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월화드라마 <빅맨>의 김지혁(강지환 분).

KBS 2TV 월화드라마 <빅맨>의 김지혁(강지환 분). ⓒ kbs


공교롭게도 공영방송 KBS 2TV의 월화드라마 <빅맨>과 수목드라마 <골든 크로스>는 모두 복수를 꿈꾸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난 20일 방영된 월화드라마 <빅맨> 8회, 강지혁(사실은 김지혁, 강지환 분)은 자신이 현성그룹 회장 강성욱(엄효섭 분)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서로 다른 내용을 지닌 두 장의 유전자검사 결과지를 손에 쥔 그는 소미라(이다희 분)에게 달려간다. 세상 그 누구도 믿지 못해도 당신만은 믿을 만하다고 했던 소미라는 자신이 준 자료는 조작된 것이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달려온 김지혁에게 강성욱 회장의 친자 강동석(최다니엘 분)은 말한다. 원래 가진 것이 없었던 당신은 그저 잠시 가졌다가 다시 빼앗겼을 뿐, 원래 잃은 건 없지 않냐고. 하지만 김지혁은 포효한다. 절대 잃어서는 안 될 걸 잃어버렸다고. 왜 나에게 가족이라고 속였냐고. 당신들에게 꼭 되갚아 줄 거라고.

수목드라마 <골든 크로스>의 강도윤(김강우 분)도 마찬가지다. 은행을 다니는 아버지에게 어머니 가게 할 돈 좀 융통할 능력도 없냐며 다그치던 그가 서동하(정보석 분)로 인한 동생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좌절하고 분노한다.

사회에 의해 희생된 개인이 깨어나는 과정

<빅맨>의 김지혁과 <골든 크로스>의 강도윤은 그저 평범한 사내들이었다. 비록 가진 건 건강한 몸 밖에 없는 김지혁이지만, 한때 몸담았던 어둠의 세계를 벗어나 시장 사람들을 가족으로 여기며 열심히 살아가려던 사람이었다. 강도윤 역시 마찬가지다. 얼른 검사가 되어 고생하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꿈에 부풀었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자기 가족의 안위만을 챙기는 재벌가의 이기심과 상위 1%의 커넥션 안에서 재미 좀 보려던 경제계 관료의 삐뚤어진 행태가 그와 그의 가족을 희생으로 삼는다. 누군가 건드리지 않았으면 그저 평범하게 자신과 가족이나 챙기며 살았을 그들이 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이기적 행위로 말미암아 개인과 가족의 미래를 빼앗기고 만다. 우리 사회에서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개인과 화목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여실히 증명해 낸다.

 KBS 2TV 수목드라마 <골든 크로스>의 한 장면. 강도윤(김강우 분)과 서동하(정보석 분).

KBS 2TV 수목드라마 <골든 크로스>의 한 장면. 강도윤(김강우 분)과 서동하(정보석 분). ⓒ KBS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저서 <위험 사회>에서 오늘날의 정치는 사회 제도들이 양산해 내는 항시적 위험으로 인한 공포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근자에 우리 사회를 좌절과 고통에 빠뜨리고 있는 세월호 사고에서부터 잊을만하면 사회 전체를 혼돈에 빠뜨리는 각종 전염병, 핵 등으로 인한 재해가 단지 우연히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근거로 한 근대적 체계의 불가피한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위험 요소들에 무방비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됨으로써 그런 공포가 사람들을 자각하게 만들고, 21세기의 정치적 시민으로 거듭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게 <위험 사회>의 정치적 시민의 자각 과정은 <빅맨>과 <골든 크로스>의 분노와 유사하다. 원자화된 개인이나 전근대적인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온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힘으로써는 어쩌지 못할 구조화된 제도를 등에 업은 기득권 세력의 이기주의로 위험에 빠지게 된다. 당장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또 다른 개인들의 이기주의처럼 보이지만, 진실에 다가갈수록 그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자신들을 '소외'시키고 '희생'시키는 이 사회의 구조적인 형태다.

<빅맨>에서 김지혁은 희생자지만 오히려 재벌 아들 강동석을 대신하여 검찰에 체포되고, 사기범으로 몰리며, 검찰과 변호사는 철저히 현성그룹의 편에 서서 진실을 왜곡한다. <골든 크로스>에서 희생된 것은 강도윤의 동생인데, 서동하의 측근들을 통해 오히려 강도윤의 아버지가 범인으로 몰리게 되는 상황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저 '개인'이고 '가족의 일원'이었던 그들은 분노하고, 깨달으면서, 사회적 존재로 자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개인의 분노에서 출발한 <빅맨>과 <골든 크로스>는 그저 한 개인의 일이 아님을 드라마를 통해 착실히 밝힌다. 재벌 회장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남의 심장을 탐하는 이기심과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 국장의 탐욕이 상위 1%의 전횡과 부도덕의 항시적 산물임을 드러내기 위해 드라마는 골몰한다. 많은 분량을 할애해 주인공들의 복수 이전에, 그들을 파멸로 이끈 저들의 부도덕과 전횡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우리 사회의 불균등한 부가 그저 더 가진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덜 가진 사람들의 일상적 행복조차 짓밟을 수 있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재해가 사회적 결과물이듯이, 김지혁과 강도윤을 덮친 불운 역시 그저 그들에게 닥친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위험 사회> 속 개인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공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정치적 개인'으로 떨쳐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드라마는 분노로 시작된 주인공들이 그들을 그런 위험에 빠뜨리는 저들의 실체를 알고, 그들을 정죄하는 과정을 판타지로서만이 아니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을 위한 각성의 교과서로 사용하고자 한다. 모처럼 공영방송으로서 수신료의 가치를 실천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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