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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전반기 국회의장 출사표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소야대 국회 지형에서 국회의장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전 국회도서관 조사관)의 글을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환영합니다.[편집자말]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종합지원실 현판식에서 관계자가 제22대 국회의원들이 착용할 300개의 국회의원 배지를 공개하고 있다.
▲ 22대 국회의원 배지 공개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종합지원실 현판식에서 관계자가 제22대 국회의원들이 착용할 300개의 국회의원 배지를 공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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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에서 야권이 압승을 거둔 뒤 차기 국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운영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자천타천 국회의장 후보들도 드러나고 있다. 26일 현재 4명의 출마자가 나왔다. 조정식(6선), 추미애(6선), 정성호(5선), 우원식(5선)이 바로 그들이다. 국회의장은 관례상 원내 1당 출신이 해왔다. 현재 상황에 적용해보면 민주당에서 당내 경선을 거쳐 추천된 후보가 국회 본회의에서 과반 찬성을 받으면 당선된다(무기명 표결).

누가 국회의장이 되느냐에 함께 '국회의장의 중립' 문제도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국회의장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어느새 불가촉의 신화 혹은 진리로 자리잡은 듯하다. 보수언론은 물론이요, 많은 진보 언론이나 진보 진영 인사들도 이런 견해에 찬동한다.

미국 하원의장, 자당 당론을 적극적으로 대변한다
 
2020년 2월 4일(미국 현지시각)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오른쪽)이 하원 회의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아래)의 신년 국정연설이 끝나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던 연설 원고를 찢고 있다.
 2020년 2월 4일(미국 현지시각)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오른쪽)이 하원 회의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아래)의 신년 국정연설이 끝나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던 연설 원고를 찢고 있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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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의 중립'은 그토록 소중한 원칙이고 깨질 수 없는 진리일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미국 의회의 경우를 살펴보자.

미국 하원 의장은 우리 국회와 달리 다수당의 원내대표가 의장이 되며, 당적도 포기하지 않는다. 원내대표가 의장으로 취임한 뒤 새로운 후임 원내대표가 임명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의장이 다수당 원내대표의 지위를 가지고 그 역할을 계속 수행하게 된다.

당연히 다수당인 자당의 당론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게 된다. 한국 국회와 같은 '의장의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낸시 펠로시(Nancy Patricia Pelosi) 전 하원의장은 트럼프 정부 당시 대통령의 시정연설문을 트럼프 앞에서 찢어버릴 정도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분명히 표명했다.

반대로 의장이 자당의 당론을 따르지 않는다면 자당의 '준엄한 반격'을 받게 된다. 실제로 공화당 출신 케빈 매카시 전임 의장은 공화당의 당론을 따르지 않았고, 이로 인해 공화당 강경파의 '반란표'가 발생, 2023년 10월 해임결의안이 통과돼 해임됐다.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 법조항? 우리만 그렇다

현재 대한민국 법률은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국회도 처음부터 국회의장이 당적을 갖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제헌의회 당시 국회의장은 당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회의장 당적 보유 금지는 1960년 5대 국회 시절 잠시 도입됐다가, 6대 국회부터 다시 당적 보유가 허용됐다. 현행과 같이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가 금지된 것은 바로 2002년 3월 이만섭 당시 의장의 주도로 국회법이 개정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세계에서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를 법률로 규정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영국이나 일본의 의장은 당적을 갖지 않고 있지만, 이는 관습 혹은 관행에 의한 것일 뿐 한국처럼 법률 규정이 아니다.

'무조건적인 중립'은 과연 '중립'일까
 
2023년 12월 21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이태원참사 특별법 상정을 요구하고 있다. 김 의장은 양당 원내대표를 불러 중재를 시도했으나 윤재옥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의 거부 의사로 이태원참사 특별법 상정은 끝내 불발됐다.
▲ 이태원참사 특별법 상정 요구하는 민주당  2023년 12월 21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이태원참사 특별법 상정을 요구하고 있다. 김 의장은 양당 원내대표를 불러 중재를 시도했으나 윤재옥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의 거부 의사로 이태원참사 특별법 상정은 끝내 불발됐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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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1대 후반기 국회 몇 장면의 기록들이다.
 
①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이태원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불발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에서 이태원 특별법 상정을 위한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했으나 김진표 국회의장은 여야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이를 거부했다. - 2023.12.21. <동아일보> 보도

② 간호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습적으로 '의사일정 변경 동의 안건을 제출하며 표결을 주장했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가로 막혔다. (중략) 김 의장이 간호법을 상정하지 않은 이유는 국회가 '대통령의 거부권 정국'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 2023.04.14. <메디게이트뉴스> 보도

③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온 양곡관리법 개정안(양곡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연기됐다.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게 하는 내용의 양곡법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민주당 출신인 김진표 국회의장이 "여야가 더 협의하라"며 안건 상정을 3월 본회의로 연기했다. - 2023.02.27. <조선일보> 보도
 
21대 후반기 국회는 다수당인 민주당과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의 '불협화음'이 유난히 심했다. 위에 언급된 법안뿐만 아니라 방송법과 노동법 등도 이와 같은 과정을 겪었다.

21대 전반기 국회에서도 180석의 민주당이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은 '협치'를 이유로 국민의힘과 합의해오라면서 법안 상정을 하지 않았다. 이 법안의 상정은 끝내 무산됐다. 

국회의장은 늘 '여야 합의' '협치'를 내세웠지만, 한편으로는 집권여당의 편을 드는 '정치 행위'로 해석되곤 했다. 이것을 '중립'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직권 상정'을 지렛대로 한 국회의장의 여야 합의 '강요'는 일종의 '직권 남용'이라는 판단이다.

현 국회를 구성한 민의에 따르는 것이 의장의 임무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출사표를 던진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정성호 민주당 의원, 우원식 민주당 의원.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출사표를 던진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정성호 민주당 의원, 우원식 민주당 의원.
ⓒ 이정민/남소연/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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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회의장들이 여야 합의·협치를 강조하고 의장 중재로 타결된 법안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의장의 활동에 힘입어 한국 정치가 진정으로 여야 '합의' 하에 '협치'를 이뤄본 적이 있었을까? 거꾸로 의장의 '합의 강요' 행위가 소수당의 입지만 넓히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 아닐까? 이런 악순환이 심화되면서 우리 정치는 오히려 더욱 극한적인 정쟁이라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었다.

'다수의 지배(rule by many)'로 대표되는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의회 운영의 원칙이란 민의에 의해 구성된 의석수에 의거해 의회가 운영돼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상임위 운영을 비롯해 국회의장의 국회 운영 역시 이런 원칙이 분명하게 지켜져야 한다. 근본적으로 말하면, 미국 의회 방식처럼 의장이 자당(다수당)의 당론에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야권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정권을 견제하라는 뜻과 함께 국회를 야당 주도로 운영해보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국민이 또다시 만들어준 거대 야당 민주당도 국민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다음 선거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은 국회의 변화를 바라고 있다. 새로운 국회를 만들어 국민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회의장상(像)' 역시 필요하다. 국회의장의 '무조건적인 여야 합의 강요' 혹은 '의장의 무조건적인 중립'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며, 국회의 변화와 전진을 바라는 민의에 위해되는 '직무유기'와 같다. 왜곡된 '국회의장 중립 신화'는 이제 깨져야 한다.

태그:#국회의장, #중립, #국회,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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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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