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새해가 시작되자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오오토모 가츠히로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이 모두 같은 해에 공개되는, 사상 유례가 없는 경험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연출은 95년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이후 9년만이며,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은 <아키라> 이후 단독 연출 작품은 무려 16년만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3년만에 신작이 공개된다.

이처럼 3인의 신작이 같은 해에 개봉된다는 것은 작업기간과 각기 다른 연출 스타일, 세계관 등을 고려한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며 앞으로도 좀처럼 있기 힘든, 하나의 사건이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그 중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이노센스>는 3월 6일 토호 계열을 통해 일본 306개관에서 일제히 공개되어 박스오피스 10위권 내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이제 팬들의 시선은 오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스팀 보이>로 옮겨지고 있다.

▲ <스팀 보이>의 포스터

'저패니메이션'의 출발점이 된 <아키라> 이후 16년이 흐른 2004년 봄. 인터넷과 극장을 통해 일부 예고편과 특전 영상이 공개된 <스팀 보이>는 오랜 기다림만큼이나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오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과 9년간의 제작기간, 24억엔에 달하는 막대한 제작비, 여기에 18만장에 달하는 작화수와 새롭게 도입된 컴퓨터 그래픽의 활용 등 그야말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최고의 수준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지난 3월 23일 오후. 세계 최대의 광고 대행사이자 <스팀 보이>의 해외 세일즈를 담당하고 있는 덴츠의 시사실에서 한국내 일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스팀 보이> 사전 시사회가 열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 여름 최대의 화제작이라 불리기에 전혀 손색없을 정도. 줄거리는 몇 줄로 정리될 만큼 간단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과 빼어난 영상미, 압도적인 스케일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 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절묘한 음악과 사운드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역시 오오토모 가츠히로!"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

특히, <아키라> 초반 펼쳐지는 바이크 신을 업그레이드한 증기 열차 추격 신과 마지막 20분간 런던 시내에서 펼쳐지는, 숨막히는 액션 시퀀스는 오직 오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애니메이션에서만 볼 수 있는,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영상뿐만 아니라 독특한 매카닉도 큰 볼거리. 주인공 레이가 타고 다니는 증기 오토바이와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거대한 로봇 팔, 금속으로 중무장한 병사들과 탱크 등 증기 에너지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영화 내내 독특한 메카닉이 쉴새없이 등장한다.

당시 공개된 영상이 비록, 완성본이 아닌 125분의 가편집본이긴 하지만 오오토모 가츠히로가 얼마나 뛰어난 크리에이터인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스팀 보이>는 몇몇 장면의 보강과 후반 작업을 거쳐 7월 17일(일본기 준) 토호 계열 극장을 통해 일제히 개봉될 예정이다. 아직 개봉 시점이 많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많은 팬들의 기대감은 남다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지난 3월 말 폐막된 제3회 도쿄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스팀 보이>에 등장하는 실제 크기의 캐릭터 모형과 6분짜리 예고편을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팀 보이> 제작위원회에서도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www.steamboy.net)를 통해 동영상 예고편과 각종 이벤트, 사전 예매 특전 등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의 관심도 상당하다. 인터넷 애니메이션 동호회와 블로그를 통해 예고편과 메인 비주얼, 포스터 등이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일본 내 개봉 소식을 발빠르게 전하고 있을 정도.

여기서 필자가 느낀 <스팀 보이>와 <이노센스>의 차이점을 간단히 이야기해보고 싶다.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겠지만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은 바로 컴퓨터 그래픽의 활용에 있다.

컴퓨터 그래픽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시대의 흐름상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노센스>가 디지털 기술을 전면에 내세워 '일본식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자신감을 피력했다면 <스팀 보이>는 디지털 기술보다는 전통적인 셀 제작방식을 고집했다. 여기에 새로운 기법의 디지털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결과물이 탄생한 것이다.

즉, <스팀 보이> 역시 역동적인 장면과 대규모 액션 장면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이 빈번하게 사용되기는 하지만 관객들은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으로 인지하게 된다. 바꿔 말하자면 두 작품 모두 엇비슷한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서로 전혀 다른 결과물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각각의 장점이 있기에 어느 방식이 우월하다고는 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스팀 보이>는 이미 공개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이노센스>와 시로우 마사무네의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디지털 영화 <애플시드> 극장판, 전세계가 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함께 최대의 화제작이 될 것이라는데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오오토모 가츠히로'라는, 걸출한 애니메이션 감독의 신작이기 때문에.

<스팀 보이>의 또 다른 정보

<스팀 보이>의 국내 개봉 시기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지난 1월 확정, 발표된 일본대중문화 4차 개방에서 애니메이션 부분이 2년간 유예됐기 때문. 국내 수입사인 대원C&A홀딩스에 따르면 온 가족이 보기에 적당한 작품임으로 2004년 겨울 시즌에 개봉되지 않겠는가 하는 조심스런 의견을 제시했다.

미국에서는 소니픽처스가 배급을 담당하며 약 1000여개의 스크린을 통해 상영될 예정. 상영시간은 일본보다 짧은 약 90분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판의 상영시간은 약 120분 가량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스팀 보이>의 줄거리

<스팀 보이>의 무대는 19세기 영국. 증기 기관이 산업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이 시기는 과학의 진보와 인류의 욕망을 구현한 경이의 발명이 시작된 시기. 발명가의 일원으로 태어난 소년 레이는 어느 날 조부 로이드로부터 수수께끼의 금속 볼을 맡게 된다. 그 순간부터 레이는 무서운 음모와 모험에 말려든다.

일명, '스팀볼'라 불리는 금속 볼은 산업의 전방위에 걸쳐 일대 변혁을 가져다줄 경이의 발명품이었던 것. 과연, 인류와 레이에게 이 스팀볼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아니면 파멸을 가져다 줄 것인가?

<스팀 보이> 캐릭터 소개

* 레이
<스팀 보이>의 주인공. 13세의 소년으로 호기심과 모험심이 남다르다. 특히, 아버지 에디와 할아버지 로이드의 피를 이어받아 발명과 기계 등에 대한 관심이 많다. 어머니와 함께 맨체스터의 집에서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향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귀국을 기다리다 인류의 운명을 건 대사건에 휘말린다.

* 스칼렛
14세 소녀로 하라 재단 회장의 손녀딸이다. 제 멋대로인 성격이지만 레이를 만나면서 다소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언제나 무엇인가 재미있는 것을 끊임없는 찾는 당돌한 아가씨.

* 로이드
65세. 레이의 조부. 오랜 세월의 꿈인 스팀 볼의 연구 개발을 위해 미국으로 향하지만 아들인 에디와 연구 방식의 차이로 인해 사고를 당하고 만다. 스팀 볼 개발 중 아들인 에디는 큰 부상을 입게 되지만 결국, 스팀 볼 개발에 성공한다.

* 에디
45세. 레이의 아버지. 증기 에너지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스팀 볼의 개발에 아버지인 로이드와 함께 정진한다. 하지만 큰 사고로 인해 부상을 입고 난폭해 진다.



2004-05-12 18:33ⓒ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애니메이션 전문지 월간 뉴타입 한국판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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