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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 중 상당수인 250명은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나던 길, 꿈을 채 다 피우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이들. 그로부터 무심하게도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사고가 아니었더라면 이들은 어느덧 연 나이 28세의 어엿한 성인이 돼 있었을 테다.

만일 그날 시계가 멈추지 않았다면, 그들은 어떤 어른이 됐을까. 또 당시 참사 소식을 접했던 동갑내기 1997년생들은 이날을 어떻게 기억하며 어른이 됐을까. 충북 옥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옥천에 거주 중인 1997년생 두 사람을 만나 그날을 돌아봤다. 실명을 밝히기 어려워한 두 사람을 위해 기사에서의 이름은 각각 산수유, 민들레로 쓴다.

우리가 기억하는 세월호 참사
 
4월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에서 416 합창단과 시민합창단이 기억합창을 하고 있다.
 4월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에서 416 합창단과 시민합창단이 기억합창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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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민들레·산수유씨는 각각 다른 시점에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했다. 민들레씨는 수업 중 교실에서 공유 모니터의 인터넷 실시간검색어를 통해, 산수유씨는 방과 후 뉴스에서 사고 내용을 알았다. 놀랐지만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에 안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수업 3~4교시쯤 됐을 때예요. 반 친구들과 사고 소식을 접하고는 다들 놀라서 걱정했는데 금방 전원 구조됐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정말 다행이라고 서로 이야기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지나가는 사고 정도로 생각했었죠." (민들레씨)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교 2학년생들이 많이 탄 여객선이 가라앉고 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순식간에 공유 모니터로 시선이 집중됐고, 놀라기도 잠시 전원 구조 소식에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이는 오보였다. 언론을 통해 세월호 승객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던 때, 세월호는 이미 선수만 남긴 채 침몰해가고 있었다. 사고의 심각성을 모두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구출이 어려운 시점이었다.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졌어요. 이후로 세월호 관련 뉴스만 봤던 것 같아요. 직접 아는 피해자는 없지만, 또래 친구들이어서 사고가 더 가깝게 느껴졌어요. 너무나 큰 충격이었죠.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산수유씨)

새로운 소식은 없는지 계속해서 뉴스를 찾아보는 것이 일상이 됐고, 한동안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 역시 세월호 참사였다. 한 명의 생존자라도 더 구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하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해지기까지 정부가 대처하지 못한 것에 분노했다. 이들 역시 제주도로의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기에, 사고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당시 저는 어른들이 참 비겁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먼저 탈출한 선장은 물론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가 무능하다고 느꼈죠. 세월호 참사 이후 한동안 멍한 상태가 지속됐던 것 같아요." (민들레씨)

학교와 친구가 세상이던 시절

제주도로 계획돼 있던 수학여행은 취소됐지만, 학교생활은 변함없이 계속됐다. 슬픔을 뒤로한 채 18세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두 사람은 10년 전 고등학생이던 자신의 모습과 당시 꿈꿨던 미래를 이야기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 없는 시기,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따라 하루하루 살아가던 두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돌아볼 때 그보다 더 소중했던 건 친구들과의 우정이라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 역시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하며 학교생활을 했을 테다.

세월호 참사 이후 민들레씨는 '비겁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고 말한다. 당시 사고를 통해 마주한 어른의 모습이 비겁하게 비춰졌다는 것.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적어도 나쁜 어른은 되지 말자'던 다짐은 많은 어른들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여전히 아프게 다가온다.

분노에서 시작된 촛불 집회

2년 후 2016년, 두 사람은 스무 살이 됐다. 그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있던 때이기도 했다. 수십만 명의 시민이 모인 광화문광장에는 두 사람 역시 있었다. 두 사람은 손 팻말과 촛불을 든 채 어두운 밤을 밝혔다. 이때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이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 가본 집회 현장이었어요. 당시 세월호 참사 유가족 한 분이 연설하시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어요.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분의 심정이 가까이 느껴졌죠." (민들레씨)

작은 소리가 모여 하나의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현장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던 것과는 또 달랐다.

"촛불집회를 통해 정치·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잖아요. 거기에 목소리를 보탰다는 데에서 뿌듯한 마음이 있었죠. 지금 와 생각해봐도 그때 현장에 가길 잘했다 싶어요." (산수유씨)

'가만히 있으라'던 세월호 안내방송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을 보면서, 당시 학생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테다. 촛불집회는 그 다짐을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우리가 경험한 기쁨과 슬픔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4월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주기 시민 기억식'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 됩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4월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주기 시민 기억식'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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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고 두 사람이 성인으로서 사회에 자리잡는 동안, 여러 상황과 그에 따른 다양한 감정도 경험했다.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살아있기에, 살아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민들레씨는 수능이 끝난 뒤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온 일을 떠올렸다. 더없이 즐겁기만 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기쁨과 슬픔이 섞인 기억이다. 보험을 들지 않고 차를 빌렸다가 사고가 나 인당 50만 원씩 배상하고, 이후 또 예상치 못한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산수유씨는 첫 월급으로 친한 친구에게 생일 선물하던 날의 기쁨, 10년 이상 키우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던 날의 슬픔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제 두 사람은 그간의 경험과 쌓아온 생각을 따라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다. 제과·제빵에 관심이 많던 민들레씨는 옥천의 한 카페에서 일하며 적성을 살리고 있고 산수유씨는 타지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 옥천으로 돌아와 직장생활을 한 지 어느덧 1년 차다.

"정말 제가 어른이 된 건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10년 전, 학생이던 때와 비교해서 제가 많이 달라졌는지 실감이 잘 나지 않죠." (민들레씨)

"'적당한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해요.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그런 어른이 돼야겠다는 생각." (산수유씨)
 
좀 더 귀 기울여주는 사회가 되길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두 사람. 상처의 흔적은 이들에게도 남아있었다. 사회의 아픔에 맞서 싸우겠다는 다짐을 하다가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쉽사리 무기력해지는 날도 많다. 이들은 자신이 사회에 바라는 것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스무 살 때 촛불집회를 통해 작은 목소리가 모여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큰 소리를 내도 묵살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해요. 사람들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여 주는 사회가 되길 바라죠."

사람들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여 주는 사회가 되는 것. 옥천에서 만난 1997년생 두 사람의 바람이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바람이지 않을까.

월간옥이네 통권 82호(2024년 4월호)
글 한수진 사진 이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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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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