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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운영 4년차인 내게, 2024년 새해라는 걸 실감하게 만든 건 다름아닌 '확 줄어든' 책 판매량이었다. 작년 같은 달 대비 매출이 약 30% 급감했고, 이런 수치는 4월이 시작된 지금까지도 회복세로 돌아설 생각이 없다.

한 명도 서점에 찾아오지 않을 때도, 책이 단 한 권도 팔리지 않는 날도 부지기수다. 그 많던 독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책이 아니라 영상 콘텐츠로 채워진 플랫폼 세계로 영영 떠나버린 것일까? 출판계 예산이 줄면서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난다는데, 독립서점들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관련 기사: "문 닫는 건 아니겠죠?" 요즘 도서관 심각합니다 https://omn.kr/27w0d ).
 
내가 운영하는 독립서점 책방은 서울 신림동에 위치해 있다.
 내가 운영하는 독립서점 책방은 서울 신림동에 위치해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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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나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어느 3층 건물에 책방 문을 열었다. 당시 오프라인 영업장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타격을 입고 있던 터라, 다들 위축되고 있던 때 새롭게 공간을 얻어 사업을 한다는 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차라리 해외여행에 제약이 있고 4명이 한 자리에 모이지도 못했던 그때가 오히려 책방 운영에는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사람들이 고립된 생활에서 벗어나려 동네 곳곳에서 진행되는 문화행사를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책 읽기를 해도, 평소에는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하는 북한 관련 특강을 해도 책방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 바이러스 습격이 끝나면 독자들이 서점 공간을 더 많이 찾아주려나 했지만, 그건 엄청난 오산이었다. 

창업을 하기 전까지 책방 운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지자체 행사에서 만난 다른 동네책방 사장님의 제안으로 2022년부터 작은 서점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알게 되었다.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한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심야책방>, 서울도서관이 지원하는 <서울형 책방>, 출판도시문화재단에서 운영한 인문학 강의프로그램 <출판도시 인문학당> 등 2년 동안 여러 지원사업을 통해 다양한 독자와 동네사람들을 만났다. 
 
2022년 10월, <서울형책방> 사업 일환으로 진행된 북한 특강. 탈북 연구자 최설 박사의 '장마당 등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사회' 강연
 2022년 10월, <서울형책방> 사업 일환으로 진행된 북한 특강. 탈북 연구자 최설 박사의 '장마당 등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사회' 강연
ⓒ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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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주인들은 대부분 혼자서 일하거나 규모가 작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과 협업해 만들어가는 이 지원사업을 통해 나는 동종업계 사람들이 가지는 애환과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이 든든한 이웃임을 자주 느꼈고, 내가 그런 이웃이 되어주기도 했다.
      
물론 서점 지원사업이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모든 사회현상이 그렇듯 명암이 있는데, 한 예가 일부 지원사업은 국비로 진행되는 만큼 참가비를 받을 수 없다는 것. 사실상 행사를 진행하는 서점 입장에서는 모시고 싶은 작가를 큰 부담 없이 초청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물질적 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지원사업이 모조리 사라졌다 

또한, 무료 행사가 늘어날수록 서점이 직접 기획하는 유료 프로그램들은 오히려 참여율이 떨어지는 역효과도 나타난다. 그럼에도 주변의 '책 읽는 문화' 확대, 작가와 대중이 만남으로써 책이라는 콘텐츠를 한층 깊게 소화할 수 있는 장을 도시 변두리에서도 만들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도서출판 지원정책은 필수적이었다. 특히나, '선진국'을 좋아하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자부심을 갖기를 원하는 한국사회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2023년부터 몇몇 서점 지원사업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올해가 들어서면서 청천벽력 같은 문화체육관광부 측의 도서출판 예산 삭감 결정이 들렸다. 나아가 그나마 간신히 유지되던 지원사업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야 말았다.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이 점유하는 도서 시장의 틈바구니에서, 동네서점이 지속될 수 있는 토대인 '도서정가제'도 문체부가 손 대려 한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그래놓곤 마치 선심 쓰듯이 지역서점의 할인율을 조정할 수 있게 해 주겠단다.

아마 이런 정책을 내놓는 사람들은 도서유통과정에 대한 이해가 1%도 없을 것이다. 동네서점에서 책 한 권당 매겨지는 공급율(원가)을 알고 있다면, 감히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싶다. 통상 동네서점이 들여오는 책 한 권의 원가는 평균적으로 70~75%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정가가 1만 원인 책 한 권을 팔 경우, 많아야 3000원의 이익이 남는다는 얘기다.  

실제 내 주변 책방 운영자들은 이번 도서정가제 유연화 시도(?)를 두고 "선거용 정책이 아니냐", 도서 판매가 할인을 통해 "책방과 독자를 갈라치기 하려는 속셈인 게 아니냐"는 날선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이다.

책 읽는 인구는 줄고 있는데 동네서점은 더 늘어난다는 통계와 보도를 지난해 본 적이 있다(<한겨레> 2023년 1월 31일 자, '독립서점 전국에 815곳 운영 중'). 그러나 올해부터는 동네서점들조차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든다. 책 제작비용의 증가로 인한 책 가격 상승은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슬픈 상황에 놓인 애독가들로서도 책을 사려 선뜻 지갑을 열기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북한학 전문서점인 이 곳에서는 남북관계를 주제로 한 여러 행사가 진행된다. (서점소개 및 신청링크: https://linktr.ee/lnybookshop)
 북한학 전문서점인 이 곳에서는 남북관계를 주제로 한 여러 행사가 진행된다. (서점소개 및 신청링크: https://linktr.ee/lnybookshop)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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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30대 사회초년생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책방을 하다 보니 책이 곧 '부동산'과 연결된 문제란 걸 자주 느낀다. 좁은 집을 책으로 채우는 게 부담이 돼 책을 못 사겠다는 이야기를 듣는 탓이다. 거기에 점점 비싸지는 상가 임대료, 각종 생활요금의 인상... 전국 중소 독립서점들이 책으로만 공간을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서점들 문 닫는 현실 아는지... '생존주기 2년'이란 웃픈 농담 

사실 이미 내 주변에서도 서점의 폐업은 현재진행형이다. 꽤 오랜 시간 동료로 관악구를 지켜왔던 인근 동네서점 두 군데가 올해 초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어디선가에선 '동네서점의 생존 주기는 2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 말하자면, 임대차계약과 명운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며 책방을 시작하지만, 매일같이 여기저기 넘쳐나는 콘텐츠 속에서 활자로, 책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것은 서점지기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문체부의 이번 도서출판 관련 예산 삭감은 너무나도 뼈아프다. 전체 국가예산 중 %로 보면 미미했을, 많지도 않은 이 예산을 굳이 콕 집어 삭감하는 이유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경제가 많은 걸 좌우하는 세상이지만, 돈만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건 아니다. K팝과 OTT 콘텐츠가 문화산업의 전부일 수는 없지 않는가. 

사회를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모두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을 제공하는 토대 만들기는 정부가 도맡아 하는 기간산업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책이 그렇다. 예산을 깎는 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동의 못할 수 있지만, 책으로 접할 수 있는 넓은 세계는 여전히 굳건하다고 믿기에,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기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나영씨는 북한학 전문+일상의 영감충전소 <이나영책방> 주인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서점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nayounggam_/


태그:#동네서점, #동네책방, #독립서점, #도서정가제, #도서출판예산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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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에서 북한학전문서점 이나영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문과 현장을 연결하는 데 기여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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