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막막해"...집 뜯어 고철로 판 사람들

강남구 개포동 1266번지. '타워팰리스 앞 판자촌'으로 알려진 이 곳 포이동 판자촌에 화마가 덥친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판자촌 주민과 이들을 돕기 위해 모인 학생, 시민단체 회원 50여 명은 오늘 화마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화재현장의 잿더미 위에서 분주히 몸을 움직였습니다.

[상황음]

남은 고철이라도 팔아 생계에 보탤 생각으로 화재현장 수습에 나선 겁니다.

힘겹게 꾸려오던 살림을 한순간에 태워버린 70여 가구 200여 명의 주민들은 자신의 집터를 서성이며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르는 물건을 찾아 조심스럽게 잔해를 들췄습니다.

[주민] 여기가 우리 집. 우리 옷하고 그렇거든. 그런데 포크레인 가지고 다 뒤집어서 이렇게 됐다. 찾지도 못해. 뒤지면서 찾을 것이 있으면 찾아가야지.

얼마전까지 삶의 터전이었던 집의 외벽을 뜯어 고철로 내다팔아야하는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주민] 이루 말할 수도 업죠. 참담하잖아요. 두말하면 잔소리고. 소방당국에서 진짜 불을 잘못꺼 준 죄로. 불진화 잘했으면 불껐을텐데, 그걸 안해서 이렇게 된 것. 두말할 것도 없고 나쁜 놈들이야, 정말.

30년이 넘는 세월을 이 곳에서 힘겹게 살아왔지만 이들에게 씌워진 것은 '불법토지점유'라는 멍에였습니다.

주민들은 수차례 민원을 내며 주거대책을 요구했지만,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실효성 없는 대책을 내놓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박철순 / 주민, 포이동 대책위원장] 반지하에서 비만 오면 물차는 곳으로 가라고? 우리에게 어떻게, 감히. / 없는 사람은 사람도 아닌가? 그래놓고 우리나라 국민들 눈가리고 귀를 막고 거짓말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집, 임대아파트 주겠다는데 떼쓰고 있다', '투기할려고 한다' 뉘앙스 풍겨. 정말 우리를 한번 더 죽이고 있다.

그리고 지난 13일에 벌어진 화재 사건. 소방당국의 부실한 대처로 괜찮을 줄 알았던 집 70여 채가 한순간에 불타버리자, 주민들은 '일부로 불을 몰아 판자촌을 모두 태워버린 것이 아니냐'며 절규했습니다.

[박철순 / 주민, 포이동266번지 사수대책위원장] 얼마나 늦장부리며 안오는지. 호스깔고 물없다고 하고. 물없이 오는 소방차가 어디있나. 그게 우리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일부로 불태우려고 안한 것. 소방차 70대 오면 뭐하나 호스는 몇개 없고 길이 막혔다고? / 주민들 열번을 죽이고 있다. 몇번을 또 죽이고 있다. 시장이라는 사람이, 서울시장이! 실의에 빠졌으면 등이라도 만져줘야하는 것 아닌가.

화재현장 수습 작업이 한창이던 오후, 예고된 장맛비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은 이번 장마철을 온전히 화재 현장 한켠에 마련된 천막과 임시거처에서 보내야 합니다.

점심도 마다한 채, 홀로 잿더미 속에 남아있던 한 주민은 빗방울을 보자마자 아이들 걱정에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주민] 하나도 남은 게 없이 다 탔네. 애들하고 어떻게 살까 막막하다, 지금. 뭐라고 지금 저거 하고 있으니.

여섯 식구가 모두 임시거처에서 장마철을 나야한다는 한 주민은 언제까지 이 생활이 계속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주민] 그게 제일 걱정이다. 장마져서 어떻게 할거냐고. 그런데 구청, 시청은 들은 척도 안하고 있고, 미치겠다. 우리 식구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많다. 75가구 중에 우리 식구가 6명. 여섯식구가 살아 나가려면...큰 걱정이다.

몸 뉘일 공간마저 화마에 빼앗긴 '타워팰리스 앞 판자촌' 사람들. 그들은 이제 그 어느 해보다도 힘겨운 장마철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 오대양입니다.

| 2011.06.2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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