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사회

포토뉴스

방호복에 깊게 패인 이마와 마스크 마찰에 붉게 일어난 두 뺨. 어느덧 코로나19 최일선에 선 의료진들을 상징하는 모습이 됐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2개월이 넘은 지난 24일, <오마이뉴스>는 분당서울대병원 내 의료진들의 현장을 찾았다. 시작은 방역 최일선인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이다.[편집자말]
 
분당서울대병원코로나19 환자 돌보는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39병동) 간호사 ⓒ 이희훈

오전 8시께 임민주 간호사는 음압병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해야 할 일들을 차트에 빼곡히 작성했다. 레벨D 방호복(아래 방호복)이 부족해서 한 번 입을 때 최대한 많은 일을 하고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화장실 가는 것도 필수다. 이 옷을 입는 동안 물 마시는 것을 포함한 모든 생리현상이 제한된다. 사전 준비를 마친 후에야 착·탈의실에 들어간다. 온 몸을 감싸는 방호복을 입고, 무게가 5킬로에 버금간다는 산소 필터까지 허리에 매달고 나면, 비로소 음압병실로 들어갈 수 있다.

한번 입으면, 최대한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분당서울대병원 39감염관리병동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을 돌보는 임민주 간호사 (위 왼쪽,) 최온유 간호사 (위 오른쪽), 전하은 간호사(아래 왼쪽), 한단비 간호사(아래 오른쪽)가 산업용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있는 모습. ⓒ 이희훈
 
음압병실에 들어가면 외부와의 대화는 어려워진다. 병동에 투입되는 동안, 임 간호사는 본인이 작성한 차트에 따라 묵묵히 환자를 돌본다. 이때 39병동 내 모든 환자의 상황을 확인하고 조정하는 것은 '스테이션(상황실)'의 역할이다. 의료진들은 이곳을 '뇌'에 비유한다. 이곳 지시에 따라 모든 의료진들이 손발이 되어 움직이기 때문이다.

모든 의료진들은 현장과 스테이션 업무를 교대로 맡는다. 스테이션 내부는 음압병실과 철저히 구분돼 있어서 방호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 이곳의 1/3은 큰 유리창으로 돼있다. 음압병실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다. 창밖에서는 전신 방호복을 입고 복도를 오가는 의료진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서로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대개 몸짓을 쓰거나, 벽에 가까이 붙어서 대화를 유추한다.
 
분당서울대병원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39병동) 음압병실 내 간호사와 스테이션의 간호사가 유리벽 너머 인터폰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분당서울대병원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39병동) 간호사들이 음압병동 내에서 환자에게서 채취한 검체를 운반하고 있다. ⓒ 이희훈
      
분당서울대병원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39병동) 의료진들이 음압병동 내 환자에게서 채취한 검체를 스테이션으로 전달하기 위해 격리함으로 옮기고 있다. ⓒ 이희훈
  
오전 10시 반이 훌쩍 넘은 시간. 들어간 지 꼬박 2시간 반이 지난 후에야 임 간호사가 병실에서 나왔다. 방호복을 입는 최대 시간은 2시간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세 시간까지 길어지기도 한다.

이날 임 간호사는 총 3개의 병실을 들어갔다. 그 가운데 고령의 치매 환자도 있었다. 거동조차 어려운 환자다 보니 그의 식사 보조도 임 간호사의 몫이었다.

임 간호사는 병실을 나온 후 환자의 검체를 스테이션에 전달했다. 이후 곧장 탈의실로 들어갔다. 먼저 허리춤에 찬 산소 필터를 빼고, 머리에 쓴 보호구(후드)를 벗었다. 입었던 방호복은 모두 일회용품이지만 보호구는 예외다. 임 간호사는 탈의 도중 보호구만 따로 깨끗하게 닦아서 다른 곳에 내려놨다. 이렇게 쌓인 보호구는 소독실로 내려 보내진 후 다시 재활용될 예정이다. 방역 물품이 부족해서 생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탈의실 문 앞에도 '[긴급] 보호복 물량 부족'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5킬로 추를 허리에 매달고 일하는 느낌"

"보호구를 머리에 장착하고 일을 하다보면 정말 숨이 막혀요. 그렇게 몇 시간 근무하다보면 힘도 많이 들고요. 오늘은 환자분 식사보조도 해야 해서 병동에 머물렀던 시간이 좀 길었어요. 병동에서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시계를 올려다보고 있더라고요. 언제 나갈 수 있나 싶었나봐요(웃음)."

오전 10시 50분께 현장 업무를 마치고 스테이션으로 돌아온 임 간호사를 만났다. 오랜 보호구 착용으로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얼굴에는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평소보다 오랜 시간 방호복을 입느라 피곤할 법 한데도 그는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임 간호사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39병동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이 병동에서는 메르스 의심 환자들을 받았다, 하지만 이젠 코로나19 중증 확진자들을 치료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면서 "2시간 근무, 1시간 휴식을 반복하면서 의료진들이 계속 병실을 지킨다"고 했다. 그는 "중증의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이곳은 상시 대비 상태다, 의료진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분당서울대병원 함신영 감염내과 전공의가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39병동)에서 환자 진료를 마치고 음압 탈의실에서 방호복을 벗고 손소독제를 사용하고 있다. ⓒ 이희훈
  
분당서울대병원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39병동)에서 사용한 방호복은 1회 사용후 폐기해야 하지만 보호구는 소독해 다시 사용해야한다. ⓒ 이희훈
 
분당서울대병원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39병동) 음압병실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교대 시간이 되어 방호복을 탈의하고 있다. 먼저 방호복 위에 착용한 산소 필터를 분리하고 있다. ⓒ 이희훈
  
오전 11시가 되자 임 간호사에 이어 다른 의료진들도 하나둘 씩 스테이션으로 복귀했다. 최온유 간호사, 그리고 함신영 감염내과 전공의다. 함신영 전공의의 이마와 양 볼에는 방호복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1시간 30분가량 병동에 머물렀다던 최 간호사는 "보호복을 입고 나오면 한동안 머리가 어지럽다"고 했다.

"보호복을 입고 나오면 머리가 띵한 느낌이 지속돼요. 방역 마스크보다 강도 높은 걸 온 몸에 쓰고서 몇 시간 동안 환자를 돌보는 거니까요. 심지어 이 옷에 방수 기능도 있다보니까 일하다보면 옷 속에 땀이 그대로 고이는 느낌이 들어요. 더운 사우나에서 강도 높은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최 간호사는 지난 1월 말 음압병동에 투입됐다. 본래 근무지는 중환자실이었다. 최 간호사는 "방호복에 달려있는 산소 필터의 무게가 상당한데 이걸 매달고 1~2시간가량 계속 서 있어야 한다, 그래서 허리 통증이 상당하다"면서 "중환자실도 업무 강도가 높은 편에 속하지만 이곳이 체력적으로 훨씬 힘들다"고 했다.

가족 못 본 지 3개월... 일상을 바라다
 
분당서울대병원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39병동) 간호사들이 환자 검체를 확인 하고 있다. ⓒ 이희훈
     
분당서울대병원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39병동)에 위치한 스테이션에는 병실 및 병동 내 모든 CCTV화면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모든 상황을 확인 할 수 있다. ⓒ 이희훈
  
분당서울대병원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39병동) 내 음압병실로 들어가기 위해 한 전문의가 레벨 D 방호복을 착용하고 있다. 방호복을 모두 착용하는데 15분 정도가 소요 됐다. 의료진은 부족한 보호장비 물량을 걱정했다. ⓒ 이희훈
 
함신영 전공의는 이번 코로나19가 의사로서 마주하는 첫 감염병 현장이다. 2015년 메르스 때는 인턴이었기 때문에 현장을 한 발 뒤에서 경험했다고 한다. 함 전공의는 "이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현장 의료진들 체력이 고갈 될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다. 이어 "근무하다보면 (감염에 대한) 위기감을 느낄 때가 정말 많다"고 전했다. 본인이 감염될 경우 병원과 환자들에게 끼칠 영향이 매우 크다.

함 전공의는 "제 지인들도(의료진) 지금 대구에 파견을 가 있는데, 지금도 매일같이 힘들게 근무하는 것을 전해 듣고 있다"면서 "물론 저희도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같이 일하는 동기들, 여러 지역에서 싸우는 동료 의료진들을 보면서 함께 이 시기를 잘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와 만난 세 명의 의료진 모두 시종일관 웃는 모습을 보였다. 힘들다 하면서도 끝에는 "그래도 잘 버텨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코로나19가 진정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묻자, 모두 "본래의 일상"을 꼽았다. 최 간호사는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더했다. 아래는 그의 대답이다.
 
"집에 아기가 있는 간호사 선생님들은 감염 걱정 때문에 아이들과 한동안 떨어져서 지낸다고 했어요. 이렇게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저도 코로나19가 터진 뒤로 3개월 넘게 집에 못 내려가고 있어요. 코로나19가 끝나면... 가장 먼저 엄마, 아빠를 만나고 싶어요."
댓글1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