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이 가까이 왔다지만 며칠간 꽃샘추위가 몸을 움츠리게 한다. 만 보를 걷고 뿌듯한 마음으로 로컬푸드에서 저녁 반찬거리 몇 가지 사서 들고나오다 울퉁불퉁 올라온 보도블록에 걸려 도움닫기 한두 걸음도 없이 막대기가 기울어지듯 넘어졌다. 불이 번쩍한다. 오른쪽 얼굴이 바닥에 쓸리면서 광대뼈를 찧은 모양이다.

순식간에 벌어져 그저 멍했다. 얼굴이 얼얼하고 팔다리까지 아프다.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엎드려 있는데 옆을 지나던 부부가 놀라 뛰어온다. 다친 것은 차치하고 우선 창피했다. 여자분이 부축해 줘 일어나 앉았다. 고마운 부부를 먼저 보내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얼굴을 만지니 피가 묻어 나온다. 오른쪽 무릎도 상처가 많이 났는지 바지에 구멍이 나기 일보 직전이다. 양쪽 어깨와 팔도 욱신거렸다. 반사적으로 팔을 짚으려고 한 덕에 그나마 머리를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매일 다니던 길인데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나이가 드니 별일도 다 있다.

옷을 털고 일어서는데 팔다리가 떨린다. 널브러진 찬거리를 정리해 천천히 걸어 집으로 왔다. 거울을 보니 오른쪽 눈 아래로 두 군데와 입술 위에 피가 뭉쳤다. 어떻게 다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쇄골 부근이랑 정강이부터 무릎까지 멍이 들었고, 생각보다 많이 까져 쓰라렸다. 약을 바르고 누웠다. 남편은 병원에 가 보라고 호들갑이다. 괜찮다고 하니 자기 말은 죽어라 안 듣는다며 화를 낸다.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닌데 병원에 가도 약 바르고 물리 치료나 할 게 뻔했다.

시간이 가니 상처도 서서히 아문다. 까진 무릎과 눈 아래 다친 곳에 딱지가 앉았고 멍도 가셨다. 문제는 입술과 인중 사이에 났던 상처다. 딱지가 떨어지면 괜찮아지려니 했는데 붉은색으로 흉이 져 거울 볼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남편은 자기 말을 안 들어서 그런다며 또 한마디 한다.

지금까지 특별하게 몸이 아파 병원 신세 진 일이 별로 없었다. 오래전 담석증 때문에 쓸개 떼어 낸 것 빼고는 겨울에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 다 맞는 독감 주사도 안 맞고 웬만하면 그냥 견딘다. 내 몸속 균이 스스로 저항력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 커서다. 참다 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비로소 간다. 지금까지 그렇게 지내도 별문제 없었다.

이 오만한 생활에 변수가 생겼다. 지난 일요일 저녁부터 목이 따끔거리더니 새벽에는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프다. 하루 이틀 견디면 괜찮겠거니 여기며 병원 가라는 남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니 화요일이 됐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기침이 계속 나며 목이 잠기고 목소리까지 변했다. 목요일에 순천 SOS 어린이 마을 아이들 만나 한글 공부를 하기로 했는데 안 되겠다 싶어 병원을 찾았다. 혹시 몰라 코로나 검사도 했는데 다행히 아니었다. 주사 맞고 약을 지어 왔다. 한 번도 빼지 않고 먹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한두 번 먹다 나머지는 버리고, 처방전도 받기만 하고 약국에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남편은 자기 말 듣고 진즉 갔으면 빨리 나았을 텐데 병을 키운다며 또 잔소리다. 주사 맞고 약도 첫날보다 더 센 것으로 가져왔는데 차도가 없고 쉴 새 없이 기침이 난다.

20대 후반 편도선이 부어 이비인후과에 간 적이 있다. 주사를 맞고 나오는데 갑자기 정신이 희미해지더니 머릿속이 하얗다.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간호사가 왜 그러냐며 놀란다. 의사 선생님이 달려왔다. 의자에 앉아서 쉬라는 말 외에 다른 설명은 없었으나 주사 쇼크가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한참을 앉아 있다 돌아왔다.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실은 병원 가기가 무섭다. 그 이유가 제일 크다.

큰 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두 번의 일을 겪으며 새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남들은 나이가 들면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가 생겨 좋다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다른 사람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아집을 지혜로 착각하지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 몸이 옛날과 다르다. 넘어지기도 하고, 아픈 데가 한두 군데씩 생기며 자꾸 까먹는다. 전날 자동차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아 지상, 지하 주차장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한 적도 있다. 민첩하고 빈틈없던 내가 아니다. 자연스런 현상이니 인정해야 하지만 그래도 서글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건강 자신하지 말라는 말을 새겨듣고 이제는 병원을 친구로 삼아야 할 것 같다.

태그:#병원, #나이듦, #오만함, #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등학교 수석 교사입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사연을 기사로 쓰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