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안 소명 마친 김재철 MBC사장 김재철 MBC사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사무실에서 열린 이사회에 출석해 자신의 해임안에 대한 소명을 한 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회의실을 나오고 있다.

▲ 해임안 소명 마친 김재철 MBC사장 김재철 MBC사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사무실에서 열린 이사회에 출석해 자신의 해임안에 대한 소명을 한 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회의실을 나오고 있다. ⓒ 권우성


"김재철 출국금지 요청합니다."

참으로 지난하고 험난했다. 김재철 MBC 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장 김문환)에서 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26일, 한 SNS 사용자의 이 일성이 짧지만 둔중하게 다가온다.

MBC 출신인 신경민 민주통합당 의원 역시 김재철 사장에 대한 조속한 수사 촉구와 함께 출국 금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김재철 사장의 해임이 MBC 정상화의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걸 이미 시청자들도, MBC의 전·현직 구성원들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아마 청와대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지만 안도하긴 이르다. 언제나 중요한 건 타이밍 아니었던가. 어찌 보면 김재철 사장의 해임은 누군가에겐 더 이상 지체할 필요 없는 마지노선이자 최상의 선택이었던 걸로 보인다. 

방문진은 지난 22일 밤 김재철 사장이 방문진과 협의 없이 사내 인트라넷에 8개 지역사 사장 및 계열사, 자회사들의 임원 내정자 이름을 공지한 것을 두고 "방문진과 협의하도록 한 규정을 위반했다"며 해임안 상정의 사유를 밝혔다. 정확한 해임 공식 사유는 '문화방송 임원 선임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그러나 방문진의 이번 해임안 상정이 벌써 네 번째였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특히 지난 2011년 8월 방문진은 "진주와 창원 MBC의 통폐합 보류의 책임"을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던 김재철 사장을 재신임하기도 했었다.

이후 2012년 MBC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했을 때도, 법인카드 사용 의혹 및 무용가 J씨 특혜와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지분 매각 논의 등 각종 의혹들이 제기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당 측 인사들이 수적으로 우세한 방문진은 김재철 사장 사임을 두고 정치권 눈치 보기를 거듭하는 전력을 자랑해 왔다. 

제 역할 완수한 김재철 사장 해임... 타이밍마저 완벽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김재철 사장은, 그러나 제 역할을 120% 완수했다. <PD수첩>과 <100분토론>을 위시한 MBC의 시사보도 부문은 완전히 망가져버렸고, MBC 노조 파업에 동참했거나 경영진에 반발했던 2백여 명의 구성원이 해직 등의 징계로 일터를 빼앗겼다.

무엇보다 김재철 사장 휘하의 MBC는 '지상파 꼴등'의 브랜드 이미지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시사부문을 위축시키고, 드라마와 예능에 올인하며 공정성을 내팽개치고 시청률 지상주의를 쫓은 결과다. <무한도전>을 위시한 MBC의 대표선수와 몇몇 드라마가 선전했지만, 종편과의 경쟁도 서슴지 않는 MBC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성과물(?)을 놓고 종합해 봤을 때, 확실히 김재철 사장의 공로는 혁혁하다고 볼 수 있다.

타이밍만 보면 이보다 더 절묘할 수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인사가 국민적인 우려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난 12일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의 사퇴 표명에 이어 20일 검찰은 하금열 전 대통령 실장에 대한 김재철 MBC 사장 유임 개입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 현 시점에 김재철 사장 해임안은 무척이나 상징적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난 22일 통과된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묶어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해 기존 방송통신위원회가 합의제 행정기구로 남았지만, IPTV와 위성방송 등 뉴미디어 정책이 미래부로 이관됐다. 일각에서는 IPTV 중심으로 방송 산업화를 가속화시킬 경우, 방송의 공공성을 한 발짝 더 후퇴시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김재철 사장의 해임안 가결이란 카드가 가져올 착시효과를 철저히 배제시킬 필요가 있다. 이번 해임건 하나로 새정부의 방송, 언론 정책을 관망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섣부를 주장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 방문진 도착하는 이진숙 MBC본부장 이진숙 MBC기획조정본부장이 26일 오전 김재철 MBC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결정되는 서울 여의도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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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이룬 MBC, 지금부터가 본 게임이다"

방문진의 한 야당 추천 이사는 26일 취재진에게 "김재철 사장 한 명이 나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맞다. 이제부터 시작이란 걸 인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총 9명의 이사 중 총 4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향후 MBC의 정상화가 순탄치 않으리라는 점이 쉬이 예측 가능하다. 

더불어 현 MBC에는 김재철 사장의 휘하에서 이름값을 드높여온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 등 김재철 사장과 손발을 맞춰온 경영진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다. 그간 김재철 사장의 '입'으로 불렸던 기자 출신 이진숙 본부장이 사장 후보로 공모에 응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8년 장수한 예능 <유재석·김원희의 놀러와>를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단칼에 폐지시키고, <PD수첩>을 재기불능 상태에 빠뜨린 그 경영진이 또 다시 사장 자리를 재탈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구성원들 입장에선 MBC의 실추된 이미지가 먼저일 것이다. 26일 방송 예정인 <100분 토론>이 대표적이다. '성접대' 논란을 주제로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등 종편 토론 프로그램과 진배 없는 몇몇 출연자들과 함께 정국 핫이슈를 다루는 <100분 토론>은 손석희 교수가 진행하던 그 MBC의 대표 프로그램이 아니다. 김재철 사장 이전과 이후의 MBC는 분명 이렇게 다르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이 MBC의 일명 '보복인사'자들에 대해 전보발령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은 일단 안도할 만하다. MBC 노조의 170여 일의 파업 이후 중추를 담당하던 구성원들이 제 일터로 원대복귀 할 가능성이 좀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비록 오상진 아나운서는 이미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소속사에 새둥지를 틀었지만, 징계 중인 60여 명의 아나운서, PD, 기자 등 언론인들이 제 일터로 복귀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MBC 정상화의 새 출발은 그 구성원들이 제자리를 찾고 경영진을 함께 감시하는 것부터 시작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상상을 초월했던 공영방송사의 수장 김재철 사장이 물러났다. 하지만 사상초유의 파업을 벌였던 MBC 노조와 구성원들의 노력여하보다 정국의 분위기에 편승한 측면이 더 크게 다가 온다. 김진혁 EBS PD의 촌평이 뼈아프게 들리는 이유다. 

"자신의 힘으로 이룬 독립이 아니라면 독립 되도 독립운동이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본게임이다."

김재철 MBC 해임 방문진 방송문화진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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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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