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래된 정원> 포스터

영화 <오래된 정원> 포스터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황석영씨의 소설을 극화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오래된 정원>을 본 적이 있다. 그것도 거대 상업자본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대형영화관에서 말이다. 영화 <오래된 정원>에 등장하는 변절자들의 변명과 같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일터에서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서, 자본의 힘이 적나라하게 구현된 신천지 영화관에서 그것도 지난 80년대 운동권과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를 봐야 했다. 그래서 영화예매를 할 때부터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고리타분한 자격지심과 불편한 신념 때문에.


하여간 원치않은 영화를 보게 되었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순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작사가 'L엔터테인먼트'였기 때문이다. 당시 인천 계양산에 불법과 비리를 일삼으며 골프장 개발을 추진하는 L건설에 대해 날 선 비판을 몇 개월째 해왔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일행이 있어 그럴 수 없었다. 한국영화가 몇몇 거대재벌 손아귀에서 놀아난다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이런 영화까지 자본의 상품이 되었다는데 씁쓸해졌다. 코카콜라와 팝콘도 한몫했다.

 상업자본의 집합체 대형영화관

상업자본의 집합체 대형영화관 ⓒ 이장연

그래서 초점 없는 눈으로 영화를 지켜봤다. 대충 줄거리는 주말 TV 방송에서 소개한 신작영화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역시 기대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이 영화보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어두컴컴한 비좁은 강당에서 보았던 광주민주화항쟁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게 훨씬 나을 듯싶다.


'혼자만 행복하면 미안한 세상'과 그 시대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열심히 그려 내려 애를 쓴 것 같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영화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마음이 편치 않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마음이 편치 않다. ⓒ 이장연

대신 자신과 달리 같이 영화를 본 이들은 후한 평가를 내렸다. 황석영씨의 소설을 읽었다는 한 대학원생은 '원작을 잘 표현했다'고 하고,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하시는 분께서도 '좋았다'고 한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시대를 직접 겪은 사람으로, 그 시절의 추억과 향수가 떠올랐다고 한다.


특히 남자주인공이 전두환 군부에 의해 광주 민중이 처참히 살육당할 때 그 자리에 있었고, 간첩단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도피생활을 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군부의 총칼과 곤봉, 군홧발에 몸부림치던 모습에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던 여공이 신나를 몸에 뿌리고 공장 건물에서 분신자살하는 모습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을 사실적으로 재연했다고 해서, 영화가 주는 시대적 메시지와 감동을 관객들이 제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을까? 당시 시대를 실제 경험하지 못하고 이식화된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관객들에게는 개연성이 없는 단편으로 보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난 뒤 앞자리의 젊은 남녀가 '로맨스인지 시대물인지 구분이 안 간다'라고 말하며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그들에게 영화 대신 차라리 강풀의 <26년>이란 연재만화를 권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졸지 않고 영화를 봐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두 개 있다. 시대에 걸맞지 않게 어색한 옷차림과 분위기를 한 남녀의 몸짓이 아니다. 남자주인공이 도피생활을 하기 전, 5·18 광주에서 전두환 군부의 민간인 학살에 맞서 싸우다가 도망쳐 나올 때 장면과 17년간 감옥에서 갇혀 있다가 풀려나 지난날 동지들을 광주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 수많은 광주 민중들이 군부의 총칼에 피 흘리며 죽어있는 모습을 본 남자주인공과 주인공의 여자, 남자 후배들이 한 강당에 있다. 그들은 몸서리치며 분노한다. 그런 그들을 본 한 남자가 다가와 도망치라고 한다. 살인마 같은 군인들이 언제 들이닥쳐 모두 끌고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남자주인공은 갈등한다. 하지만 남자 후배는 강당 바닥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들을 보고 그냥 도망칠 수 없다고 끝까지 남아 싸우겠다고 한다. 여자후배도 그 남자후배를 혼자 둘 수 없기에 남기로 한다. 남자주인공은 도망친다. -

 

 당신은 5월 광주를 기억하는가?

당신은 5월 광주를 기억하는가? ⓒ 5.18기념재단

- 감옥에서 풀려난 남자주인공은 어느새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있다. 그는 광주를 찾는다. 광주공항에서 5·18 광주에서 빠져나올 때 남겨둔 남자후배와 만난다. 그는 예전과 달리 머리숱이 없고 한쪽 다리를 절고 입이 돌아갔는지 말도 어눌하다. 둘은 망월동 묘지를 찾아간다. 거기서 남자 후배는 그와 함께 했던 여자후배의 묘지에 무릎을 꿇는다. 남자주인공은 묘지를 둘러본다. 저녁때가 되어 그들은 지난 시절 함께 했던 이들을 만난다. 하지만 많이들 변해있다. 젊은 시절 함께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민주화를 외치던 이들 중에는 변절한 이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했기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해댄다. 모진 고문에 시달려 다리가 불편한 남자후배는 한쪽 귀퉁이에서 연신 술잔을 들이키며 내뱉는다. '변절자, 배신자, 나쁜놈들'이라고. -


모진 고문으로 다리를 저는 후배의 모습과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짓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화되었으니 이젠 그만 '자유, 민주주의' 외치고, 국익을 위하고 돈 많이 벌고 잘 먹고 잘 살 방법만 생각하자고 말하는 기득권의 순한 양이 되어버린 변절자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얻은 말뿐인 민주화와 민주주의 속에서, 권력과 자본을 움켜쥔 그들을 떵떵거리며 살아가게 한 이 세상과 그들의 편에선 자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런 분들에게 영화 <오래된 정원>을 권하고 싶다. 민주화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 사회운동, 시민운동 한답시고 다녔지만, 이젠 어느 틈엔가 정치, 권력과 자본의 맛에 빠져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자들을 외면하고 멸시하고 도리어 탄압하는 변절자들에게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과오에 대해 반성도 하고, 참민주화, 민주주의를 바래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선배'라 불리고 존경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기억과 추억을 팔고 다니지 말고 말이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9.27 14:42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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