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한 장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한 장면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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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관객 수 500만 명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평단과 관객 간의 괴리감이 강하게 표현된 결과라고 봐야 할까요? 언뜻 보기에는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 신드롬의 재림처럼 보이지만, 관객들 사이에서도 '과연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500만을 돌파할 수준의 영화가 맞는가'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고 있습니다.

참 특이한 점은 이 영화를 지지하는 층이 10~30대 여성들로 편중돼 있다는 겁니다. 남자끼리는 절대 보러 가지 않지만 여자는 여자끼리는 물론이고 아는 동생, 아는 친구, 아는 오빠, 교회 오빠, 절 오빠 등등과 보러 간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죠. 여성관객 1명을 얻는다는 것은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때문에 여성층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흥행은 자명하다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렇게 여성들의 마음을 휘어잡았을까요?

<은밀하게 위대하게> 과연 김수현만의 힘일까?

이미 대부분의 매체가 보도한 대로 영화의 힘은 배우 김수현에서 나옵니다. 물론 김수현을 보러 갔다가 덤으로 발견한 이현우의 힘도 있을 겁니다. 이는 마치 제가 10대 때 제 또래 여학생들이 강동원을 영접하기 위해 <늑대의 유혹>을 보러 가던 상황과 똑같습니다. 당시 소녀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던 건 우산 속에서 살포시 웃던 강동원의 미소였죠. 마찬가집니다. 이현우에게 모자를 씌워주던 김수현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극장에서 콘서트장 소녀처럼 환호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김수현의 티켓파워라고 보기엔 너무나 많은 관객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김수현 때문이라 한다면 H.O.T가 주연했던 <평화의 시대>나 슈퍼주니어 주연의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역시 엄청난 흥행을 했어야 합니다.

영화의 원작 웹툰인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흐름이 단절되어 있고, 위성 사건이 핵 사건을 받쳐주지 못합니다. 구조적으로 치밀하기는커녕 무난한 수준도 못됩니다. 하지만 웹툰이 연재됐던 다음 만화 속 세상에는 '최고의 웹툰, 추천합니다'라며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각종 블로그에서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웹툰' 목록에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빼놓지 않고 언급합니다. 즉 이 작품엔 이야기의 단점을 극복할만한 장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장점은 주인공 원류환(김수현 분)이라는 캐릭터가 너무나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북한 최고의 간첩인 원류환의 모습은 <쉬리> <007> <아이리스>에서 보인 첩보 요원들과 다릅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위기를 알고 그에 따른 책임의식을 갖고 있지만, 원류환은 그런 책임의식이 없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속한 공동체인 북한이 아닌 어머니뿐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소년입니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한 장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한 장면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진화하는 영화 속 소년의 모습들, 이렇게 컸다

이런 소년의 모습이 현재 한국영화를 견인하는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태와 진석부터, <실미도> <국가대표> <최종병기 활> <늑대소년> 등을 살펴봅시다. 한국 영화의 주인공들은 공동체로부터 버려진 고아의 모습을 시작으로 어머니, 혹은 누이를 찾아 완전해지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비슷한 또래들과 형제애를 나누고 결국 산화하며 이야기가 종결됩니다.

때문에 영웅의 힘을 지니고 있어도 그들은 그 힘을 공동체를 위해 쓰지 않고, 개인의 욕구를 위해 사용합니다. 이 미성숙함이 이야기를 이끄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주인공은 수많은 흥행영화가 증명하듯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나 원류환이 10대 관객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작품 자체가 원류환보다 위장신분인 동구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구의 해맑은 웃음과 따뜻한 마음씨는 주인공을 간첩의 이미지가 아닌 순수한 소년의 모습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리해진(이현우 분)을 등장시킴으로써 둘 사이를 일반적인 형제애를 넘어 동성애로 묶어냅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틸 사진.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틸 사진. ⓒ (주)MCMC


과감한 동성애적 코드, 김수현은 조커였다

여기에서 김수현 카드는 화룡점정이 됩니다. 원작을 단순히 요약하기만 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원작의 장단점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영화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감독은 김수현 카드로 원작의 장점을 극대화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김수현이라는 배우가 드라마 <드림하이> <해를 품은 달>, 영화 <도둑들>에서 보여주었던 소년성을 알아보았던 겁니다. 김수현은 원류환의 소년성과 일치했으며, 원작 캐릭터의 외형도 닮았습니다. 이현우 역시 리해진 역할을 아주 잘 소화해냈습니다.

두 배우의 조합은 원작에서 나온 동성애를 조금 더 현실에 가깝도록 구현시킵니다. 원작에서 두 캐릭터의 동성애를 두고 여성 독자들은 'BL(boy's love)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마치 인기 아이돌의 동성애 팬픽처럼 원류환과 리해진을 묶은 독자적인 팬픽이 존재했고, '리해진 수갑'이 연관 검색어에 뜰 정도였습니다. 이런 여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아무런 훼손(?) 없이 구현시킨 것은 엄청났습니다. 김수현과 이현우를 'BL커플'로 묶은 '수현우'라는 신종 단어까지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틸 사진.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틸 사진. ⓒ (주)MCMC


<늑대의 유혹>이 개봉했던 당시, 여주인공 이청아는 영화흥행과는 달리 엄청난 안티가 생겨났습니다. 원작 소설의 여주인공 정한경이 평범한 여고생이라는 설정을 유지하기 위해 제작사는 이에 맞는 무명의 이청아를 캐스팅했습니다. 아마 평범한 여고생을 보며 가슴 아픈 연애에 관객들이 감정이입하길 바랐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극에 감정이입은커녕 조한선과 강동원을 빼앗았다는 생각을 하며 이청아의 안티가 됐습니다.

"내가 못 갖는 거, 남 주기도 싫고 차라리 너희끼리 연애해라" 이게 'BL물'의 심리이고 유독 아이돌 소재의 'BL팬픽'이 많은 이유입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독자들의 마음을 훔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그려놓고 김수현이라는 화룡점정을 찍었습니다. 예쁜 여배우가 아닌, 예쁜 남배우를 등장시켜 여성들의 성적 판타지까지 충족 시켜줍니다. <늑대의 유혹>과는 다른 전략입니다.

지금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도둑들> 때부터 지적된 스크린 독점 논란과 장철수 감독을 향한 평단의 실망이 공존합니다. 관객 내부에서도 영화 흥행에 대한 회의적 의견들이 위성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무시하듯 영화는 흥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은밀하고 위대하게' 김수현 홀릭에 빠져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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