많이 마음 아팠어요. 이제 제가 엄마를 제 가슴으로 한번 안아드릴게요. 많이 감사했었고 사랑합니다. 다음 세상에서 만나요.' 

어쩌나? 매해 벚꽃은 그러지 말라 해도 화려하게 피고 질 터인데... 나는 봄꽃 향기와 기억의 향기를 동시에 맡을 준비를 해야 할 듯하다.

태그:#쓰고뱉다, #서꽃,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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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노래를 좋아하는 곧60의 아줌마. 부천에서 행복한만찬이라는 도시락가게를 운영중이다.남은 인생의 부분을 어떻게 하면 잘 살았다고 소문날지를 고민하는 중이며 시니어와 청년이 밥집을 가운데 두고 잘 살 수있는 공동체를 꿈꾸며 준비하고 있다.이왕이면 많은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행복한 미소를 글과 밥상으로 보여주고 싶어 쓰는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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